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와 더불어 사신 예수님 따라 ‘천국가정’의 표본 되고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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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와 더불어 사신 예수님 따라 ‘천국가정’의 표본 되고파요”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0.12.17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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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수’ 길러내는 국내 최다 입양부모, 윤정희 사모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이 땅에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아기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은 장성해서 공생애를 사시면서 누구든지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형제자매가 된다고 하셨죠. 주의 뜻을 따라 사는 자들은 내 몸으로 낳은 아이만 자식으로 품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한 것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그런 의미겠죠. 세상에 버려진 고아들도 결국은 다 내 자녀인 것입니다.”

국내 최대 입양가족을 꾸린 엄마, 윤정희 사모(55·강릉중앙감리교회)의 가슴 뭉클한 고백이다. 결혼 후 네 번의 유산으로 큰 아픔을 겪은 그는 장애 등 갖은 이유로 부모에게 외면 받았던 11명의 아이들을 만나 행복한 천국의 가정을 이뤘다. 그리고 어려운 살림에도 늘 자신들보다 더 힘든 이웃을 도운 덕에 이제는 자녀들도 작은 예수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만난 그에게서 새삼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는 기적임을 엿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양자 된 그리스도인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2월의 어느 날, 발걸음을 들인 강릉중앙감리교회의 사택은 참 아늑했다. 윤 사모 가족의 보금자리인 이곳은 사실 아담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방 세 개 남짓의 이 집에서 그간 13명의 식구가 동고동락했을 상상을 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 한 명 낳기도 꺼려하는 시대, 2000년도 첫째 하은·하선 자매를 시작으로 막내 행복이까지 지금껏 무려 11명의 자녀를 입양한 윤 사모의 사연은 결코 펑범하지 않다.

그러나 처음부터 입양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윤 사모는 1992년 결혼 후 3년간 무려 네 번을 유산했다. 그럼에도 아이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며 울부짖던 그에게 하루는 주님이 찾아오셨다. “낙심과 원망이 가득한 기도를 드리는데, 불현 듯 너는 얼굴도 모르는 네 배 속의 아이를 잃고 그렇게 우느냐. 나는 이 땅에 버려진 수많은 아이들로 인해 슬퍼서 눈물이 난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어요. 그제야 아이 아이를 구분 짓던 제 모습을 깨달았죠.”

결국, 고통 중에 마주한 하나님의 더 큰 고통은 윤 사모에게 부르심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주님이 허락하신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때마침 외환 위기였던 당시 뉴스에선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이 보육원에 차고 넘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 억대 연봉의 토목기사였던 남편과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던 윤 사모는 이때를 순종의 기회로 여겼다. 그리고 부부는 우리만 호의호식할 게 아니라 입양을 하자는데 선뜻 뜻을 모았다.

저희 부부는 혈연관계만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입양을 특별히 대단한 일로 여기지도 않았어요. 여기에는 어려서부터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를 쉬지 않으셨던 친정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말씀을 직접 살아냄으로써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신 거죠. 무엇보다 하나님도 죄인인 우리를 양자로 삼아주셨잖아요. 그래서 남편과 저도 하나님이 어떤 자녀를 맡기시든, 선택하지 말고 감사히 받아들이자고 결단했습니다.

세상에 파송될 11명의 선교사들
올해로 24살 하은이부터 9살 막내 행복이는 그렇게 윤 사모의 가족이 됐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11남매는 현재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컸지만 처음 그의 품에 안겼을 땐 제각기 크고 작은 장애를 지녔었다. 물론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느냐만, 윤 사모는 특히 둘째 딸 하선이를 만났을 적이 생생하다. 첫 만남 때 고작 18개월이었던 하선이는 선천성 폐질환을 앓아 날씨가 조금만 흐려도 감기에 걸려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어야 했다.

그러던 것이 하선이가 7살 되던 무렵, 의사는 폐쇄성 모세기관지염이란 진단을 내리고 살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전했다. 절망 속에서 윤 사모와 김 목사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도뿐이었다. “하나님께 제 딸 하선이만 살려주시면, 죽어가는 누군가에게 제 신장이라도 내놓겠다는 서원기도를 드렸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누가 부부 아니랄까봐 남편은 모든 재산을 내려놓고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했더라고요.”

