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처럼 꿈 꾸었더니 하나님께서 모두 이루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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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처럼 꿈 꾸었더니 하나님께서 모두 이루셨어요”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5.01.15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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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피아노 판매 1위 ‘가스펠피아노’ 대표 고동식 장로

중동 건설노동자로 파견돼 예배 인도자로 섬겨
호주 이민으로 정착, 피아노 기업 일구며 나눔
호주 ‘가스펠 피아노’ 대표 고동식 장로는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며 걸어왔다. 고 장로는 “꿈꾸는 사람 요셉처럼 꿈을 꾸었고,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하며 최선을 다했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도록 하셨다”고 간증했다.
호주 ‘가스펠 피아노’ 대표 고동식 장로는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며 걸어왔다. 고 장로는 “꿈꾸는 사람 요셉처럼 꿈을 꾸었고,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하며 최선을 다했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도록 하셨다”고 간증했다.

“잔디밭에 밥풀이 떨어져도 주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나라라고?”

호주에서 가장 많은 피아노를 판매하고 있는 기업 ‘가스펠피아노’의 대표 고동식 장로(시드니두레교회)는 1986년 호주 땅을 처음 밟았다. 중동 건설 현장에서 만난 어느 금융인의 말에 솔깃해 아내와 어린 자녀들을 이끌고 큰 바다를 건너 낯선 땅에 도착한 게 엊그제 같다. 

지나온 생애를 되돌아보며 고동식 장로는 “항상 요셉과 같이 꿈을 품었고 꿈을 이루고자 최선을 다했던 삶”이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요셉의 꿈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꿈 역시 이루어준 분이라는 고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이제 이른 중반, 고 장로는 요셉처럼 하나님께 받은 큰 복을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조국을 위해 흘려보내고 있었다. 

“하나님 지혜를 주세요”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 시골에서 태어난 고동식 장로는 일찍부터 부모님의 신앙을 물려받았다. 순수했던 신앙 그대로를 간직하며 성장했던 그는 1978년 군 제대 후 건설노동자 신분으로 중동국가 바레인으로 파견됐다. 중동 건설 붐이 한창 일던 당시, 모래바람이 거센 이국땅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던 여느 20대 젊은이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한국에서 가장 소중하게 가져간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다.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주로 무슬림 인구가 많은 국가가 바레인입니다. 당장 예배를 드릴 수 없어서 신우회를 만들어 건설노동자들을 모아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멋모르고 8년 동안 신우회를 인도했어요. 근무 중이던 국내 기업이 철수했지만, 현지에 남아 여전히 예배를 인도했고 1982년 바레인한인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이제 막 신혼이었던 고 장로는 한인 목회자를 청빙하고 구역 편성을 하는 등 교회의 기틀을 다졌다. 타국에서 외롭게 보내는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나누고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다. 여기저기서 모이면 300명이나 될 정도로 한인교회는 부흥했다. 지금도 바레인한인교회가 신앙인들의 그루터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크나큰 보람이자 긍지로 여겨진다. 

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있을 때, 고동식 장로는 현지 기업으로부터 근로계약 해지 통보를 받게 된다. 새로운 미래를 고민해야 할 때, 한일은행 한 소장은 고 장로에게 청정국가 호주에 대해 들려주었다. 솔깃한 마음에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호주로 향했다.

1년을 살아본 후 정식 이민수속을 밟아 멜버른에 정착하게 된다. 그보다 앞서 고 장로는 호주를 향한 꿈을 품으면서 생활을 위해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는 데 생각에 닿았다. 

“근로계약 해지 통보를 받고 기도하는데 신앙잡지에서 삼익피아노 이효익 회장님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변화된 삶을 간증한 내용이었는데, 곧바로 편지를 보내 입사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이민을 오기 전 인천에 있는 공장에서 훈련받으며 피아노 기술을 배웠습니다.”

호주 멜버른에 정착한 그는 피아노 딜러 자격을 얻고 판매를 시작했다. 호주 정부의 어떤 지원도 받지 않은 채 10개월 동안 잠까지 줄여가며 일했지만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에게는 기도밖에 없었다. “하나님 이 길을 가야 하는 게 맞습니까? 다른 길로 가야 하는 겁니까? 월세도, 자녀 교육비도 없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 다른 피아노 기업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제안해 보는 것이었다. 바로 피아노 AS. 기술자가 부족한 호주에서 그의 피아노 수리 기술은 큰 경쟁력이었다. 호주 판권을 확보한 피아노는 열심히 판매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수리를 해주며 수수료를 받았다. 

