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둘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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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둘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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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7.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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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 목사/해뜨는교회
김창기 목사/해뜨는교회

형통한 삶

여호수아 1:5~9
찬송: 384장

모세 다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전쟁을 치러야 하는 여호수아의 입장은 마치 하루하루를 전쟁 같은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의 인생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고 형통한 삶을 사는 비결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십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이란, 요셉처럼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형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인생에 위기가 찾아오면 누구나 두려워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에게는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신뢰함으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둘째,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다윗도 간증하기를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자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시 1:2~3)고 했습니다. 
셋째, 말씀을 실천할 때 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기록된 말씀을 지켜 행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주어진 이 하루의 삶이 말씀을 가까이하고 실천하는 현장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나와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박현욱 목사/창대교회
박현욱 목사/창대교회

제자들의 관점과 예수님의 관점

요한복음 9:1~7
찬송: 463장

이색 직업 중에 ‘관점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관점 디자이너’의 정의는 ‘사람들의 관점을 바꿔 기존 생각의 틀이나 방향을 바꾸는 일을 디자인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이 꼭 ‘관점 디자이너’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기존 관점을 계속해서 수정 보완합니다. 제자들이 인간적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을 갖도록 교정합니다.
요한복음 9장에 날 때부터 맹인이 나옵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어려움이나 난관을 겪으면, 그 사람이 지은 ‘죄’이거나 그 부모가 지은 ‘죄’의 결과라는 관점으로 봅니다. 이것은 오랜 세월 이스라엘 사람들을 지배해 온 전통적 관점입니다. 이런 관점은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도록 만듭니다. 그 사람을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정죄하도록 만듭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맹인 된 상태보다 앞으로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행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보도록 제자들의 관점을 교정해 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잘못된 관점도 교정해 주길 원합니다. 자문해 볼 시간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점을 가지고 사람과 세상을 보는가? 나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의 기도
인간적 관점이나 전통적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과 세상을 보게 하옵소서.

 

황빈 목사/강성교회
황빈 목사/강성교회

벌거벗겨진 사울

사무엘상 19:18~24
찬송: 525장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시도는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은 사무엘을 찾아 라마 나욧으로 갔고, 사울은 거기까지 추격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임하여 예언하게 하신 것입니다(23). 언뜻 이해가 잘 안되는 대목이지만, 그 다음 장면을 보면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 앞에서 옷을 벗고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를 하루 밤낮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하나님의 영을 받아 예언을 한 것은 사울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사울은 다윗을 잡아 죽이기 위해 세 차례나 전령들을 보냈는데, 그때마다 그들 모두 하나님의 영을 받아 예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옷을 벗지는 않았습니다.
사울은 지금 사무엘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고 누워 있습니다. 그가 벗은 옷은 무엇입니까? 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옷 즉 왕복을 벗기셨습니다. 폐위 당한 부끄러운 왕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기회를 주셨지만 사울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에 의해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경고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계속 회개하기를 거절하면 우리도 사람들 앞에 벌거벗겨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추려 했던 추악한 죄악의 그림자가 드러날 것입니다. 부끄러움 당하기 전에 주님께 회개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품으로 속히 회개하여 돌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신성훈 목사/신일교회
신성훈 목사/신일교회

고난 중의 질문과 대답

욥기 1:6~12
찬송: 412장

하나님께서는 욥을 향해 “그와 같은 의인은 세상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바로 이의를 제기합니다.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그가 누리는 축복의 이유들을 제하시면 하나님을 욕하고 넘어질 것입니다”라며 욥에게 혹독한 시련을 줍니다. 그것이 시험이며, 동시에 시련이며, 유혹자의 유혹이며, 삶의 현실에서 당하는 고난과 환난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인류사의 태초부터 온 천하를 꾀는 자였고 그 목적은 강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그는 참소하고 정죄합니다. 이같이 성화의 옥석을 가리기 위한 삶의 고난은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고난 자체는 험하고 힘들더라도 그것은 우리 믿음의 순전한 의와 성화를 입증케 하기 위한 소중한 은혜의 일면이기도 합니다. 욥의 사건은 단순한 고통과 행불행의 문제가 아니며, 의와 불의에 관해 하늘과 땅으로 얽힌 영적 고차원 난제입니다. 주님은 오직 우리가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고난이나 염려하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축복으로 바꾸시고 더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절대주권자 하나님이 그 모든 일 전부를 통제하고 계십니다. 고난과 시련에는 피할 길이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고난 중이라도 잘 인내하고 충성하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성화와 더불어 갑절의 축복을 보며 주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고난 중이라도 잘 인내하고 충성하여 갑절의 축복을 받으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김영수 목사/소풍교회
김영수 목사/소풍교회

무엇을 버릴까?

마태복음 19:23~30
찬송: 341장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하나님만이 이루시는 귀한 은혜임을 가르쳐 주셨고 제자들이 깨닫기를 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베드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베드로의 질문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를 생각하게 해주는 질문입니다.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이유 중에 하나가 있다면 내가 버린 것들보다 더 귀한 것을 예수님을 통해 얻고자 함과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을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땅의 일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 무엇을 버릴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며 ‘무엇을 얻을까?’에 집중된 신앙생활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을 버릴까?’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이 원하는 것을 버리며 살게 하소서.

 

피은혜 목사/새창원은혜교회
피은혜 목사/새창원은혜교회

‘쉼’

마태복음 11:28~30
찬송: 419장

주님은 나의 자유이며 평안이심을 고백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이 평안은 진정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쉼이 필요합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입니다. 힘든 노동을 하다가도 잠시의 쉼이 새 힘을 얻게 하듯이 우리의 영혼에도 쉼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근심, 걱정, 염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심령을 불안하게 하고 이는 우리로 정상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무거운 짐들을 자기에게 가지고 오라 하십니다. 특별한 누구만이 아니라 누구나 다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나아갈 때 세상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평강과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주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고, 내 멍에를 매라 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아갈 때에 거기에는 어디에도 평강과 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멍에를 함께 매고 주님과 동행할 때에는 그 곳이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할지라도 평안과 쉼을 누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마음의 무거운 짐을 주님께 다 맡기십시다. 주님의 멍에를 함께 매고 그분의 말씀에 이끌리고 사명에 이끌려 함께 갈 때에 위로부터의 놀라운 평안이 우리와 함께 할 줄 믿습니다. 이러한 평안과 쉼을 누리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쉼을 누리는 가정이 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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