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마, 어린이가 처음 외우는 ‘첫 기도문’이며 최후 임종의 ‘신앙고백’
예수의 지상생애는 기도와 기적의 삶, 전 생애 통해 완전한 모범 보이셔
구약성경이 가정 단위로 위탁되고 3대(代)가 함께 전수하는(롬 3:1-2) 것이 유대인의 특권이었다면, 마찬가지로 그들은 하루에 3차례 하나님께 기도하는 ‘대국’(大國)의 전통을 수천 년 동안 고수하고 있다.
9. 기도대국의 유대인 가정
“누울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라”(신 6:7; 11:19)는 계명(248개의 ‘하라’ 중 10째)을 따라 유대인 가정은 매일 취침과 기상 때마다 ‘쉐마’(신 6:4-9; 11:13-21; 민 15:37-41)를 암송하는 ‘말씀대국’이다. 이 쉐마는 어린이가 제일 처음 따라 외우는 첫 ‘기도문’이 되며, 임종의 최후 ‘신앙고백’일 뿐 아니라, 안식일과 여러 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초막절 7일째인 ‘호샤나 라바’(‘큰 간구’, 대속죄일, 새해)의 기도나, 토라를 궤에서 꺼낼 때 드리는 기도문에도 일정 부분이 암송되므로, 쉐마는 말씀과 기도를 묶어주는 고리이다(특히 회중이 복창하는 ‘케두샤’(‘거룩’)의 3째 고백인 신 6:4 참조).
유대인은 매일 3대가 함께 3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기도대국’이며, 그들은 ‘기도문집’(시두르 테필라)을 따라 주어진 상황에 정해진 기도문을 낭송한다. 즉, 일출부터 4시간 이내의 ‘새벽기도’(샤하리트)와, 일출부터 6½시간 이후부터 일몰까지의 ‘낮기도’(민하)와, 일몰 1½시간 이전부터 자정까지의 ‘저녁기도’(마아리브)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기도의 전통은 창세기의 족장들에게서 벌써 엿볼 수 있으니(베라코트 26b), 곧 아침에 기도한 아브라함(창 19:27), 저녁에 기도한 이삭(창 24:63), 밤중에 기도한 야곱(창 28:10)이 그 실례이다. 다윗(주전 1041-971년)이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는”(시 55:17) 기도나, 다니엘(주전 약 631-530년)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는”(단 6:10) 기도는 그 전통의 뿌리 깊은 역사를 보여준다.
10. 신약 가정교회의 매일 3회 기도 전통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이 중심축이었던 신약의 초대교회 역시 유대인들의 매일 3회 기도 전통을 잘 전수 받았으니, 곧 ‘제3시’(아침 9시; 행 2:15), ‘제6시’(행 10:9-23), ‘제9시’(행 3:1; 10:1-3)를 ‘기도시간’(헤 호라 테스 프로슈케스)으로 준수했으며, 유대교에 개종한 이방인인 로마 백부장 고넬료(행 10:1-3)나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 루디아(행 16:13)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도 이 기도 전통을 계속했을 것이다.
‘종교의 씨’를 가진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죄로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미래의 불안과 현재의 역경과 과거의 죄책감 때문에 기도할 수밖에 없는 실존이다(왕상 18:25-29; 욘 1:5).
그러나 신약성경은 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형태의 기도, 예를 들면, 고대근동의 슈 일라(‘손 든’; 참조 딤전 2:8) 기도, 모슬렘이 ‘인도자’(이맘)와 ‘기도책’(살라트)을 따라 매일 5회(새벽, 정오, 오후 중간, 황혼, 밤) 메카의 카아바를 향한 기도, 불교도의 새벽예불, 가톨릭의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 미국의 9·11 참사 후 모든 종교 지도자가 순서를 맡은 뷔페식 추모예배나 소위 ‘국가 기도일’의 혼합 종교적 기도, 그리스도인의 외식적(마 6:5-8; 눅 18:9-14; 참조. 시 109:7; 잠 28:9; 사 1:15-17) 정욕적(약 4:3) 기도는 유대인의 일위일체적 여호와 신앙의 기도와 함께 모두 잘못된 것임을 명백히 지적한다. “이는 저(예수님)로 말미암아 우리 둘(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
11. 올바른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올바른 기도가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디아) 가능함은 마치 우리가 반드시 문을 ‘통해서만’ 방을 들어갈 수 있는 것과 같다(요 14:6; 행 4:12; 16:31; 롬 10:9, 13). 재판장 빌라도와 사형집행관 백부장과 동료 사형수가 모두 예수님의 무죄와 의인됨을 확증하는 대로(눅 22:22, 41, 47), ‘죄 없으신 그분이 내 죄를 대신하여’(고후 5:14-15,21)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고, 제3일에 부활하심으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 2:14), 지옥의 유일한 출구와 천국의 유일한 입구가 되셨기에(요 10:8-9; 마 7:13-14; 엡 3:12; 골 1:13-14; 롬 5:2; 벧전 3:18),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그 예수님을 ‘통과하는’ 체험을 갖는 것이다.