물론 그의 표현대로 ‘엄청나게’ 열심히 일해야 했다. 사람의 열심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고 장로는 “하나님이 함께하면 못 할 일이 없다, 지혜를 위해 기도하면 응답하신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수리할 때마다 고객에게 전도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내가 네 등 뒤에 있다”
고난과 역경이 다가올 때마다 고동식 장로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요셉처럼 묵묵히 꿈을 향해 전진했다. 1992년경 시드니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자 그는 시드니에 진출하기로 마음먹는다. 세계적인 악기 기업의 판권을 확보하는 건 또 새로운 도전이었다.

“판권을 얻는 게 쉽지 않아요. 역시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해당 기업의 피아노를 판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1994년부터 시작해 호주에선 늦게 해외 브랜드 피아노 판매를 시작한 편이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가장 많이 파는 딜러가 됐습니다. 제가 직접 운반을 하고 AS까지 하니까 다른 딜러들보다 저렴하게 손님들에게 팔 수 있었던 거죠. 아내와 처음 일을 시작해 2년 후부터 직원을 고용했는데, 10년이 채 되기 전에 일이 터지고 말았죠.”

다른 지역의 딜러들이 들고일어나 생트집을 잡았다. 협상단과 만났을 때 상대편은 2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 장로는 판매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계약 파기도 당했다. 

“가스펠 피아노를 질투했던 딜러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량을 자신들이 팔겠다고 가져갔습니다. 실은 앞이 캄캄했어요. 이제 어쩌나…. 운전하고 가는데 ‘내가 네 등 뒤에 있다’는 음성을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겁니다. 나중에 보니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스펠 피아노가 보유한 물량 중에는 오래된 피아노들도 적지 않았는데, 오히려 재고 정리가 된 셈이 됐다. 물량을 가지고 간 딜러들은 한동안 그 물건을 처분하느라 더 곤욕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가스펠 피아노는 판매가 더 어려워져야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호주 전역을 휩쓸 정도로 판매가 늘고 회사는 성장했다. 가격 경쟁력이 높고 가성비가 좋은 국내 피아노가 호주에서 히트를 쳤고,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좋은 직원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셨다. 

“한때는 전자피아노를 우리에게만 주지 않던 회사들이 팔아달라고 계속 요청해오는 겁니다. 지금은 그 업체들 피아노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가스펠 피아노’라고 하면 전 세계 모든 딜러가 알 정도로 유명합니다. 피아노를 제작 판매하는 기업마다 매년 가장 많이 피아노를 판매한 회사에 상을 주는데 ‘가스펠 피아노’는 단골 수상자예요. 하나님이 주신 복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가스펠 피아노는 창고마다 피아노를 가득 들여놔 두었지만 재고 파악을 하지 않는다. 고 장로는 “다윗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인구조사를 하면서까지 자기 역량을 의식했던 것과 같아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나님 주신 복, 조국을 위해서도 
고동식 장로는 2023년 12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하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민주평통 호주협의회장로 활동하며 평화통일 기반 조성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20대부터 생애 대부분을 외국에서 살았지만 그는 조국 대한민국을 항상 기억하며 살았다. 

호주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됐지만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안주하지 않았다. 교민 사회뿐 아니라 호주 시민들에게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시드니국제공항 스크린에 독도 사진을 전시했다.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를 다섯 차례나 초청해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사실을 호주 사회에 알렸다

2018년부터는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시드니 대형 공원에서 한민족축제 ‘코리안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케이팝, 한국 패션, 한국 음식을 소개하고 접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했다. 행사에 소요되는 비용은 모두 부담했다. 최근 다문화 정책부서가 이를 알고 지원에 나선 것도 은혜이다. 또 한인 아이들을 위해 동요대회도 매년 개최하고 있다. 한국 아이들이 우리말로 노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픈 마음에서 시작한 활동이다. 

“멜버른에서부터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어요. 영어 곡보다 찬송가를 알려주고 한국의 정서를 느끼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동요대회는 동요 명곡을 지정곡으로 주고, 자유곡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우리의 정서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교회학교에 대한 고 장로의 애정은 유별나다. 자신 역시 어릴 적 교회학교 교육으로 신앙을 배우고 지켜올 수 있었던 것처럼, 교회학교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해 신앙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다. 
그는 두 명의 딸에게 신앙 전수가 이루어졌고, 가스펠 피아노에서 마케팅과 회계분야 업무를 감당하고 있는 것 역시 하나님께 올리는 큰 감사라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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