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만일 타임머신을 태워줄 테니 어느 때로 가겠느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대답할 것 같다. 내 어린 시절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시골 교회에서 성탄절을 맞이하던 전날 밤으로 가겠노라고.
때는 1958년도 겨울, 그러니까 38선의 대포 소리가 그친 지도 몇 년 안 되던 무렵의 추운 겨울밤이다. 장소는 서해 천수만에서 10여 리밖에 안 떨어진 태안반도 서산군 인지면 소재의 마당만 넓던 작은 성결 교회다.
당시 인지면은 모두 초가지붕에 방 두 칸짜리 집들로만 구성된 농촌지역이었다. 그중에도 ‘인지성결교회’는 함석지붕에 유리창 달린 양옥집으로 인지면 내에서는 초등학교, 면사무소, 경찰지서에 이어 네 번째 큰 집이었다. 교회 넓은 마당 한쪽에 우뚝 선 종탑에는 길고 둥그란 포탄 껍질로 만든 종이 매달려서 매일 새벽기도시간을, 주일이면 예배시간을 알리며 여기가 바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집임을 알리는 구실을 충실히 해왔다.
이 교회가 일 년 중, 마을 사람과 어린이들에게 가장 관심을 끌던 때는 바로 이 성탄절 날이다. 그 무렵 겨울방학이 된 아이들은 지금처럼 TV는커녕 라디오도 드물던 시절, 12월 겨울밤에 이 마을에서 최고의 관심을 둘 곳은 바로 교회였다.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해서 성탄 축하 전야제 준비로 며칠 동안 시끌벅적했다. 방학이 되어 할 일도, 놀 곳도 없이 심심한 우리 또래 아이들은 물론, 농한기 주민들에게 이런 교회의 성탄절 행사를 알리는 종소리와 그 활기찬 모습은 최고의 호기심 대상이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를 따라 교회 주일학교에 다니다가 성탄절 보름 전부터 연극의 주인공으로 뽑히는 바람에 교회에서 열심히 연습했다. 그 연극의 자세한 내용도, 제목도 다 잊었지만 ‘을남’이란 주인공 이름만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그 주인공 을남이가 친구들한테 무슨 일로 따돌림 받고 늘 울기만 하다가 성탄절에 오신 예수님 만나 행복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인데, 그 연극 덕분에 난 한동안 친구들에게 ‘울냄이’란 별명을 들으며 지냈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당시 그 주인공에 자기동일시로 깊이 빠져든 탓인가, 어린 마음에도 난 외롭거나 힘들 때 간절히 예수님만 부르면 반드시 다가와 세상이 주지 못할 행복을 주시리라는 생각을 은연 중 했던 것 같다.
이런 마음이 동기가 되어선가, 성탄절 전야제를 마치면 집에 가는 대신 형과 어른들과 교회에 남아 있다가 새벽 4시면 일제히 몇 조로 나눠 새벽송을 떠나는데 끼었다. 그리고는 형과 누나들 따라 찬바람 부는 밤길을 돌았다. 그렇게 마을 고샅길을 지나며 가끔씩 캄캄한 밤하늘의 별을 보다 문득 궁금해 했던 기억도 난다. ‘산타할아버지는 지금 어디쯤 오시는 걸까’하고.
그러다 교회 어느 집사님 댁 문 앞에 와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고 힘차게 새벽송을 부르면, 집사님이 빠끔히 대문을 열고는 나와서 성탄을 축하하는 인사와 함께 우리에게 과자 봉지를 한아름 주신다. 그러면 감사하다고 받고서 그 다음을 향하는데 기와지붕집 장로님 댁에 가서는 성가대 전원을 사랑방으로 불러들여 뜨끈한 팥죽을 한 사발씩 대접받는다. 그래서 힘을 얻은 우리는 대여섯 군데 더 돌다가 교회로 돌아와서 각 가정에서 주신 과자와 과일 선물을 교회 단상에 쌓아놓는다. 그리고는 눈꺼풀이 무거워져 집에 돌아와 한숨 자곤 했다.
그리고는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자마자 성탄절 축하예배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교회로 갔다. 그리고 교회에서 만나는 이마다 “성탄, 축하해요!” 인사도 하고, 가까운 친구들끼리는 학교 미술시간에 만들어둔 성탄 축하 카드를 나누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왠지 예수님이 내 편이 되사 세상이 주지 못할 큰 복을 곧 주실 것만 같은 기대와 함께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도 밝고 활기차고 기뻤던 어린 시절 성탄절이 참으로 그립다. 그 때 누리던 그 활기와 기쁨과 감격을 다시금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 새삼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