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아이들을 품는 일은 생명을 꽃피우는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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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아이들을 품는 일은 생명을 꽃피우는 사역입니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5.02.25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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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교회서 야학 펼치는 ‘길위의교회’

취약계층 다음세대 위해 ‘야학’ 운영…카투사병사들 교사로 봉사
컨테이너 교회서 예배와 수업, 변화된 아이들 꿈과 비전 회복해
소외 이웃 위해 구제·선교 구슬땀 “받은 사랑 세상에 돌려줘야”
길위의교회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야학을 통해 공부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 팽성읍에 위치한 주한 미군부대 옆 새하얀 컨테이너 박스로 조립된 교회에 시선이 머문다. 커다란 유리창 넘어 보이는 아늑한 내부가 마치 카페를 연상시킨다. 이곳은 취약계층 청소년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길위의교회’(담임목사:정용준).

매일 저녁 환하게 불이 켜지는 길위의교회에서는 특별한 외관만큼 생경한 풍경이 펼쳐진다. 방과 후 삼삼오오 교회로 발걸음을 재촉한 아이들은 게임 삼매경이지만 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하게 학업에 열중한다.

길위의교회 정용준 목사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힘든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8년째 이곳에서 야학을 운영해 왔다. 덕분에 길위의교회를 거쳐간 아이들은 세상을 향한 원망 대신, 하나님이 주신 선한 을 키워가고 있다.

길위의교회 정용준 목사.
길위의교회 정용준 목사.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
끼이익~ !’ 2016년 발생한 안타까운 교통사고는 정 목사의 목회 방향을 180도 바꿨다. 미국 보스톤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잠시 고향인 평택 팽성읍에 머물던 무렵이었다.


어느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도로를 건너다 그만 불의의 차 사고를 당한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아이의 부모를 찾을 수 없었던 거예요. 친부는 없고 친모는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돌봄이 불가능한 처지였거든요. 아무리 수소문해도 아이의 가족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 목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파고든 건, 평택의 청소년 자살 시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사실이었다. 정상적인 가정은커녕 학원도 다닐 수 없어 방치된 채 각종 위험과 범죄에 노출된 아이들이 아른거렸다.


어쩌다 내 고향이 이렇게 됐을까? 싶어 마음이 착잡했죠. 동시에 하나님이 저에게 너는 목사로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시는 것 같았어요.”

정 목사는 당시 노숙인 급식봉사단체의 후임으로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차마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평택 지역의 결손가정 아이들을 모아 야학을 열기로 결심했다.

때마침 미군부대에서 예배를 섬기게 된 그는 카투사 병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병사들에게 세상은 아이들에게 공정히 경기하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에겐 이미 출발선이 다르다. 출발선 뒤에서 발조차 떼지 못하는 아이들 손이라도 잡아주자고 설득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면 당장 며칠은 좋지만, 공부할 기회를 주면 평생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능력이 생긴다고요.”

그러자 6명의 카투사가 선생님으로 봉사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그는 감사하게도 자원해 준 병사들이 하나같이 일리노이주립대, 고려대, 경희대 등 고학벌 엘리트들이었다이들과 함께 9개월간 기도로 야학을 준비했다고 귀띔했다.

정 목사는 야학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집도 내놨다. 가정집 지하를 수업과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멀끔히 개조한 정 목사는 길 위에서 방황하는 다음세대가 인생의 유일한 길 되신 예수님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길위의 사람들이라고 야학의 이름을 지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5년이 흐르자 지하실이 노후된 탓에 곰팡이가 피고 유해물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 건강에 좋지 않겠다는 염려 끝에 정 목사는 오래된 수출용 컨테이너 6개를 구입해 직접 교회를 만들기로 결단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들이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

장장 1년이란 공사 기간 자재비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재료 구입부터 컨테이너 조립, 페인트 칠, 못 박는 일, 내부 인테리어까지 전부 정 목사와 아이들의 몫이었다. 매일같이 모여 장난감 레고로 설계도를 만들며 지금의 교회를 짓는 일에 손수 구슬땀을 흘렸다.

아이들은 힘든 내색 없이 기쁨으로 임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돕는 천사들도 큰 위로가 됐다. 곳곳에서 후원과 기부의 손길이 이어진 것. 누군가는 교회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선물했고, 누군가는 쌀을 보내며 끼니 걱정을 덜어주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길위의교회는 아이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놀이터이자 공부방이 됐다. 컨테이너를 연결해 지은 교회인지라 겨울에는 우풍이 불고 여름에는 무더위를 견뎌야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믿음을 키우고 비전을 품는 최고의 아지트다.

