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 중심 동반자 선교·이주민 선교 중심 전략으로 제시
길이 꺾였다면 핸들을 틀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지나는 동안 세계 선교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파송 위주, 파송 교회 위주, 일방적 선교 위주였던 한국선교에도 이제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세계선교위원회(사무총장:강대흥 선교사·KWMA)는 지난 6월 있었던 제8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의 아이디어와 과제를 이어가기 위한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한다. 내년 하반기까지 총 11차례의 라운드 테이블 모임이 계획된 가운데 지난 5~6일 송도 쉐라톤 그랜드호텔에서 2차 모임을 가졌다.
달라진 선교의 축
방향전환을 위한 첫 번째 과제는 현지교회와의 동역이다. 사실 한국교회의 선교는 처음부터 현지교회와의 동반자 선교로 시작했다. 1913년 한국교회는 중국 산동에 사병순, 김영훈, 박태로 목사를 파송하며 “선교사가 중국에서 사역을 할 때에 자유 교회를 설립하지 말고 현지 장로회와 연합할 것”을 결의했다.
해방 이후의 선교 역시 동반자 선교였다. 해방 이후 최초의 선교사로 태국에 파송된 최찬영, 김순일 선교사는 태국기독교총회(Church of Christ in Thailand)의 초청을 받아 파송됐고 언어 훈련을 마친 뒤 치앙라이 노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현지교회와 원활한 협력 사역을 이어갔던 이들은 외국인이면서도 현지 총회의 치앙라이 노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선교사 파송에 불을 붙던 시기, 아이러니하게도 현지 교회와의 동반자 선교라는 좋은 전통은 빛을 잃었다. 라운드 테이블에서 발제를 맡은 강대흥 선교사는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정부는 여행 자유화를 선포했고 선교사들은 초청자 없이도 외국으로 출국했다. 당시엔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으면 건강한 교회가 아닌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이 때문에 점검 받지 않은 이들이 선교사로 파송을 받는 경우도 있었고 선교 전략과 훈련도 부족했다”고 되짚었다.
현지에 대한 분석과 철저한 훈련 없는 파송이 늘어가다보니 선교의 초점은 선교지가 아닌 파송 교회에 맞춰졌다. 선교 사역의 방향은 현지의 필요와 상황에 맞춰져야 함에도 파송 교회 담임 목사의 결정에 따라 사역의 향방이 결정됐다. 이는 결국 영혼 구원과 장기적 선교 전략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건물을 짓는데 치중하는 보여주기식 선교, 물량주의 선교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선교의 중심축이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옮겨온 것이다. 강 선교사는 “지난 50년간 서구권 선교사의 파송 수는 거의 달라지지 않은 것에 반해 비서구권은 약 7배 가량 증가했다. 앞으로의 선교는 비서구권이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선교 중심축의 이동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동안 서구권의 선교는 ‘힘의 선교’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경제력과 문화수준이 월등한 서구권이 비서구권에 자본을 쏟아부었고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웠다. 하지만 비서구권 선교사들에게는 건물을 세우고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자본이 부족하다. 자연히 선교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굵직한 변화는 ‘오는 사람에 대한 선교’다. 이전에는 선교지에 나가야만 선교 대상자를 만날 수 있다 생각했다면 이제는 상황과 관점이 달라졌다. 우리나라에 찾아온 이주민의 숫자만 260만 명에 이른다. 선교를 다른 문화권에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이해한다면 더 이상 국경을 넘어가지 않아도 선교가 가능하다. 더군다나 국내에서라면 파송 받은 몇 명의 선교사가 아닌 모든 교회, 모든 성도가 선교에 참여할 수 있다.