죄인인 우리는 독생자 예수님만을 통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양자가 된 것이다(롬 8:9, 14-17; 히 2:11; 7:25; 요 20:17).
올바른 기도는 오직 성령님 ‘안에서’(엔) 가능하다. 세속에 잠긴 내 영혼이 기도하려면 눈이 무겁고 목이 매캐한 거부감을 자주 경험하기에,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기 위하여 기도하기를 힘쓸 수밖에 없다”(엡 6:18; 유 20). 로마서 8:26-27이 밝히는바, 하나님의 뜻을 아시는 성령님(고전 2:10-12)은 기도의 소원은 있으나 빌 바를 알지 못하여 탄식하는 나를 ‘도우시고’(순안티람바노, 어원적 의미인 ‘함께 맞대어 취하다’와 멍에 참조; 마 11:28; 눅 10:40), 나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며’(후페르엔퉁카노, 어원적 의미인 ‘(도와주기) 위하여 (연약한 상황) 안에 있는 (나를) 마침 만나다’; 마 10:19-20; 요 14:16; 롬 8:34; 요일 2:1),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여 응답 받게 해 주신다(롬 12:1-2; 마 26:39-46; 비교: 약 4:3; 요일 5:16).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는 ‘성령님 안에서의 기도’의 구체적 실례이다.
올바른 기도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프로스) 가능하다. 이것은 주기도문의 호칭과 그 첫 3간구(마 6:9-13; 참조. 요 14:13; 17:1, 4-5, 22, 24)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아온 자매들에게 하신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요 20:17)이란 말씀에서 자명하다.
‘아낌없이 주시려는’(눅 11:13; 롬 8:32; 약 1:17), ‘능력이 무한하신’(마 19:26; 롬 4:17), ‘약속에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히 6:18) 하나님은 ‘귀를 심으셨기에 들으시며, 눈을 빚으셨기에 보시는’(시 94:9) 아버지는 반드시 우리 기도를 접수하시며 결재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담대히 ‘은혜의 보좌’(하늘 지성소)에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 받는다(히 4:16; 7:25; 10:22).
그렇다! 올바른 기도는 인간 사이의 모든 담을 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에, 매일 아침기도에 유대인 남자들이 감사하는 ‘이방인과 종과 여자로 저를 만들지 않으신’ 하나님이 아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라’(갈 3:28)고 송축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기도는 반드시 ‘우리 둘이’ 합심으로 기도하는 능력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마 18:19; 전 4:9-12; 행 1:14; 2:42-47; 4:24-31; 12:5).
12. 유대인 예수님:오직 올바른 ‘기도-기적-기도’의 삶
예수님의 지상 생애를 단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기도-기적-기도’의 삶이셨다. 우리가 살펴보려는 히브리서 5: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들과 소원들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은 예수님의 전 생애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완전한 모범을 보이시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올바른 기도의 6가지 측면을 드러낸다: ①육체를 가진 인간은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②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나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③기도의 태도는 심한 통곡과 눈물이다. ④기도의 내용은 수많은 간구들과 소원들이다. ⑤기도의 동기는 하나님을 경외함이다. ⑥기도의 결과는 100% 응답이다.
첫째, 앞서 간략히 살핀 대로 모든 인생은 기도하는 실존이기에, 의사 누가는 육체를 가진 예수님을 ‘기도의 사람’으로 증명한다(눅 3:21; 4:1,14,42; 5:16; 6:12; 9:18,28; 11:1; 22:32,39,41; 23:33; 24:52).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았고(히 2:14-18; 4:15),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사명을 가지신(마 16:21; 20:28; 딤전 1:14; 히 2:9, 14-16) 예수님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기도를 통하여)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어,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히 5:8-9). 그분은 공생애를 기도로 시작하셨고(막 1:12-13), 철야기도 후 12제자를 선택하셨으며(눅 6:12-13), 동일한 기도를 3번 하셨으며(마 26:39-44), 십자가 위에서의 일곱 마디 말씀은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감하셨다(눅 23:34, 46).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 역시 육체에 사는 동안 주 예수님처럼 날마다 ‘시험에 들지 않게’(마 26:41) 가능하면 ‘한 시간 동안’(마 26:40) 기도할 뿐이며, ‘제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마 26:39; 비교. 동일한 말씀으로 3번 기도) 사명을 분별하고, 성령님의 능력과 은사로 감당하기 위하여 기도할 뿐이다. 이는 사명이 목숨보다 중요하며(행 20:24), 살면 충성이요 죽으면 영광이기 때문이다(계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