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천안에서 울려 퍼지는 태국어 찬양 … 매일 기적을 경험합니다”
상태바
[연중기획] “천안에서 울려 퍼지는 태국어 찬양 … 매일 기적을 경험합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5.03.05 1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이 품은 열방, 이주민교회를 가다(1) 권능태국인교회
태국 이주민 주체가 되어 찬양 인도부터 음식 준비까지
쉼터 운영하며 도움 필요한 태국인에게 예수 사랑 실천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구수한 인심이 느껴지는 듯한 전형적인 한국의 읍내 풍경이 정겨운 이곳에 반전 매력을 품은 장소가 있다. 삼은초등학교 맞은 편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는 권능태국인교회(담임:오승재 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문을 열자 마치 다른 세계가 펼쳐진 듯 태국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세션의 연주와 함께 태국어로 찬양이 울려 퍼지자 마치 등 뒤의 토속적인 읍내 풍경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다.

성인 남자라면 일생에 한 번은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야 한다고 할 정도로 불교 색채가 짙은 나라다. 총 인구 중 불교도의 비율이 약 90%에 달한다. 그러니 무려 120여명의 태국인들이 빼곡히 모여 태국어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교회의 풍경은 놀라울 수밖에 없다. 담임 오승재 목사는 권능태국인교회에선 매일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고백한다.

권능태국인교회는 태국인이 주체가 되어 예배를 세워 나가는 이주민 교회다. 사진 가운데가 오승재 목사.
권능태국인교회는 태국인이 주체가 되어 예배를 세워 나가는 이주민 교회다. 사진 가운데가 오승재 목사.

생활기록부에서 발견한 꿈

기적은 곳곳에 있다. 오승재 목사가 권능태국인교회의 강단에서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 것부터가 평범하지 않다. 오 목사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사역자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때는 40대 중반, 우연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졸업했던 학교에도 들르고 생활기록부도 찾아봤다. 놀랍게도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의 ‘희망 직업’ 란에는 ‘목사’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직장생활에 치여 사느라 잊고 있던 지난날의 순수한 꿈이었다.

“희망직업을 ‘목사’라고 써놓은 생활기록부를 보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더라고요. 그것을 보자마자 문득 ‘아, 신학을 해야겠구나’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특별히 다른 계획이 없었는데도 일단 신학 공부를 해보자는 마음에 신학교에 입학했죠.”

신학교에 입학하긴 했지만 목회에 대해서는, 더구나 이주민 사역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였다. 그저 학문으로서 신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전부였다. 친누나가 태국인들을 대상으로 이주민 사역을 하고 있었고 신학교에 다닐 때 종종 들러 사역을 도왔을 뿐이다. 그런데 2019년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동시에 누나의 건강도 급격히 안 좋아졌다. 사역을 이어받을 대체자를 찾는데 마침 신학교를 갓 졸업한 오승재 목사가 옆에 있었다. 오 목사가 급류에 휩쓸리듯 이주민 사역의 한복판으로 들어온 순간이었다.

솔직한 겸손이 만든 선순환

갑자기 투입됐으니 사역이 손에 익은 듯 능숙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터. 통하지 않는 언어부터 시작해 오해와 부침을 적잖이 겪었다. 그러자 오승재 목사는 권위를 내려놓고 솔직하게 태국인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이러이러한 부분이 부족하니 성도님들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으면 좋겠다’고 격의없이 다가갔다. 태국인 성도들은 솔직한 그의 태도에 마음을 열었다.

