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전 체제는 제국주의식 선교방법”
손인웅목사/덕수교회
‘대형 교회의 열심은 아무도 못 말린다’고 한다. 선교적 열정이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그 열심이 성장제일주의라는 세속적인 논리에 근거하여 대기업의 확장주의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교회들은 전국 각 지역에 지성전을 설립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침체된 선교 열정을 일깨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한다. 모든 자원을 동원함으로써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선교에 동참하고, 해당 지역에서도 새로운 전도 운동을 일으키며, 효과적 선교방법의 적용과 충분한 재정지원을 통해 단기간에 자립 교회를 세운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지성전을 지역 선교의 중심으로 삼아 중앙 성전의 세력을 확장하는 전진기지로 활용한다는 선교전략은 이미 폐기처분된 제국주의식 선교 방법임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선교신학에 근거한 새로운 선교의 개념을 정립해야만 한다. 중앙 성전과 지성전 체제 개념은 다분히 세속적인 발상으로 자본주의의 타락에서 발생한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이론에 근거한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체제의 지성전은 인사, 행정, 재정, 예배, 선교 등 모든 것을 중앙 성전에서 통제하고 관장함으로 명실 공히 전제군주시대 중앙집권제의 구습을 재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교회의 행태는 대기업의 횡포로 중소기업을 말살하는 경우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지금은 창조적 자율성과 평등의 가치를 존중하는 지방분권시대라는 것과 이러한 민주주의 제도가 장로교회에서 나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형 교회의 공헌은 적지 않다. 작은 교회가 할 수 없는 국내선교와 사회봉사와 교육 등을 많이 수행함으로써 기독교의 세력을 과시하는 면이 있다. 대형 교회들 가운데서도 모범적으로 목회를 하는 교회들이 있다. 대형 교회들이 전심전력을 다해서 선교와 사회봉사를 실천한다면 기독교에 대한 사회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구조적인 취약성 때문에 시한폭탄 같은 위험성은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
지성전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① 모든 교회는 주님의 교회라는 공교회(公敎會)의 개념을 가지고 개인주의적 사욕과 영웅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의 사유화 의식에 근거한 세습문제나 지성전식 확장주의, 무한 경쟁이라는 세속적인 욕망도 다스릴 수 있다.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한다. ② 선교와 교회 개척이라는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열심으로 승화시켜 나가야만 한다. 청주의 C교회는 본 교회를 계속 키우지 않고, 각 지역에 많은 교회들을 개척해 부목사들에게 위임하는 미덕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곧 예루살렘·안디옥·에베소 등의 교회들이 설립되는 기본 방식이었다.
교회가 장성하면 자연스럽게 교회를 낳게 된다. 예배당을 건축하면 교역자를 해당 지역의 노회를 통해 파송하고, 재정과 행정, 예배, 교육 등 모든 것을 완전하게 독립시켜야 한다. 이 땅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다는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하나님 나라 실현이라는 궁극적인 선교적인 비전을 가지고 이상적인 교회상을 꿈꾸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고 가꾸는 데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교회·목회에 대한 신학적 감시 필요
이정익목사/신촌성결교회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풍부한 자본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자본은 세계적인 대표적 초대형 교회들이 출현하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재정자본의 풍부함은 한국교회의 또 다른 장점에 속한다. 재정이 풍부하다 보니 한국교회가 세계적으로 역할의 범위도 자연스럽게 넓어지고 있다. 여기에 선교적 자본도 얼마나 풍부한가. 또한 넘치는 목회 지망생이며 줄을 잇는 선교사 지망생의 출현은 한국교회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세계적 선교 사명을 지원하고 떠받치게 되는 후원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지게 한다.
이런 점들은 한국교회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이고 자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기독교적 자본은 전도하기 좋은 신앙적 환경을 지닌 우리 사회의 종교적 풍토를 들 수 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한국교회의 성장 기조는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이 잘만 한다면 이 좋은 신앙적 풍토와 자본을 가지고 상당기간 기독교 시대를 유지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전망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같은 환경과 신앙적 풍토에도 불구하고 장점들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탄을 받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교회 본연의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들도 목회자의 양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본과 길을 무시하면 공동체는 깨진다. 그 질서의 깨짐은 곧 공동의 삶이 희생당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희생이 자신에게도 미치게 된다.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는 바로 이 개인주의적 교회들의 무분별한 행동이 전체에 부정적으로 미치고 있다는 점이며, 그 부정적 영향은 곧 머지않아 자신에게도 미치게 됨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원칙은 목회신학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신학은 뼈대, 길, 가이드 라인인 동시에 잣대라고 할 수 있다. 목회신학이라는 잣대에 맞추어 교회와 목회가 바로잡혀야 한다. 그 점을 신학자들은 감시·고발·지적해야 한다. 감시의 소리가 약화되고 원칙에서 벗어나 있는 사이에 지성전을 세우고 케이블 통한 동영상 예배를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한국교회는 공동 운명체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 편법을 일삼아도 된다는 무분별·무책임한 태도를 견지하는 한 한국교회는 이 사회로부터 함께 지탄받고 도태될 것이다. 지금 내 교회로 몰려오는 신자들의 대부분은 다른 교회에서 옮겨오는 수평이동 신자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내 교회의 부흥은 생각해 보면 어느 교회의 파산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인식하여 공동의 운명적 심정을 지녀야 할 때다.
그리고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어전의식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더 혹심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 어전의식이 없으면 소영웅주의에 빠지기 쉽고 군림하려는 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며 전체 교회적 풍토를 외면한 채 독자 행동을 남발할 수 있다. 모두 하나님 목회를 한 것이 아니고 내 목회를 한 결과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이같은 목회 행태들이 한국교회로 하여금 중병에 걸리게 만들었고 우리 사회로부터 교회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병들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