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그들이 깨닫고 회개하여 심판을 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신 장본인이지만, 사랑하는 자기 백성이 뉘우치고 돌아오기만 하면 즉시 당신의 뜻을 접으시는 분입니다. 아모스가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15절)고 외친 까닭이 그것입니다. 혹시… 불쌍히 여기시지 않겠는가… 선지자의 가슴에 눈물이 뱁니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의 인내가 계속되고 있지만 언젠가 끝이 이르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의 외침을 듣고도 악행을 거두지 않은 이스라엘은 심판을 향해 한 걸음씩 더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아모스는 심판이 시행된 이후의 광경을 눈에 떠올리듯 슬픔과 적막이 깃든 광경을 묘사합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 모든 거리에서 ‘슬프도다 슬프도다’ 하겠으며 농부를 불러다가 애곡하게 하며 울음꾼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5:16~17) 광장은 활기가 넘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만남과 거래가 이루어지며, 관리들과 장로들이 모여 국정을 논하고 재판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모스가 본 광장은 적막과 슬픔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웃음 대신 눈물을 터뜨리고, 슬픔을 자아내는 전문가들인 울음꾼들이 모자라 농부들이 동원되고 장례가 잇닿는 모습… 모두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간”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위험합니다. 그분과의 접촉은 사람의 생사가 달린 일이었기에 하나님이 택하시고 훈련하신 제사장들이 그분 앞에 수종 들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했으며, 올바른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제사장들도 하나님의 진노를 입었습니다. “아론에게서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났더니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민 26:60~61) 하나님이 승인하지 않으신 ‘다른 불’(strange fire)을 드린 결과입니다. 다윗의 시대에도 주목할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엘리 제사장의 시대에 블레셋 군대에게 탈취당했다 떠돌고 있던 법궤를 되돌려 오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법궤를 모셔오는 과정에서 수레에 실린 법궤가 흔들리자 무심코 그것에 손을 댔던 웃사가 죽고 말았습니다. 경악한 다윗은 그토록 사모했던 법궤 유치를 잠시 멈추게 됩니다.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삼상 6:6~8)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데도 아모스의 시대의 이스라엘은 앞뒤를 분간 못하고 ‘여호와의 날’을 외쳤습니다. 그날은 하나님을 대적한 이방 백성들이 심판받는 날이며, 이스라엘이 높임 받는 축제의 날이라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경고합니다. 정말 여호와의 날이 닥친다면 그들의 기대와는 딴판이 되리라고 말입니다.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18절) 여호와의 날이 빛이 아닌 어둠이라니, 충격적인 반전입니다. 그날에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듯, 칭찬과 상급을 기대했다가 심판을 맞게 될 것입니다.(19절) 이스라엘이 이번만큼은 그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백석대·구약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