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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뜬 감격으로 새천년을 맞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한 해의 끝에 서게 됐다.
새천년이 되면 별 일이나 벌어질 것처럼 떠들썩하던 출발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달라진 것이라곤 별로 없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가 떠안고 있는 현안들은 진전도 변화도 없이 한 해를 보내게 되었고, 사람들의 마음은 속빈 강정처럼 공허를 향해 치닫고 있다.
IMF의 어둡고 버거웠던 터널을 용케도 빠져 나오는가 했더니 제2의 경제 위기가 우리를 춥게 만드는가 하면 정치 부재로 인한 민심의 이반에 표류하는 구조조정으로 사회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즈음 교회가 서있는 자리는 어떤가. 옷로비사건, 벤처사기사건, 수표위조사건 등이 불거질 때마다 기독교인이 거명되곤 했다.
어느 필자는 모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 교회는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라고 자랑한다. 그래서 범죄 비율도 4분의 1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자성을 촉구하였다.
여기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이나 진리의 본질은 범죄나 악을 가르치지도, 조장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는 허약한 기독교인들의 이중적 삶 속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다음과 같은 따가운 질문 앞에 서 있다. 그것은 ‘교회는 무엇을 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은 교회의 행위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한국 교회는 덩치에 비해 내실이 신통치 않다는 것이며, 교회의 대형화나 물량화에는 성공했지만 본질 수행에는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신학적으로 다섯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배, 선교, 교육, 봉사, 친교이다. 그 어느 것 하나도 과소평가되거나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무엇을 하느냐’는 라는 질문의 초점은 교회가 대사회 섬김의 역할에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존재 가치는 위에서 말한 기능들이 절묘하게, 그리고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드러난다. 그런데 교회가 균형과 조화를 외면한 채 한가지만을 주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회상이 아니다.
한국 교회의 긴급한 과제는 무엇을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되찾고 확립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서야 하는 자리를 되찾고 해야 될 일을 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 나라의 미래는 교육과 종교에 있다. 제아무리 사회가 어지럽고 나라가 어려워도 교육이 바로 되고 종교가 바로 서면 그 나라의 장래는 밝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의 역할은 영혼의 세계, 즉 인간의 영혼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의 사명과 역할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빛이어야 하고 소금이어야 할 교회가 어두워지고 맛을 잃는다면 더 이상 희망을 걸 곳이 없다.
한국 교회의 현주소는 어떤가. 생활신앙의 부재로 인한 신뢰의 붕괴, 정체성 상실로 인한 힘의 상실, 분단과 분열로 인한 힘의 약화, 태만과 안일로 인한 성장의 답보 등 그 실례를 꼽자면 한이 없다.
존경과 사랑의 조건은 덩치나 물리적 힘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이 존경의 조건이 된다. 교회 역시 대형화나 외적 치장으로 사회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총이나 칼로 상대를 제압하지 않는다. 교회가 지닌 영적 능력과 사명 수행, 그리고 겸손과 섬김으로 존경을 받게 된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 교회의 모습은 존경과 사랑보다는 비난의 대상이었고, 시중 여론의 표적이었다. 그것은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삶과 신앙의 괴리에 원인이 있으며, 예수의 가르침을 생활화하지 못하는 골깊은 이중성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하루 빨리 교만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영성과 진실을 회복해야 한다. 일찍이 도산은 “네 가죽 속과 내 가죽 속의 거짓을 드러내자”고 절규했다. 주님은 “맛을 잃은 소금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리요”라고 한탄하셨다.
교회가 가는 곳에 국가가 간다는 말이 있다. 교회가 바로 서면 사회도 국가도 바로 서게 될 것이며, 교회가 흔들리면 사회도, 국가도 흔들리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특정지어진 집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기독자들을 총칭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썩어있다는 것은 곧 내가 썩었다는 것이고 교회가 제구실을 못한다면 내가 내 구실을 못한다는 뜻이다.
1천2백만 기독교인들이 거듭나고 바로 산다면 민족의 역사를 갱신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나 교회가 거듭나지 못한다면 민족의 역사는 세상 끝날까지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1천2백만 기독자들이 힘을 합한다면 정치도, 언론도, 경제도 그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시대의 등불로서, 소금으로서 교회가 져야 할 책임은 막중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 한국 교회는 도도한 영적 도전 앞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전할 만한 힘도 태세도 없다.
우리는 시급히 나팔을 불고 회개의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힘을 결집시켜야 한다. 우리 모두 한국 교회를 지키는 첨병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