김경진의 신약 읽기
사복음서 <8> '임마누엘:마태복음의 영성'
마태복음이 다른 복음서들과 구별되는 차이점이자 독특성 중 하나는 주님을 임마누엘로 소개하는 부분이다. 마태는 천사를 통해 주님의 탄생을 예언할 때 그것을 구약 이사야 7:14에 기록된 예언에 대한 성취로 소개하면서, 임마누엘에 대한 번역,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 1:23)를 덧붙임으로써 이를 강조하고 있다.
주님의 탄생을 임마누엘로 설명한 것은 성육신(Incarnation)의 또 다른 표현으로서, 주님이 인류의 죄를 친히 담당하심으로써 구원을 성취한다는 구세주로서의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적어도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할 시점에서 볼 때는 과거에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한 기술이다. 그렇다면 1장에서의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위해 이미 행하신 일들에 대한 묘사로써, 인류의 구속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써 이루어진 결과임을 선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학은 마태복음 중간 부분인 18장, 즉 교회 공동체의 질서를 다루는 장에서도 다시 언급되어 나타난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이미 알려진 대로, 마태복음은 교회를 위한 복음서로서 다른 복음서들보다 교회론이 더 발전되어 나타나고 있다. 즉, 다른 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교회(헬,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세 번씩이나 등장하면서 주님이 베드로의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운다는 말씀이 있고, 특히 18장은 교회 공동체에서 다뤄야 할 권징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마 16:18, 18:17).
특히 이곳에서 임마누엘의 의미는, 교회가 범죄한 성도의 문제를 다루면서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행되는 생사 간의 결정적인 판결이므로, 그 때 하나님이 함께 하여 교회를 인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두 번째로 임마누엘 신학이 소개되고 있는 곳이 바로 교회론을 다루고 있는 장(章)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이 지금 현재 교회 가운데 함께 계시어 주님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신 교회와 그 택한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임마누엘 신학이 언급되는 곳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28장 20절이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여기서 임마누엘은 장차 성도들이 맡겨진 사명이나 사역을 이행할 때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여 그들을 돕겠다는 미래적 약속인 것이다.
임마누엘은 마태복음의 처음과 나중, 그리고 한 가운데 각각 등장하면서, 주님은 성도의 과거(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을 뿐 아니라, 오늘 현재의 삶을 인도하고, 더 나아가 장차 직면하게 될 일들까지도 친히 인도하여 주실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는 그 주님과 늘 함께 동행하는 삶, 즉 임마누엘 되신 주님 앞에 살아가는 임마누엘의 삶이야말로 참 영성의 시작이요 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수·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박종수의 구약 읽기
모세오경 <8> '아브라함의 가나안 행'
창세기 12장은 11장의 마지막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이전 이야기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를 따라 단순히 여행길에 접어든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창세기 12장 1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직접 명령하시고 계심을 볼 수 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아브라함의 원래 고향은 유프라테스강 하류에 위치한 ‘우르’였다. 아브라함은 그곳 우르에서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머뭇거림 없이 기나긴 여행길에 오른다. 1960년대의 성서 고고학(聖書考古學)은 기원 전 19세기 경에 셈족 계통인 아모리인의 대이동이 있었다는 예를 들면서, 아브라함이 그들과 함께 이주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것으로 추론하였다. 하지만 최근의 팔레스타인-시리아 고고학파들은 아브라함과 셈족의 이동을 분리시키면서 그것을 객관적 역사 자료로 보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의 관심은 객관적인 역사 자료보다는 아브라함의 신앙과 삶의 여정을 더욱 중시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조상이 한 때 떠돌이 생활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신 26:5). 유목 생활에서 가나안의 농경 생활로 접어든 이스라엘은 왕국을 형성하면서 자기들의 역사를 재건했다. 이 때 그들의 실질적인 조상으로 기억된 사람이 아브라함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랬듯이 우리 역시 아브라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