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가 아름다운 이유는 여러 색의 조화 때문이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깔은 각각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로 어우러질 때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낸다. 단일민족인 대한민국에서도 이렇게 각자 다른 색의 매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어우러진 ‘무지개학교’는 한국 사회에 다양성의 가치를 일깨우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한다.
소설가이자 동화작가로 활동 중인 박경희 작가(동숭교회)가 초등학교 중학년을 위한 장편동화 『고려인 마을 무지개학교(도서출판 이지북)』를 펴냈다. 『고려인 마을 무지개학교』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사샤가 할아버지의 나라 대한민국에 정착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다뤘다. 동화 중간중간에 칼라 삽화를 더해 읽는 이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 책은 할아버지의 나라이자 BTS(방탄소년단)의 나라를 찾아온 사샤가 엄마와 함께 광주 고려인 마을에 정착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엄마는 간호사로 일하고, 사샤는 무지개학교에 전학해서 다양한 친구들과 만나게 된다. 한민족의 피가 흐르지만 각자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른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 광주 고려인 마을 무지개학교에 모인 아이들은 서로의 다름에 대해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가시를 세운다. 과연 이 아이들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4명의 무지갯빛 아이들의 만남
『고려인 마을 무지개학교』는 러시아 벌목장에서 사고로 아빠를 잃고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의 나라에 찾아온 고려인 사샤를 주인공으로,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시민활동가의 딸 빛나, 중국에서 탈북자의 딸로 태어나 국적 없이 전전했던 온희, 그리고 가족을 버린 아빠 때문에 분노를 참지 못하는 진수까지 무지개학교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다. 무지개학교에는 4명의 주인공을 비롯해 몽골과 중국, 베트남에서 온 다문화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었다.
고려인 마을에 정착한 사샤에게 닥친 가장 큰 위기는 언어. 타슈켄트에서 한글학교를 다녔지만 한국말이 영 서툴기만 하다. 같은 반 친구 진수에게 무시를 당하고 친구들의 따돌림을 경험하는 사샤. 시원하게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사샤에게 먼저 말을 건넨 건 ‘무국적자’로 세상에 존재조차 알리지 못했던 온희였다. 그리고 그런 진수와 사샤를 화해로 이끄는 ‘빛나 누나’는 엄마가 없어도 씩씩했다.
가슴 속에 상처 하나씩 안고 있는 무지개학교 아이들은 봄 축제로 마음을 연다. 빛나가 활동하는 오케스트라 밴드를 통해 함께 노래할 기회를 얻게 된 것. 축제가 시작되고 아이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의 전통 옷을 입고, 부모들은 음식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광주라는 도시에 작은 지구촌이 펼쳐진 것이다. 이곳에서 사샤와 온희, 진수 세 친구는 ‘아리랑’을 불렀다.
우리 조상들의 노래, 한민족의 대표 민요는 그동안 다르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을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우즈베키스탄 전통 옷을 입은 사샤와 한복을 입은 진수와 온희. 빛나 누나의 힘찬 지휘 속에 울려 퍼지는 ‘아리랑’은 고려인마을 무지개학교에 모인 모두를 하나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세상 앞에 당당히 나서는 고려인
탈북대안학교인 하늘꿈중고등학교에서 10년간 인문학 수업을 지도하며 글쓰기를 가르쳤던 박경희 작가는 『리정혁의 백두산 하이킹』, 『리루다네 통일밥상』, 『난민소녀 리도희』, 『류명성 통일빵집』 등 탈북 아동과 청소년을 소재로 다양한 동화와 소설을 펴냈다. 같은 민족이지만 다른 시선에 놓인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면의 상처까지 담아내며 탈북자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포용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에는 탈북자를 넘어 한민족의 정체성을 안고 고국을 떠나 머나먼 북방지역에 정착해야 했던 고려인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더 큰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화를 위해 광주광역시 고려인 마을과 경기도 안산시 땟골마을을 찾아가 고려인의 삶을 직접 마주한 박경희 작가는 “사샤를 불쌍한 아이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나라에 와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멋진 사샤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박 작가는 이 땅에는 분명 존재했지만 그동안 조명받지 못한 다양한 어린이들의 연대를 ‘무지개’라는 상징물로 그려냄으로써 각자의 사연이 어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앞에 당당히 나서도록 이끌고 있다.
‘고려인’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을 아이들에게 작가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사샤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사실 우리와 한민족이랍니다. 고려인은 19세기 중엽부터 8.15 광복 때까지 러시아와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과 친족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연해주 이주 이야기는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아픈 역사이기도 하고요. 사샤와 같은 고려인이 우리나라에 꽤 많이 살고 있어요. 사샤와 독자 여러분은 ‘다르지만 같은’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