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합동이 가톨릭에서 받은 영세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의하면서 한국교회 안에 ‘재세례’ 논란이 예상된다. 가톨릭에 대한 ‘저항심’이 ‘삼위일체 세례’를 부정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총회장:백남선, 이하 합동)는 지난 9월 열린 제99회 총회에서 앞으로 가톨릭에서 받은 영세를 세례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합동 소속 교회들은 가톨릭교회에서 영세를 받고 개신교회로 옮겨온 신자들에게 새롭게 세례를 베풀게 됐다.
이 같은 결의는 ‘가톨릭 영세를 세례로 인정할 수 있느냐’며 광주지역의 빛고을노회가 낸 헌의로 시작됐다. 당시 총회에서는 일부 총대들은 “영세를 인정하지 않으면 가톨릭에서 영세를 받고 개신교로 넘어온 사람의 경우 두 번 세례를 받게 되기 때문에 *아나뱁티즘(재세례)가 아니냐”며 신학적 반대를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총대 대다수가 “가톨릭은 이단”이라며 불가론을 폈고, 반대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가톨릭의 영세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총회가 마무리된 지금까지도 교단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합동 소속인 범어교회의 장열일 목사는 최근 교단지 기고를 통해 “재세례주의는 개혁신학의 전통이 아니다”라며 총회의 결정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신학적으로 깊이 심의해야 할 안건을 정치부에서 다뤘다는 점부터가 ‘큰 오점’ 이라고 평가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인해 가톨릭에 대한 반대 감정이 커졌다 하더라도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총신대 윤종훈 교수(역사신학)는 “총회의 결정과 아나뱁티스트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며 “‘재세례’라는 용어 사용 자체를 자제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그는 "16세기 개혁교회들이 아나뱁티스트를 인정하지 않던 당시의 가톨릭과 달리 지금의 가톨릭은 다원주의적인 성격의 이단성을 가지고 있다”며, “가톨릭의 영세를 인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가톨릭이 이단이기 때문에 그들의 세례를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 반대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재세례파’를 이단으로 보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다른 교단들은 어떨까. 예장 통합총회(총회장:정영택)는 지난 2004년에 열린 제89회 총회에서 가톨릭 영세 교인에 대해 세례를 다시 줄 필요 없이 입교만 하면 된다고 결의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교단이 가톨릭 영세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으며, 간단한 입교 절차로 개신교 신자로 받아들인다.
합동보다 더 보수적 신학을 고수하고 있는 교단들도 ‘재세례’는 반대한다. 예장 고신총회(총회장:김철봉) 신학위원회 신민범 목사는 “세례를 집례한 사람이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다. 가톨릭 역시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영세를 주기 때문에 그 효력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황 방한 이후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통합 측이 올해 총회에서 이 문제를 재연구하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차기 총회에서 가톨릭 영세에 대한 기존 결의를 뒤집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백석대 임원택 교수(역사신학)는 세례를 두 번 받는 행위에 대해 “세례를 두 번 받는 것은 이전 세례를 무효하다고 인정하는 것” 이라며, “성례전의 주체는 집례자가 아닌 성삼위일체로, 초대교회 당시 벌어진 *도나투스 논쟁 이후 교회는 타 분파에서 세례를 받았더라도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그 세례를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재세례’를 결의할 만큼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 천주교가 개신교 신자들에 대해 ‘재세례’를 주는 것에 대한 에큐메니칼 진영의 명확한 입장도 요구된다. 현재 한국 천주교는 개신교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개신교 세례를 인정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 대다수의 가톨릭교회와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한국 천주교가 개신교인에게 ‘재세례’를 주는 이유는 합동측 결의와 유사하다. 개신교가 수많은 분파를 이루고 있어 그 건강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 결국 그동안 가톨릭은 개신교를 동등한 파트너로 보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과직제위원회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WCC 신앙과직제 위원을 맡고 있는 호남신대 신재식 교수(조직신학)는 “가톨릭에서 좀 더 엄격하고 폐쇄적으로 나온다고 우리도 똑같이 한다면 문제” 라며, “좀 더 여유롭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내년 6월 루마니아에서 열리는 WCC신앙과직제 회의와 국내 신앙과직제 회의에서 관련된 내용을 논의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손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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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뱁티즘 :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개혁교회 내부에서는 가톨릭의 영세를 인정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교회들은 집례자의 권위보다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영세 역시 인정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고, 영세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했던 ‘재세례파’를 개혁교회들은 이단으로 규정했다. 지금까지도 메노나이트, 후터라이트, 부르더호프 등의 재세례파가 남아있다.
*도나투스 논쟁 : 250년경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박해 때 신앙을 버리고 배교한 자들을 교회가 다시 수용하는 문제로 성례전의 유효성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다. 당시 도나투스파는 성례전의 유효성이 목회자의 자격에 달려있다고 주장했으나, 로마 그리스도교인들과 북아프리카의 교인들은 성례전의 유효성이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