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맡기신 자녀들을 ‘기쁨으로 양육’하는 것이 ‘소명’
출산 기피 시대…자녀 성장,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교회의 환대로 함께 키우는 아이들, 부모에겐 ‘쉼’의 공간
대한민국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약 24만 9,000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극심한 취업난과 주거난 등 본인조차 건재하기 힘든 사회가 빚어낸 초라한 성적표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추세가 지속될 경우, 인구절벽으로 언젠가 국가도 교회도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이에 본지는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 한해 평범하고도 특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다양한 ‘다자녀 가정’들을 소개하려 한다.
아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입을 모으는 엄마 아빠들을 통해, 오직 다자녀 가정만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유익을 들여다보고 국가와 교회가 실질적으로 함께 도울 일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하나님께 모두 맡기는 훈련
“주위에 자녀가 ‘넷’이라고 말하면 다들 놀라요. 뒤이어 ‘아들만 넷’이라고 덧붙이면 엄청 놀라죠. 우리 부부도 자녀 한 명이 태어날 때마다 ‘6년 대환란기’를 거쳤으니 그간의 고생은 이루 다 말도 못 하지만 그만큼 삶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대구에서 초등교사로 근무하는 김정태(53세·안산동산교회) 씨는 최근 기자와의 만남에서 이처럼 웃픈 고백으로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교사는 아내 김희정(45세) 씨와 함께 슬하에 요한(24세) 승한(22세) 준한(18세) 윤한(9세) 네 아들을 두며 난이도 최상의 육아를 겪었다.
물론 사람마다 기질과 성향이 달라서 아들 딸 구분은 무색할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딸을 선호하기에 그에게 “아들만 넷 키우는 게 힘들진 않았느냐”고 우문을 던지자 “딸은 키워본 적이 없어서 아들 양육이 얼마나 고된지는 잘 몰랐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사실 김 교사가 처음부터 다자녀를 계획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셋째, 넷째의 임신 소식에도 부부는 심적 부담보다는 서로 부대끼며 지낼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먼저 나왔다. 특히 막내는 ‘늦둥이’란 표현이 맞을 만큼 터울이 있어서 더 각별했다.
“저는 외동이어서 좀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냈어요. 그래서 늘 형제자매가 많은 집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죠. 반대로 아내는 5남매 중 막내로 자라면서 늘 북적북적하고 화기애애한 집안 분위기에 익숙했던지라 다자녀 가정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그저 감사히 받았다는 김 교사를 두고 정작 주변에선 오지랖 섞인 걱정을 보태기도 했다. 대개는 ‘애국자’라며 격려했지만, 간혹 “육체적·경제적 뒷받침이 쉽지 않을텐데 어쩌려고? 그건 아니지!”라는 무례한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여기에는 갈수록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자신의 행복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가 조성되면서 ‘자녀 한 명만 낳아서 잘 키우면 되지’ ‘좀 편하게 살면서 지금을 즐기라’는 시선이 깔려있었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아이들에게 쏟아 부어야 한다는 ‘희생’에 대한 거부감이 다분히 실린 말들이기도 했다.
김 교사는 세상적 기준으로만 봤을 땐 틀린 말도 아니라며 의연한 태도를 드러냈다. 그 역시 아이들이 사춘기였을 적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났기 때문이다. 이 기간 머리도 체격도 커진 아들이 엄마를 무시하거나 실랑이를 벌이는 때가 잦아졌고 부부 사이 다툼도 늘었다.
“실은 아들 넷을 키우면서 저보다 제 아내가 더 고충이 많았습니다. 어렸을 땐 엄마 바라기였던 아들들이 크면서 ‘엄마는 몰라’라고 이야기하는데 상처를 받았죠. 특히 엄마이기 전에 여자로서 장성해가는 아들들을 전부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어디 그 뿐인가요. 첫째는 입시를 고민할 나이인데 막내는 한창 손이 많이 갈 2~3살 무렵이니…. 아이들의 니즈를 동시에 다 충족시켜줄 수 없는 게 참 미안했습니다.”
김 교사 내외가 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아내와 충분한 대화를 바탕으로 자녀들의 생애주기에 따른 부모의 역할을 잘 분담한 덕분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자율권을 주면서도 남편과 아내가 투입돼야 할 영역을 적절히 구분해 지켜 나갔다.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최고의 조력자가 돼야 한다”며 “나머지는 우리가 연약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모든 걸 책임지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소신을 전했다.