간절한 기도와 지극정성 4년의 긴긴 치료 끝에 하나님은 기적으로 응답하셨다. 하선이는 건강을 되찾았고, 지금은 간호학을 전공하며 훗날 진짜 간호사가 돼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가족을 책임지겠다며 큰소리를 친다. 물론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윤 사모는 한쪽 신장을 생면부지의 이웃에게 나눴다. 김 목사 역시 같은 방법으로 장기를 기증한 것도 모자라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50세에 목회자가 돼 강릉아산병원 원목으로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집도 땅도 다 팔고, 아이들 병원비가 없어서 제가 건물 청소까지 했지만 결코 부끄러웠던 적 없어요. 어차피 세상의 것들은 다 주님께서 잠시 빌려주신 것이잖아요. 이 땅에 어떤 것도 내 것이 없음을 고백하고 날마다 이 맘이 변치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죠. 간혹 사람들은 힘든 형편에 굳이 왜 장애아동을 입양하느냐고 묻는데, 저 같은 죄인을 조건 없이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아픈 아이들도 제겐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이 같은 윤 사모의 진심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 일쑤였다. 대체 남의 자식 어떻게 키우느냐는 시선부터 사기 당했으니 파양하라는 도 넘은 말은 예사였다. 무엇보다 그의 가슴을 후벼 판 건 입양을 지원금 노린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오해였다. 그러나 정작 윤 사모는 모든 자녀를 지극히 정상으로 낳아 보냈으니, 세상 잣대로 판단하지 말라는 주님의 응답을 철썩 같이 믿고 정부에 장애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이들은 윤 사모의 믿음대로 변해갔다. 안짱다리였던 사랑이는 걷기 시작했고, 퇴행성 발달장애 및 지적장애를 가졌던 요한이는 아이큐 137의 영재가 됐다. 걷지 못해 보조신발을 신었던 사랑이는 사격선수로 활약했다. 그렇게 11남매는 모두 장애등급서 정상판급을 받았다. 이에 세상 눈으로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을지 몰라도, 하나님 눈에는 최고로 보석이었던 아이들이라고 말하는 윤 사모다.

그저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다보니 11명의 자녀가 생겼어요. 더욱 감사한 건 하나님의 간증 없이는 단 한 명도 우리 가족이 될 수 없었던 아이들이 어느덧 하나 둘 자라서 각자 부르신 곳에서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단한 것이죠. 저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무장시켜 세상에 내보내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파송된 아이들이 작은 예수로서, 그리고 영적 군사로서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더 크게 증거하며 살길 바랍니다.”

이웃사랑, 하나님 사랑
한편, 윤 사모 가족은 빠듯한 살림에도 주변의 힘든 이웃을 섬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 7년 동안은 크리스마스 이브마다 소외된 가정을 찾아 성탄 공연을 하면서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매년 겨울 어르신들 집에 연탄을 배달한 지는 7, 정부의 지원을 일절 못 받는 독거노인들에게 매주 손수 만든 반찬을 전해드린 지는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물론 이 자리에는 늘 남편 김 목사와 11명의 자녀들이 기쁨으로 동행했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주말마다 이집 저집 나눠줄 도시락을 만드느라 정작 윤 사모네 밥상은 늘 단출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불평불만은커녕 자신들이 모아둔 용돈까지 건네며 즐거워했다. 대회에서 상금이라도 받으면 어디든 후원부터 하자고 제안하는 기특한 녀석들이다. 그는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우리 가정은 더 가난해졌지만, 그만큼 사랑과 행복은 더 커졌다며 웃어 보인다.

예수님께서 3년의 사역 중 배불리 먹고, 좋은 옷을 입고, 편안한 집에서 주무셨다고는 성경 어디에도 안 나와요. 대신 과부와 고아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죠.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이웃 사랑하나님 사랑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두 손을 주신 이유도 하나는 내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다른 한 손은 세상에 버려진 아이들을 붙잡으란 뜻인 것 같아요.”

윤 사모는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을 계속 글로 옮겨왔다. 시끌벅적한 가족의 틈바구니에서 아이들도, 부모도 함께 성장해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은 것. 그리고 그의 저서 하나님 땡큐부터 하나님 알러뷰’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 ‘길 위의 학교등의 인세는 전액 기부로 이어졌다.

저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이 땅에서 낮은 자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삶, 그 자체에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진정한 기독교임을 알려주기 위해, 또 그 사랑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우리 가정을 통해 많은 생명이 살아나길 바라요.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요즘,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가는 천국 가정의 표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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