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 로마와 전투 앞두고 유대인 내부 분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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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 중간사] 로마와 전투 앞두고 유대인 내부 분열 발생
  • 김병국 교수(백석대 신약신학)
  • 승인 2024.07.1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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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교수(백석대·신약신학)
김병국 교수(백석대·신약신학)

✽ 열심당원들의 한심한 행동들
결국 예루살렘은 로마군에 의해 포위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에서 한심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첫째, 그들은 유대인들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오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이 이방인들에게 점령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오는 것을 장려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로마에 의해 학살당하고 포로로 잡힌 유대인들의 수가 그토록 많았던 것입니다.

둘째, 유대인들은 로마와 전투를 벌이기 전에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였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로마에 항복하자는 온건파와 끝까지 항전해야 한다는 강경파가 대립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예루살렘에서는 화재가 발생했고 열심당원들이 주축이 된 강경파들은 항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자면 유대 반란군 지도자들의 대다수는 로마군이 아니라 유대인들에 의해 이 때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셋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배수진을 펼치기 위해 성안에 있던 식량을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나중에 많은 군인들과 주민들이 굶어 죽게 됩니다.

요세푸스는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런 사람들과 함께 갈릴리에서 전투를 하면서 회의를 느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생기자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항복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자라고 부르며 미워하는 동족들에게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로마에서 자서전을 썼던 것입니다.

✽ 전쟁의 마무리
예루살렘 전투는 참혹했습니다. 로마군은 도시에서 탈출하려는 자들은 모두 잡아서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까지 약 일만 명이 십자가형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주후 70년 8월 10일에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9월 20일에는 예루살렘에서의 모든 저항이 사라졌습니다. 이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유대인의 수는 약 9만 7천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전 벽을 하나 남겨 두었는데 그것은 자비를 베풀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내가 이토록 높은 벽을 가진 큰 도성을 점령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벽이 지금도 남아 있는 통곡의 벽입니다.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사실상 전쟁을 끝낸 티투스(Titus)는 71년에 로마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도 소수 과격파들의 항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서남쪽 30km 지점에 있던 헤로디움과 사해 동쪽의 마카이로스, 그리고 사해 서쪽에 있는 마사다 요새에서 최후의 항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항전은 티투스의 후임으로 전투를 맡았던 플라비우스 실바(Flavius Silva) 장군이 주후 73년에 마사다 요새를 손에 넣음으로써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백석대·신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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