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접한 상담, “하나님 형상 회복토록 쓰임 받게 돼”
“우울증·공황장애 누구나 겪는 고통, 얼마든지 극복 가능”
“상담으로 겪는 소진현상, 마음의 이완 위해 독서와 운동”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결혼 후 2명의 아들을 낳았다.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중심으로 착실하게 신앙 생활하며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30대 시절, 상담 전문가 신지영 교수(백석대·대한심리상담센터장)는 선교단체 예수전도단을 만나 뜨거운 신앙을 체험했다. 은사가 있어 찬양을 인도하는 간사로 섬기기도 했다.
남편과 함께 열심히 예수전도단 훈련을 받았고, 소그룹 리더로 세워져 구성원들과 대화하고 나눔을 이끌게 된다. 하지만 뚜렷하게 알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음을 느꼈다.
“대화하고 나누면서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제가 너무 부족한 거에요. 어렵고 힘든 구성원들에게 해줄 수 있게 없다는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혼자 방에서 기도하는 중에 저에 대한 비전을 응답받았어요. 심리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고, 혼자 가만히 간직했습니다.”
주변 환경을 생각하면 공부는 언감생심이었다.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하면서 남편 위주의 가정생활을 해오던 시절이었다.
하나님은 뜻하지 않은 시기에 길을 열어주셨다. 남편이 직장을 서울로 옮기면서 가족들의 서울살이도 시작된 것이다. 예수전도단에서 열심히 훈련받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남편은 직장을 다니면서 백석대 신학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신대원 졸업을 앞둔 6학차 때 아내에게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목회를 생각하면서 제안했던 것 아닌가 싶어요. 바로 그 때 제가 긴 시간 품고 있었던 비전을 남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상담을 배우고 싶다고요. 그렇게 저도 백석대학교에서 기독교 상담학을 배우게 되었고, 한재희 교수님 아래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백석대여서 더 기독교 가치관에 입각한 상담을 열심히 공부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도 제게 꾸준하게 주어졌고요.”

“하나님은 회복이 길 여신다”
신지영 교수를 만난 곳은 서울 최대의 번화가 강남역 인근이었다. 높은 빌딩 15층에 자리한 대한심리상담센터에서 신지영 교수는 주로 상담을 하고 공부도 한다고 했다. 내담자를 배려한 듯 상담실은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보이는 창밖 도심 풍경 역시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듯했다. 신 교수의 언어와 태도에 방문자를 향한 배려가 가득 묻어난다. 이곳에서 상담하며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회복되었으리라.
신지영 교수는 상담을 공부한 이래 임상 경험을 풍부하게 쌓을 수 있었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상담센터 센터장을 하면서 특히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다. 이 땅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의 수많은 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고, 상담하며 분투했다.
“상담만이 아니었어요. 어떻게 사회적 약자를 지원해야 하는지, 이들을 위해 무브먼트가 왜 필요한지 경험하는 기회였습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와 트라우마가 우리 사회에 반드시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게 사회적 역기능을 개선할 제도에 관심갖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가해자와 피해 프레임을 넘어 인간 존재 차제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때로는 법원에서 의뢰해오는 가해자 상담을 한다. 교도소에 찾아가 성범죄자들을 상담하기도 한다. 부담스러운 상담이지만 연결되어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늘 경험했다고 신 교수는 고백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중심의 상담자들은 종교를 의지하는 걸 부정적으로 인식하지만, 신 교수와 같이 칼 융을 공부한 상담 전문가들에게 신,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이고, 근본적으로 회복의 길을 열어주는 존재이다.
문제해결 중심 상담 경계해야
기독교 상담학을 전공한 신앙인이기 때문에 당연한 답이라고 할까? 칼 융을 넘어서는 상담 모델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라고, 신 교수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확신을 표현했다. 자세한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38년 된 병자에게 예수님은 ‘낫기를 원하느냐’고 먼저 질문하시면서 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십니다. 상대방에게 표현하도록 질문하셨지요, 죄를 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먼저 판단하기보다 이해하고 품어주려는 접근하신 거죠. 누구나 아플 수 있다고 위로하고 마음을 내려놓도록 도우셨습니다. 그 안에서 마음의 치유도 일어났던 거죠.”
신지영 교수가 신앙인들에게 당부하는 상담 자세가 바로 예수님과 같은 공감이다. 특히 목회자들은 성도들과 대화할 때 문제해결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옳고 그름을 우선 판단하는 방식으로는 치유와 회복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목사님뿐 아니라 많은 신앙인들이 정답을 이야기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런 차원의 상담을 하려면 밑바닥부터 잘 다져진 가운데 해야 하는 거죠.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걸으셨습니다. 왜 자신을 못 알아보냐고, 왜 낙심하고 있냐고 혼내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함께 걸으셨습니다. 그런 후 제자들이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 거죠.”
신지영 교수에게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신앙인들이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도 질문했다. 신 교수는 ‘이상심리’와 ‘정상심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누구나 ‘이상심리’를 겪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마더 테레사와 같은 위인도 지독한 고독을 겪었고, 하나님을 향해 고통을 호소했어요. 집에만 2주 동안 머물며 우울증 경향을 보이기도 했지요. 목사님들 중에도 우울증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우리에게 고난의 시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도 그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사랑을 표현하고 영혼의 소통이 있으면 이겨낼 수 있게 되죠. 누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쉽지 않은 목사님들이야말로 내면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내담자의 변화가 가장 큰 보람"
전문 상담가로서 신지영 교수의 최고 보람은 내담자의 변화라고 이야기했다. 자살 충동을 이겨내고 삶의 의미를 회복한 사람, 가정에 대한 의미가 없었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게 된 사람, 부모와 관계가 회복된 사람, 직장에 다닐 의지가 생긴 사람 등 무수히 많은 내담자가 다녀갔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사례를 들려달라고 했지만 신 교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담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밀보장이라는 상담 윤리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신 교수는 상담을 종결하면 취하는 조치가 있다. 바로 내담자와 개인적인 관계를 이어가지 않는 것.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나눈 사이지만, 기꺼이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상담가의 원칙이다. 자칫 스스로 잘 이겨낸 내담자가 상담가를 만나 부정적 기억을 떠올릴 수 있고, 자주 만나다보면 상담가에게 의존하려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어야 하는 건 상담가에게 무척 힘든 일이다. 마음의 소진 현상이 일어나는 것 아닌지, 내면을 어떻게 회복하고 자신을 채워가는지 질문했다.
신 교수는 몸과 마음의 균형을 강조했다. 신 교수는 “상담을 마치고 나면 내 마음도 아프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의 이완을 위해 책을 읽는다. 산책하거나 수영도 하고 있다. 헬스클럽에서 러닝을 한참 하기도 한다. 집중해서 오랫동안 상담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도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만큼 저 역시 균형 있는 삶을 추구한다”고 들려주었다.
신지영 교수의 남편은 신대원 졸업 후 계속 직장을 다니는 것을 선택했다. 두 아들과 함께 아내가 상담의 역량을 펼쳐갈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처음 상담을 접하고 집에서 가족들에게 실습하고 상담 어투를 연습할 때도 재미있다며 응원해준 가족이다. 결혼할 정도로 이제는 장성한 아들들이지만, 엄마와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아들 친구들은 많이 부러워한다고 했다.
“하나님은 뒤늦게 상담을 공부하게 하셨고 보람을 찾아가도록 이끌어오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길을 찾아가고 있는데, 돌아보면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검은 심리의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 최고의 치유자 예수님을 따라 아픔에 공감하는 상담을 앞으로도 계속 펼쳐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