온전한 주의 자녀로 거듭남
김 교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정의 ‘행복’에 대해서도 힘주어 말했다. 출산과 양육이 마치 부모의 삶을 방해하는 요소인 것처럼 깎아내리는 작금의 현실에서 다자녀 가정임을 밝히면 보통 ‘집이 부자구나” 혹은 ‘형편이 빠듯하겠다’는 우스갯소리를 던지기 일쑤다.
그 역시 주거비부터 식비·교육비를 감당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건 당연지사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보며 느끼는 뿌듯함에 비하면 큰 고민거리가 못 된다. 그런데도 자녀양육에 따른 ‘이득’과 ‘손실’을 저울질하는 세태에 김 교사는 씁쓸함을 드러냈다.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를 창조하실 때 ‘기회비용’을 계산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해요. 저의 존재 자체로 기뻐하시고, 제 삶을 통해 주님께서 영광 받으실 원대한 계획들을 세워주셨죠. 마찬가지로 저도 제 자녀를 낳으면서 득과 실을 고려하지 않았어요. 그 대신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미처 다 헤아리지도 못할 복된 길을 예비하셨을 줄로 믿습니다.”
이어 김 교사는 “물론 요즘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이유는 십분 공감한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혹독하고 각박한 현실을 뛰어 넘어 살아갈 힘과 용기를 준다”며 “그때 그때 필요한 물질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것도 큰 은혜”라고 덧붙였다.
특히 아이들이 더불어 살면서 체득하는 우애와 남다른 협동심·양보심은 훗날 가장 큰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 갈수록 이기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형제들끼리 장단점을 보완하며 선생님이 돼주는 모습에 김 교사는 가정에서부터 작은 학교를 체험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둘째 승한이와 셋째 준한이가 첫째 요한이를 ‘롤모델’이자 ‘존경하는 형’이라 부르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자녀를 기르는 일은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교회를 세우는 것과 같다는 사명으로 임했습니다. 분명 아이를 돌보는 것도 주님의 일인데 사회가 이를 너무 부정적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죠. 다시 말하지만 자녀 양육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거듭남’은 대가족을 이끄는 가장으로서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의 열매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란 말처럼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이 때문에 성경적으로 건강한 자녀양육을 위해서는 우선 부모부터 올바른 자화상을 지녀야 한다.
김 교사는 “육아는 부모에게 ‘인간적인 성장’과 함께 ‘신앙적 성숙’을 가져다 준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무수한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지경이 넓어졌다”며 “자식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아빠로 서기 위해 매일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거듭나는 지름길”이라고 자부했다.
교회는 든든한 육아 조력자
한편, 김 교사가 다자녀 가정을 꾸려가는 데는 ‘교회’도 큰 도움이 됐다. 우선 연이은 임신 소식에 성도들은 자신의 일처럼 함께 축하해 줘 감동을 안겼다.
“계획에 없던 넷째 임신에 우리 부부도 처음에는 잠깐 당황했어요. 그런데 정작 교회 식구들이 ‘잘됐다’며 너도 나도 ‘넷째는 또 얼마나 더 이쁘겠느냐’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죠. 이런 응원과 칭찬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릅니다.”
교회는 부모도 해결하기 어려웠던 자녀들의 고민까지도 세심히 살폈다. 일례로 대구에서 안산으로 전학을 오면서 잠시 방황하던 둘째 아들 승한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도 목사님이었다.
그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던 아들이 목사님의 제안으로 참석한 선교캠프에서 친구들도 사귀고 하나님도 만나면서 마음을 열고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며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가끔 부모의 노력으로도 이루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바로 이 지점을 교회가 케어해주니 고마웠다”고 했다.
이 밖에도 교회는 김 교사네 가정에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표했다. 온가족이 코로나에 확진됐을 때에는 이른바 ‘문고리 심방’을 실천하기도 했다. 먹성 좋은 네 아들이 사는 집임을 너무도 잘 아는 교인들이 손수 간식을 준비해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집 앞에 두고 간 것.
“제 경험으로 비춰 볼 때 교회는 부모들의 ‘영적침체’를 회복시키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부모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곳’이라 할까요? 사실 우리 부부도 자녀 문제로 예민해져서 가시 돋힌 말을 주고 받은 뒤 아무렇지도 않게 예배를 참석한 적이 더러 있었죠. 아마 이런 부부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힘과 위로, 격려를 주는 교회를 꿈 꿉니다.”
그런가 하면 김 교사의 가정은 교회 공동체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단란한 여섯 식구를 보고 자극을 받은 젊은이들이 다자녀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일조한 것이다.
끝으로 그는 “저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니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함께하는 모든 일상이 ‘행복’ 그 자체”라며 “그때까지 인고의 시간을 지혜롭게 견뎌내길 바란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아이와의 순간을 고통이 아닌 기쁨과 감사로 보낸다면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