오 목사의 ‘내려놓음’은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오승재 목사는 권능태국인교회를 일컬어 ‘태국인 이주민들이 주인공인 교회’라고 묘사한다. 그의 표현처럼 권능태국인교회의 예배는 오롯이 태국인들에 의해 세워지고 만들어진다. 찬양 콘티 준비부터 찬양 인도, 음식 준비, 미디어 기록 등은 모두 예배 준비를 위해 세워진 태국인 스태프 21명의 몫이다. 예배를 섬기며 이들의 신앙이 한층 더 성숙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제가 이끈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성도들이 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면 뒤에서 돕고 지원해줄 뿐이죠. 교회에 왔을 때 ‘여기 완전 태국인 교회네’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태국인 성도들이 주체가 되어 교회를 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고요. 무엇보다 태국인 이주민들이 교회를 더 편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공간으로 느끼며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친구가 되자 시작된 부흥

시작은 미약했다. 오 목사의 누나가 시작한 태국인 교회는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인원이 모인 가정교회 형태로 출발했다. 그랬던 교회가 지금은 120명이 넘는 태국인들이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창대한 공동체로 부흥했다. 비결을 묻자 오 목사는 “먼저 친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나는 신학이나 교리를 가르쳐주기보다는 친구가 되어 태국인들을 도왔어요. 태국인들은 누나를 어머니 같은 존재로 받아들였고요. 아무런 대가 없이 타국땅에 온 이들을 도와주는 모습을 굉장히 인상 깊게 본 것 같아요. 심지어 믿음이 없는 이주민들도 누나에게 선물을 사서 찾아오곤 했으니까요.”

누나의 사역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오 목사는 고스란히 사역의 기조를 이어갔다. 목사이기보다는 친구가 되자며 손을 건넸고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이 됐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권능태국인교회의 쉼터 사역이다.

컨테이너로 조립된 숙박 공간인 쉼터에는 직장을 옮기는 등의 이유로 당장 묵을 곳이 없는 태국인들이 찾아온다. 소개를 받고 오는 이들은 교회라는 곳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대부분. 쉼터에 와서 교회에 다니게 되고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한국어 교실에도 참여한다. 부대껴 사니 좋든 싫든 정이 들 수밖에 없다. 복음에 대한 마음도 자연스럽게 함께 열린다. 특히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태국인들은 가장 확실한 복음의 통로가 된다.

“주변에 있는 믿지 않는 친구들도 다 제 연락처를 알고 있고 도움이 필요할 때 저를 찾아요. 그러면 전 우리 교회 성도가 아니더라도 곧장 달려가 그들을 돕죠. 만약 태국 현지였다면 이런 일이 있기 힘들 겁니다. 태국인들이 한국에서 도움이 필요하니 쉼터를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교회를 만나요. 타국에 와서 마음이 많이 허물어지고 가난한 심령이 되어 의지할 것이 필요할 때 하나님을 찾게 되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대가 없는 사랑을 경험한 태국인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태국 복음화의 꿈을 꿉니다

한 번은 24살밖에 되지 않은 태국인 자매가 암 진단을 받은 일이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암이라는 무거운 소식을 받아든 교회 성도들은 굉장히 당황했다.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리면 전이 속도가 빨라 위험할 수 있기에 특히나 걱정스러운 상황이었다. 매주 자매를 방문하며 위로했고 교회에 모여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수술 당일, 놀라운 소식이 들렸다. 암처럼 보였던 조직이 사실 고름이었던 것. 성도들은 모두 기도 응답으로 여기고 함께 기뻐했다.

기적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50세의 자매가 암 진단을 받게 됐다. 교회는 다시 기도의 무릎들로 채워졌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종양이 아닌 특이한 형태의 조직으로 밝혀졌다. 담당 의사가 워낙 독특한 경우라며 논문에 싣기 위해 환자의 동의를 구할 정도였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매주 교회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태국인들이 토요일부터 쉼터에 모여 웃음꽃을 피우며 예배를 준비한다. 스태프들은 토요일 저녁부터 찬양 연습과 교회 청소로 분주하다. 얼마 전엔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을 위한 세례식까지 거행했다. 매주 펼쳐지는 기적 같은 은혜에 오승재 목사는 감격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아직 한국에 태국인 교회가 많지 않아요. 교회 개척은 어렵더라도 한국교회 안에서 태국인 예배부를 세우는 일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협력해 보다 많은 곳에서 태국인들을 위한 예배가 세워질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어요. 권능태국인교회가 태국 복음화의 미래를 열어가기를 꿈꾸며 소망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