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행전] “지금 내 인생의 대사(臺詞)는 내 양 손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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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행전] “지금 내 인생의 대사(臺詞)는 내 양 손이 쓰고 있다”
  • 이의용 교수
  • 승인 2024.06.1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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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 (84)
이의용 교수
이의용 교수

“당신의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10군데만 적어보세요!” 강의 때 가끔 이런 걸 주문하곤 한다. 수강생들은 10가지를 잘 적어내려 가다가, 10가지를 거의 다 채우기 직전에 고민하기 시작한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남아서다. 그래서 이미 적은 걸 지우고 다른 걸로 바꾸기도 한다. 10가지를 다 적게 한 후, 나는 이어서 또 주문을 한다. “이번에는 10가지 중 5가지를 줄여보세요!” 정말 잔인한 주문이다. 우리 몸에서 없어도 되는 건 단연코 하나도 없다. 

대학생 때 생손을 앓아본 적이 있다. 손톱 사이에 생긴 염증이 도져서 한 달 동안 오른손 전체를 쓸 수가 없었다. 글씨를 쓸 수 없었고, 젓가락질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이 아픈 것 같았다. 평소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실감했다. 사람에게 손은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내는 구체적인 소통의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손부터 잡는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부모와 자녀, 부부, 연인들은 아무 때나 손을 잡고 걷는다. 그러나 마음으로 거리감이 있을 때에는 그게 잘 안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로 잘 알려져 있는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는, 그가 아내와 손을 잡고 서 있는 동상이 있다. 그들 부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사람들로부터 불륜을 의심받았다. 푸시킨은 아내의 불륜 상대로 알려진 이와 결투를 벌이다 이틀만에 죽는다. 38세, 결혼 6년여만에. 그래서일까? 그들 부부의 동상을 자세히 보면,  잡은 두 손 사이가 떨어져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은 일에 손을 대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일에 손을 대기도 한다. 우리의 손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느냐가 우리 인생을 평가해준다. 우리 인생의 대사(臺詞)는 우리의  손이 쓰는 것 같다.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으로 전 세계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벨기에 태생의 여배우 오드리 햅번.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백일해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열 살 때에는 부모의 이혼으로 할아버지에게 맡겨졌다. 그녀는 영국으로 건너가 연극과 영화의 벽을 수없이 두드렸고 고생 끝에 은막의 여왕이 되었다. 

오드리 햅번의 두 손 이야기
은퇴 후 그녀는 유니세프의 친선대사가 되어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의 슬픈 현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특히 소말리아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구호의 손길을 달라고 전 세계에 호소했다.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진통제를 맞으며 활동을 했다. 백일해로 고통받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러다가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스위스 고향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가족들에게 이런 시를 읽어주었다.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어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져서는 안 된다. 기억하라. 만약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그리고 한 달 후 그녀는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가 만난 햅번의 진짜 아름다운 모습은 영화 스크린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였다.” 

그녀는 영화에서는 남이 써준 대사대로 말했지만, 실제 삶에서는 자기 삶으로 쓴 대사로 말했다. “우리에게는 두 손이 있다. 왼손은 우리 자신을 돕는 손이고, 오른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이 한 줄의 대사는 영화 속에서 그녀가 읽은 그 어느 대사보다도 더 진한 감동을 우리에게 준다. 지금 나의 두 손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우리 인생의 대사는 지금 우리의  두 손이 쓰고 있다. 우리는 어떤 대사를 쓰고 있는가?

(사)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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