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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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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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0.1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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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

여호수아 20:1~9
찬송 302장

오늘 본문은 살인자를 도피성으로 피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명령 속에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대속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살인으로 도피성에 피신한 사람은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야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이 살인자의 죄를 대속한 것입니다. 이는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음은 일반적인 죽음이 아닌, 살인자와 다름없는 죄인인 우리의 죄를 대속시켜 주시기 위한 죽음임을 미리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물리적으로 사람을 해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미워하고 살인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영적인 살인자로서 피해야 할 도피성이 필요합니다. 설령 법과 윤리 그리고 양심의 잣대로 거리낄 것 없는 완벽한 삶을 살았던 그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그에게도 역시 도피성 되시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완벽한 삶이 아담의 후손인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도피성이 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왔다면 이제 그 은혜의 감격 속에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부여해주신 뜻에 맡게 사명자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도피성 되심을 감사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그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로서 주변의 연약하고 고통당하는 자를 세워주시길 바랍니다. 영혼을 살리고 세우는 사명자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과 결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도피성 되신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강대석 목사
청운교회

 

화요일

의지의 대상

예레미야 17:5~8
찬송 449장

오늘 본문 5~6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기에 사람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 위대한 다윗 왕도 말년에 사람을 능력을 의지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왜 사람을 의지할까요? 그것은 사람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진 제물, 지식, 환경을 믿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제물과 지식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러나 믿었던 권력과 제물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런 것들을 잃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이것들이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본문 7~8절을 보면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고 하십니다. 다윗의 시편 121편을 보면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그것을 아는 다윗이었습니다. 시편 146편에도 귀인들과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면 실망하게 됩니다. 확실한 도움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라나는 자녀들도, 부모들도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의지하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시고, 변치 않으시고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물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이 마르지 않은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사람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우리의 의지의 대상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이승수 목사
양문교회

 

수요일

당신은 무엇을 기뻐하십니까?

사도행전 5:40~42
찬송 434장

여러분은 무엇을 기뻐하십니까? 집을 사서 기뻐하십니까? 승진하게 되어 기뻐하십니까? 병이 나아 기뻐하십니까? 무엇을 기뻐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사도행전 3장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고친 일로 인하여 대제사장과 백성의 관원들이 사도들을 붙잡아 심문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엄히 경고하고 사도들을 풀어줍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전합니다.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은 크게 노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없애려고 합니다. 가말리엘이 중재하여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풀려납니다. 그런데 풀려난 사도들이 기뻐하며 공회 앞을 떠납니다. 41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도들이 왜 박해속에서도 기뻐합니까?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것이 복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상이 클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마5:10~12)
당신은 무엇을 기뻐하십니까? 예수님입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보다 예수님을 기뻐합시다. 예수님이 주시는 행복보다 예수님을 기뻐합시다. 사도들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것을 기뻐하십시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것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하늘의 기쁨과 행복을 예수님 안에서 늘 누리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보다 예수님을 기뻐하게 하시고, 사도들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것을 기뻐하옵소서.

이정기 목사
신나는교회

 

목요일

정탐꾼의 사명

여호수아 2:1~7
찬송 502장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을 보면, 건강하게 자라 국방의 의무를 하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이들이 누구보다도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감당하고 지키고 있기에 우리는 맘편히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정탐꾼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죽기보다 싫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자기자신이 운이 없어 죽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던져진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열두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자신들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의 깊게 볼 것은, 정탐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리고성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돌기만 하면 되었는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왜 정탐을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기생 라합의 구원을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죄악과 심판의 도성에서 구원 받아야할 한 여인을 발견하여 찾아내셨습니다. 비록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기생이라는, 자격없는 여인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구원 받아 마땅한 천국백성인 것입니다. 즉, 보냄을 받은 정탐꾼의 사명은 곧 영혼 구원의 사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들은 세상을 향해 보냄을 받은 정탐꾼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냄 받은 정탐꾼으로써, 목숨까지도 내어놓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작정된 영혼 구원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목숨까지 내어놓고 달려간 정탐꾼처럼, 나도 영혼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유재명 목사
안산빛나교회

 

금요일

거울을 봅시다

예레미야 2:13
찬송 271장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주는 거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백성들이 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말씀 하시면서 그것을 터진 웅덩이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B.C 627년 요시야가 통치하고 있을 때에 두 가지 악을 행하였습니다. 첫째는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고, 둘째는 그들 스스로가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 웅덩이는 물을 가둬 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탄식 하시면서 경고의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모양은 분명 그리스도인인데 그 안에 하나님도 없고, 능력도 없고, 믿음도 없는 그야말로 종교인으로 전락되어 있어도 무감각하여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을 전혀 기억도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 또한 말씀을 들어도 터진 웅덩이처럼 그 안에 말씀이 잠시도 머물러 있을 시간도 없이 그냥 잊어버리고 죄악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닌지요?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생수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어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날마다 점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울은 절대로 속이지 않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의 모습을 정확하게 비추어 줍니다. 아무쪼록 말씀의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이 가을 말씀의 거울로 자신을 보게 하시고 생수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이진해 목사
신영통제일교회

 

토요일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자

시편 103:1~5
찬송 310장

본문 3절에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함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로 중병을 얻게 되었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 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이에 다윗은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앉고 감사할 것을 다짐합니다. 나아가 다윗은 자신을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실 다윗은 왕이 되기 이전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수없이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났던 사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양을 치는 중 맹수들의 위협을 받을때도, 사울왕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에도 지켜주셨습니다. 심지어는 군대를 동원해서 다윗을 죽이려 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다윗을 건져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아들 압살롬의 반역 속에서도 건져주셨습니다. 이처럼 생명이 파멸에 이르렀을 때에 속량하여주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신 하나님의 은택을 다윗은 잊지 않고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다윗은 이 모든 일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나를 구원하셨고 주께서 나의 관을 씌우셨다고 믿는 이 겸손한 믿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됨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여기에서 좋은 것이란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은택을 입습니다. 우리도 다윗왕처럼 은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이용태 목사
백석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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