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트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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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트리가 되자
  • 김학중 목사
  • 승인 2017.12.0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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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 목사/꿈의교회

성탄절이 어느덧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가정, 사업장, 교회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셨습니까?

저는 얼마 전에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에 참여했습니다. 작은 예배를 드리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켰습니다. 높이 솟은 나무에 달린 여러 불빛들을 보면서, 저 역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저마다 트리를 세웁니다. 어떤 곳은 크게, 어떤 곳은 작게, 저마다 형편에 맞는 대로 트리를 세웁니다. 그리고 나서 다양한 색깔의 은하수 전구들을 감아 놓습니다.

노란 전구, 빨간 전구, 파란 전구, 하얀 전구 등 다양한 전구들이 켜졌다 꺼졌다 깜빡깜빡 거리면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어떤 전구에는 캐럴도 나와서, 우리의 귀도 즐겁게 합니다. 그렇게 트리를 세우고 나면, 크리스마스 준비를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트리를 세운 것으로 만족하면 다 되는 것일까요? 사실은 아닙니다. 트리에도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언제부터 생겼을까요? 그리고 왜 생겼을까요? 문헌에 기록된 것으로는 우선 1419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성령원에 장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널리 알려진 것은 소위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가 1521년에 했던 이야기입니다.

마틴 루터가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숲 속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숲을 보다가 깜짝 놀랍니다. 평소에 어둡던 숲이 마치 등불을 켜 놓은 듯이 환하게 빛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달빛이 소복하게 쌓인 전나무 위에 비쳐서, 밝게 빛나고 있었던 겁니다.

이것은 본 루터는 이러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람은 어둠 속의 있는 초라한 나무와 같지만, 예수의 빛을 받으면 주변에 아름다운 빛을 비출 수 있는 존재이구나” 그는 이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옵니다. 그리고 전나무에 눈 모양의 솜과 촛불과 리본을 장식하는데, 이것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트리는 1600년대가 되면 독일 전역에 퍼집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하노버 왕조의 영향으로 영국에도 전해지고, 빅토리아 여왕 시대 때 대중화가 됩니다.

그 시작이 무엇이든 간에, 크리스마스 트리는 세상에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어둡던 희망에 빛이 오셨음을, 미움이 가득하던 세상에 사랑이 왔음을, 눈물이 많던 세상에 기쁨이 왔음을 전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트리를 보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빛과 사랑과 기쁨이 전달되어, 그 사람들도 그것들을 전달하는 또 다른 트리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예쁜 트리를 만들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또 하나의 트리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갈등하는 대신 화해하고, 미워하는 대신 사랑하고, 싸우는 대신 용서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 그럴 때 아름다운 성탄절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1914년 1차 세계대전 중에 서로 싸우던 독일군과 영국, 프랑스군이 이 날은 서로 악수하고 축하하며 함께 캐럴을 불렀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들은 싸우는 중에도 때때로 함께 축구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는 것! 성탄절은 그런 날입니다. 이런 성탄절을 위해서, 나도 누군가에게 크리스마스의 트리가 되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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