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청소년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입시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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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청소년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입시지옥’
  • 김태현 기자
  • 승인 2024.07.18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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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생명으로 (22) 대한민국 입시전쟁 현주소(상)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말이지만 이는 슬프게도 한 여중생의 유서에서 나온 말이다. 1986년 1월 15일 전교 1등이었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8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당당하게 성적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사회일까.

2022년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학습 시간은 초등학생이 하루 평균 5시간 9분, 중학생이 7시간 10분, 고등학생은 8시간 2분으로 조사됐다. 이는 정규 공교육 수업과 자습 및 사교육 등을 포함한 시간으로 평일만 해당한다. 고등학생의 경우 주말에도 4시간 이상 학습한다고 응답했다. 2009년 OECD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청소년의 일주일 평균 학습 시간은 49시간으로 조사됐다. 당시 OECD 국가의 평균은 약 33시간이었으니 우리나라 청소년이 약 15시간 이상 공부를 더 했던 셈이다. 2022년 조사에서는 우리나라 고등학생 기준으로 봤을 때, 크게 학습 시간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교육열과 입시경쟁이 여전히 치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여중생의 외침은 공허하게 흩어졌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열을 가진 나라다.

치열한 입시경쟁은 학부모와 학생 모두에게 큰 부담을 준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OECD 국가 중 가장 오래 공부한다. 작년 우리나라 사교육 총 지출은 27조원에 달했다.
치열한 입시경쟁은 학부모와 학생 모두에게 큰 부담을 준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OECD 국가 중 가장 오래 공부한다. 작년 우리나라 사교육 총 지출은 27조원에 달했다.

어긋나버린 자녀 사랑
교육열은 사교육에 대한 투자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사교육 지출은 작년 27조원에 육박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사교육비가 한차례 크게 감소했지만(7.8%) 이후 2021년부터 다시 반등하는 추세다. 저출산으로 인해 학령인구는 줄어들고 있지만 사교육 지출은 오히려 증가해 가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는 고등학생의 경우 1명당 평균 7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용을 지출했으며, 서울의 경우 100만원 이상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들의 사교육 지출 비용이 큰 서울 대치동이나 목동 등에서는 소위 말하는 ‘돼지엄마’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돼지엄마란 학원이나 강사에 대한 정보를 손에 쥐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권력을 갖는 학원생들의 대표를 말한다. 그들은 자녀를 좋은 대학으로 보내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은 물론 많은 학생들을 유치하고 싶어 하는 학원가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를 이용해 강사와 학부모를 연결해 특별 입시반을 조직해 운영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한다. 돼지엄마들은 단순히 이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학부모 식사 자리에서 돼지엄마가 등장하면 일동 기립하고 학원 강사의 ‘몸값’을 책정하기도 한다.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학부모를 모임에서 퇴출하거나 학원에서 그 학부모의 아이를 내보내는 등 전횡을 일삼는다. 입시 컨설팅 ‘학원’의 출현과 입시사정관 제도의 정착으로 그 세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외에도 ‘공부 잘하는 약’이라 하여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ADHD) 약을 처방받아 아이에게 복용시키는 일까지 발생했다. 최근 서울 등 대도시에서 청소년 ADHD 환자가 60% 넘게 증가했는데 통상적으로 ADHD 환자는 8~9세 경에 진단받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정상적인 수치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ADHD 진단과 약 처방이 급증한 것은 ADHD 치료제가 수면욕 감퇴와 집중력 향상을 가져오는 소위 ‘공부 잘하는 약’으로 알려진 탓이라는 추측이다. 안타깝게도 연구에 따르면 이 약은 ADHD 환자가 아니라면 복용해도 학습 능력이나 사고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ADHD 환자가 아닌 경우 복용한다면 오히려 학습 능률의 저하를 가지고 올 뿐만 아니라 두통 및 복통, 조증과 공격성을 야기한다고 전했다. ADHD 환자가 아닌 자녀에게 공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약을 먹이는 것은 자녀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자녀를 망가뜨리는 행동이라는 것을 학부모들은 인지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사교육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연령대다. 영어교육 전문기업 윤 선생의 조사 결과 우리나라 미취학 아동이 처음 사교육을 받는 나이는 생후 55개월이다. 이는 최근 생겨난 ‘4세 고시’라는 신조어와 연관돼 있다. 4세 고시란 영어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한 ‘레벨 테스트’를 지칭한다. 4세 고시는 알파벳 대소문자 읽고 쓰기, 영어 회화 등으로 구성된다. 테스트에 떨어질 경우, 최소 3개월에서 최대 6개월 후에나 다시 테스트를 볼 수 있다.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한 4세 고시 준비하기 위해 아이들은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다닌다. 대소변을 가리거나 연필을 쥐기도 어려운 어린아이들이 사교육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조기 영어교육이 효과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두뇌 발달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입을 모은다. 육아정책연구소의 보고서 <유아 사교육 실태와 개선 방안: 조기 외국어 교육 효과를 중심으로>에서는 조기 외국어 교육의 효과에 대한 부정적인 결과를 도출했다. 또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15년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0%가 조기교육이 영유아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고 응답했다.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박상진 소장(한동대 석좌교수)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먼저 부모의 욕망에서 기인한다. 자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잘못 표출되면 아이를 오히려 괴롭히고 망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사회 구조 역시 문제다. 명문대를 입학해서 대기업에 들어가는 획일적인 구조를 ‘성공’이라 치부하고 있다. 이는 개개인의 개성을 죽이고 경쟁을 부추긴다”고 전했다.

병들고 의욕 잃는 아이들
어마어마한 사회 비용의 지출과 소모적인 경쟁을 만드는 사교육은 결국 청소년들을 병들게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것은 더 이상 충격으로 여겨지지 않는 당연한 뉴스가 되어 버렸다. 2011년부터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2022년에 청소년은 10만명 당 7.2명이 자살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간한 <2022 아동·청소년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이행 연구-한국 아동·청소년 인권실태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해본 청소년은 응답 청소년 중 33.5%였다. 그중 44.3%가 학업이나 성적 때문에 자살을 고민했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과도한 입시 스트레스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자살 문제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68.9%가 학업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으며 25.9명은 자살이나 자해를 떠올렸다고 응답했다. 또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주관한 ‘2023 아동행복지수’ 조사에서 86.9%가 행복지수가 ‘하(下)’라고 응답했다. 4점 만점 중 전체 평균은 1.66점으로 집계됐다. 이외에도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발간한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연구 조사 결과 보고서>, 세이브더칠드런의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 등은 우리나라 청소년의 행복 지수가 전 세계 최하위권에 머무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도한 입시경쟁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학 입시에 모든 힘과 열정을 쏟다 보니 입시는 결승점이 되어 버린다. 대학에 입학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공부보다 자유를 누리느라 바쁘다. 2019년 조사 결과 우리나라 대학생 하루 평균 학습 시간은 3시간 29분으로 초등학생보다도 학습 시간이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상진 소장은 “대학생들이 명문대 입학만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며 “개개인의 달란트와 역량을 꽃피울 수 있는 교육이 아니라 입시만을 위한 획일화된 교육을 하니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도 공부에 재미를 못 붙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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