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사람들 앞에 서면 왠지 쑥스럽고 얼굴이 빨개져서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예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안무치(厚顔無恥) 철면피(鐵面皮)라고 합니다.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염치가 없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할 줄 알고 행동해야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이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십자가와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히12:2)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오히려 당당하게 자랑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바울은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자랑하며 전하였습니다. 십자가 복음이 자랑이 된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관, 지식, 재물, 명예 등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중에 십자가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세속적인 물질주의, 번영신앙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보면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의 예언처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의 능력을 아는 순간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됩니다.
심지어 목회자 중에는 성도가 적다고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회의 판단은 오직 하나님만 하십니다. 부르신 사명에 대한 충성 여부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죄는 욕심에서 시작된다고 말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1:15)
인간의 욕심 중에 정욕이 불일 듯 일어나면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1:27)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부끄러운 일이지만 정욕에 빠진 동성애자들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매년마다 축제를 합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때가 있습니다. 죄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모든 죄를 청산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십니다. 참 자유를 주십니다.
에스라 선지자가 백성들의 죄에 대한 소식을 듣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메어옵니다. 오늘도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향하여 손을 들고 백성들의 죄를 회개하며 간구합니다. 이제 분별하여 죄는 진심으로 부끄러워하고, 십자가 복음은 당당하게 자랑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이병후 목사 / 가양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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