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1524년)(3)
상태바
혼란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1524년)(3)
  • 주도홍 교수
  • 승인 2019.09.04 0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9.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

이자율 5%

츠빙글리는 교황제도를 믿음이 없는 위선 위에 세워진 속임수로 정죄하는데, “교황에 대한 증오에서가 아니라 이웃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교황권이 가진 권력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두 번째 혼란의 원인은 복음을 “죄짓는 자유 여권(ein Freipass zum Suendigen)”으로 왜곡하는 사람들에게서 찾는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절제와 손으로 하는 노동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하고, 그러는 중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사치와 무위도식하는 향락적 삶은 사회를 혼란으로 이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복음을 가장 증오하게” 만드는데,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다. 이자와 조세를 내지 않고, 빚을 갚지 않는 사람들로서 불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소유를 가져오는 것으로 도둑질하는 무리이다. 대부업자가 불법적으로 높은 이자율을 요구해서 대출을 받았을지라도 채무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크리스천은 양심을 따라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기심과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혼란의 근원이며, 복음을 가장 수치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츠빙글리는 말한다.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공의로운 재화의 분배”라는 제안이 사라졌다고 츠빙글리는 안타까움을 표한다. 츠빙글리에게 재화의 문제는 성경에 입각할 때 일반 법정의 업무로 생각한다.    

십일조 오용

츠빙글리는 오용되고 있는 교회 십일조에 대해 조심스럽게 언급하며, 당시 교회법이 규정하는 십일조를 성경에 근거하여 살핀다. 신약은 십일조에 대해 아무것도 특별하게 말하지 않는데, “탐욕의 아버지”인 교황이 “그렇게 칙령을 내려서 오늘날 십일조가 완전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교회법은 십일조를 수익세, 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금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십일조는 출석교회와 세례받은 교회에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 초대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십일조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지출하도록 되었다.

성직자들이 십일조를 자신들의 생활비로만 사용할 경우, 교회의 도둑이 된다. 물론 먼저 십일조의 일부를 성직자의 생활비로, 그런 후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불했다. 조금은 다르게 십일조 전체를 성직자에게 주어, 집사나 성직자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했다. 

물론 이럴 때 성직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진실함과 사랑이 충만한 자이어야 할 것이다. 교회법에 따라 십일조가 원래의 좋은 취지인 가난한 사람들과 어려운 사제들을 위해 선하게 사용될 때, 누구도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문제는 교황이 교회법과는 다르게 십일조를 지역교회에서 빼앗아 징수권을 고위성직자들과 정치권력자들에게 팔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십일조 징수권을 얻은 주교좌 성당과 참사회원들과 수도원들과 정치권력자들은 교황에게 매년 정해진 액수를 상납해야 했다. 십일조는 교황청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