컨테이너 교회에서 매주 440분씩 국영수사 중 두 과목을 가르치는 야학은 학원을 방불케 한다. 카투사 병사들로 구성된 교사들 또한 여느 학군지 강사들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실력자들이다. 가끔 인공지능 등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이 대가없이 무료 강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정 목사는 “8년간 길위의교회를 거쳐간 130여명의 선생님은 소중한 동역자라며 일절 사례비 한푼 받지 않고 아이들을 향한 애정만으로 재능기부에 나서줬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곳에서 1년 넘게 선생님으로 헌신해준 카투사 출신 박정원(22) 씨도 그중 한명이다. 그는 학원에 갈 여력은 없지만 공부에 뜻이 있는 친구들의 학습 성취도를 높이는 일에 힘썼다. 야학 본연의 목적대로 먼저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는 게 목표였기 때문이라면서도 아이들의 말 못할 고민과 고충을 들어주며 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동참했다고 전했다.

아이들은 야학을 통해 새로운 꿈과 비전을 품어간다.

더불어 사는 삶 되길
길위의교회는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며 보여준다. 그 일환으로 날마다 밥을 굶고 다닐 아이들이 걱정돼 정 목사의 아내 서효경 사모는 매일 저녁 분주하게 식사를 준비한다. 매주 정성껏 차려내는 밥상만 100인분에 이른다.

길위의교회에서 야학을 들은 아이들 사이에도 기적처럼 변화가 일어났다. 과외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아이들이 이곳에서 야학을 통해 선생님들의 일대일 지도를 받으며, 성적이 일취월장한 것은 예삿일.

아이들의 성적이 전교권으로 훌쩍 뛰면서 뜻밖에 인근 학부모들 가운데 입소문이 퍼졌다. 정 목사는 한 어머니는 길위의교회 야학에 가면 성적이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저에게 과외비를 줄테니 내 자녀 좀 맡아달라고 제안한 적도 있었다고 웃어보였다.

하지만 길위의교회 야학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은 남다르다. 첫째, 집안이 어려워야 한다. 둘째, 적어도 아이들이 학업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셋째, 도움을 감사히 받고 훗날 반드시 남들에게 지금 받은 사랑을 흘려보낼 것이란 약속을 해야 한다.

물론 세상을 향한 원망과 불평에 익숙한 아이들이 한순간 바뀌기란 쉬지 않다. 정 목사는 아이들이 예수님을 알고 선한 꿈을 품기까지는 최소 3년의 시간이 걸린다그때까지 참고 기다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아이들이 꿈을 키우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공부방 대신 야학을 선택했다야학의 정신은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다. 대신 아이들이 혼자 살아남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이웃에게 갚는 어른으로 성장하면 좋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정 목사는 길위의교회 비전을 교육 예배 구제 선교 등 4가지로 꼽는다. 정 목사와 아이들이 7년째 매달 지역 홀몸 어르신과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게 음식과 생필품을 나누며 봉사를 전개해온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매년 연말에는 주한미군과 함께 길 위의 크리스마스:공명이란 음악회를 열고, 지역 어려운 이웃을 초청해 따뜻한 공연도 선사한다. 야학을 졸업하면 언젠가 받은 사랑에 보답하겠다던 아이들이 벌써부터 나눔의 발걸음을 떼고 있는 셈이다.

정 목사는 야학을 졸업한 아이들 중에는 생명을 살리는 의료인이 되겠다며 약대에 진학한 친구도 있다저마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갖고 새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다며 후배들을 위해 물질을 쾌척하는 친구도 있다고 보람을 전했다.

그는 간혹 주위에서 다음세대 사역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돈 안되는 사역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밑이 빠져도 물을 부으면 생명이 살아나는 독이 있다. 바로 화분’”이라며 나에게 다음세대 사역은 화분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우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잠언 1917절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여호와께 빌려주는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의 선행을 반드시 갚아 주실 것이라고 나온다. 다음세대 사역은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 덧붙였다  

길위의교회 정용준 목사와 아이들은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 소외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공명’ 음악회를 열며,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있다.
길위의교회 정용준 목사와 아이들은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 소외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공명’ 음악회를 열며,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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