이는 세 번째 변화와도 연결된다. 선교사만에 의한 선교가 아닌 모든 성도에 의한 선교다. 강대흥 선교사는 “이제는 선교사가 아닌 ‘선교인’을 세워야 할 때다. 이미 선교인(Mission-minded Christian)을 세우기 위해 15번 이상의 세미나를 가졌고 올해 말 발기총회도 진행하게 된다. 선교는 몇몇의 특정 사람이 아닌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반자의 마음으로 지금 이곳에서
제시된 변화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지침도 발제로 이어졌다. 먼저 권성찬 선교사(GMF 대표)가 ‘비서구 선교의 동반자가 되기 위한 숙고’를 주제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권 선교사는 우리의 질문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이제 ‘선교를 어떻게(How) 해야 하는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선교란 무엇(What)인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선교가 무엇인지 묻기 위한 전제 조건은 지나온 우리의 선교 방식에 대한 성찰이다.
권성찬 선교사는 “모든 분야가 그렇듯 선교에서도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교회 선교는 갑작스러운 양적 성장으로 인해 그 부분을 간과해 왔다. 이제 그 결과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며 “성찰의 부족으로 인해 선교에 대한 좁은 이해와 실행 중심의 선교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성찰로 드러난 문제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는 비서구 선교 시대에 동반자 선교를 이루기 위해 새로운 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도구를 쥐어주는 방식이 아닌 도구를 스스로 만들도록 돕는 선교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성경을 직접 번역해 현지에 건네줬다면 이제는 성경번역과 관련된 다양한 훈련을 현지인이 경험하게 함으로써 현지인 스스로 현지 교회와 더불어 성경을 번역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권성찬 선교사의 두 번째 제안은 ‘모터보트’에서 ‘범선’으로의 전환이다. 모터보트는 강한 엔진을 부착해 파도에도 불구하고 목적지를 향해 나간다. 그렇기에 지나간 자리에 강한 파도를 만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에 반해 범선은 돛을 달고 바람에 방향을 맡긴다. 얼핏 과거로의 회귀처럼 비치지만 정확히는 본질로의 회복에 가깝다.
권 선교사는 “강력한 동력으로 우리가 의도한 방향의 선교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한 선교가 아닐 수 있다. 비록 성가시더라도 성경이 이야기하는 선교, 바람직한 선교를 지속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 번째로는 중앙에 모여 전략을 수립하고 과업을 하달하는 방식이 아닌 다중심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는 “비서구와 함께 가는 선교는 본질을 적용하는 방식을 모색하며 이미 적용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이야기, 성취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깊은 성찰을 나누는 연대 모임이 돼야 한다”며 “적은 수가 모이더라도 깊이 숙고할 수 있는 모임을 지향하고 비서구의 리더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위디선교회 문창선 선교사는 ‘국내 250만 이주민 선교를 위한 매뉴얼’을 제시했다. 7단계의 걸음으로 분류된 매뉴얼의 첫 번째는 ‘이주민들을 향한 비전을 기꺼이 받아들여라’는 선포로 시작한다.
문창선 선교사는 “이주민 현상은 점점 확대되고 있는 세계적이고 지역적인 현실이다. 이들은 변화에 열려 있고 복음에 열려 있다. 이들을 향한 사명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이주민 선교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두 번째는 ‘올바른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다른 문화나 종족, 민족을 향해 편파적이거나 자기중심적, 시혜적인 태도를 갖지 않음을 의미한다. 셋째는 ‘당신의 이웃을 조사하라’로 이웃에 있는 이주민들이 어떤 특징을 갖고 어떤 필요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넷째로 강조되는 것은 ‘통전적 사역’이다. 이주민 사역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배경의 사람들과 협력하고 정부 및 비정부 기관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 다섯째론 ‘효과적 사역’이 필요하다. 문화적 민감성과 언어 훈련을 통해 복음의 문을 열고 접촉점을 넓혀야 한다.
여섯째와 일곱째는 ‘진정한 관계’를 맺고 ‘이주민 성도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문창선 선교사는 “이주민과 자신을 동일시 여기고 사적인 관계로 함께해야 한다. 신앙을 내보이되 신앙을 강요하지는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며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리더로 세우고 선교의 비전을 제시하면 사역이 더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