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복음 전달의 주체…시 통해 하나님 은혜 전하고파
걷지 못한다 하였다.
어떻게 사냐고 말하며 혀를 찼다.
말하지 못한다며 놀려댔다.
그러나
하나님은 빙그레 웃으셨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하나님은 빙그레 웃으셨다 中)
가만히 있어도 몸이 꼬이고 뒤틀린다.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고는 바깥 구경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한 마디 한 마디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도 온 힘을 기울여야만 한다. 힘겹게 토해내는 그의 한 글자 한 글자에는 세상을 향한 원망이 꾹꾹 눌러져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온 힘을 다해 외치는 목소리로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노래한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뇌성마비 장애를 40년 넘게 안고 살아온 이석희 간사(한국밀알선교단·45)가 첫 번째 찬양시집을 펴냈다. 시집의 제목은 ‘걷지 못하는 자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그는 걷지 못함이 오히려 그를 자유케 한다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다른 이들이 안타까이 여기는 자신의 장애가 도리어 ‘유용한 도구’라고 고백하는 이석희 간사를 지난 7일 만났다.
오지 않을 내년에서 행복한 오늘로
평범한 이들과는 시작이 달랐다. 다른 아이들은 땅을 짚고 걸음마를 떼고 신이나 뛰기 시작하는데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겨우 입을 떼 “엄마 나 언제 걸어?”라고 물으면 슬픈 미소와 함께 “내년에”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계절이 바뀌고 달력이 뜯겨 나가도 ‘내년’은 오지 않았다.
이석희 간사가 스스로를 처음 마주한 모습은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었다.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알았던 그였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장애를 이유로 고등학교 입학마저 거절당했을 땐 세상이 끝나는 것만 같았다고 했다.
“학교에 가질 못하니 달리 나갈 일이 없었습니다. 낙심하며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180도 바꿔놨습니다. 집안에서 할 일이 없으니 성경을 펴기 시작했거든요.”
어려서부터 내용은 알았지만 그다지 손이 가지 않았던 성경이었다. 찬찬히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내려가는데 문득 시편 47편 7절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곳엔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그는 그 순간을 목적을 잃어 넓은 바다에서 표류하던 배가 한 순간 방향을 찾은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시라는 것이 어떤 건지 제대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벅찬 감격을 키보드에 한 자 한 자 눌러 담았다. 이석희 간사는 더 이상 오지 않을 내년을 기다리지 않았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매일 매일의 오늘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유용한 도구’ 되고파”
20년 넘게 틈틈이 시를 쓰며 950편이 넘는 작품이 쌓였지만 출판은 꿈도 꾸지 못했던 그였다. 그런데 출석하고 있는 한국 기도의 집 더크로스처치에서 먼저 시집을 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가슴이 뛰었다. 자식 같은 950편의 시 중 고르고 고른 69편의 작품이 이번 시집에 담겼다. 시집의 제목 ‘걷지 못하는 자유’는 그가 제일 아끼는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기독교에서는 장애를 불운이라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장애인의 삶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시는 일이 있다고 믿죠. 믿지 않는 이들은 걷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고 불쌍하게 보지만, 우리는 침묵 속에, 어둠 속에, 장애 속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걷지 못하는 자유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시로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이석희 간사에게 시 쓰기는 그 자체로 예배다. 장애인으로서의 삶과 그 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시집을 빼곡히 채운다. 일반적인 대중시가 아닌 고백과 나눔이기에 억지로 글을 짜내려 노력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나타내는 단어를 심혈을 기울여 찾는다.
시집에서 만나는 장애는 더 이상 불행이 아니다. 이 간사는 평생의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자신의 뇌성마비 장애를 “하나님의 뇌성에 놀라 마비된 것”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그 뇌성을 쉼 없이 천국의 환호성으로 찬양”한다. 다른 이의 도움 없인 나들이 가는 것도 힘든 몸이지만 오히려 “햇살이, 구름이 나에게 나들이 왔다”고 노래하는 그의 시는 삶에 대한 희망과 찬가로 가득하다.
“장애란 한마디로 하나님의 ‘유용한 도구’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이용할 수 있는 도구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많이 나타나는 것을 두고 유용하다고 하잖아요. 장애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더 크게 나타나니 장애는 유용한 도구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 삶이 하나님이 일하실 때 특별히 즐겨 쓰시는 도구가 되길 소원합니다.”
장애인이 사역의 주체 돼야
이석희 간사는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 밀알선교단 SIW(Strength In Weakness)팀에서 사역한다. 약함 속 강함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SIW는 장애인들로 구성된 중보기도팀이다. 이 간사는 2년 전부터 이곳에서 기도모임 인도를 맡고 있다.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 힘든 그가 고향인 경남 김해를 떠나 서울로 상경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부모님도 우시며 안 된다고 반대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로 이 간사를 이끌어주셨다.
“한국교회에서 장애인들은 그동안 섬김을 받는 자리에 있었어요. 섬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장애인도 주체가 되어 선교와 기도의 중심에 서서 열방을 위해 중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에게 지상명령을 주셨기에 장애인도 복음의 수혜자만이 아닌 복음의 전달자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런 믿음에서 시작된 모임이 바로 SIW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장애인을 향한 배려는 아직 부족함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석희 간사 역시 서울에 올라와 출석교회를 찾는데 6개월이란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다. 한 번은 가고 싶었던 유명한 교회에 갔는데 주차장이 없어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이석희 간사는 한국교회의 미래가 장애인 사역에 있다고 믿는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공간이 되는 것에 한국교회 회복의 길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석희 간사 본인도 장애인 사역을 위한 밀알로 심겨지고 싶다고 말한다. 이번에 출간된 시집의 수익금 전액도 장애인 선교를 위해 쓰일 예정이다.
“저에게 하나님은 항상 옆에 계신 분입니다. 장애인이라 불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전 하나님을 알고 만났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장애를 통해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제 삶과 시를 통해 더 많은 곳에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