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에게 물려받은 전통이 곧 ‘성경의 진리’는 아냐
자생교단인 예장 백석의 신앙고백 ‘성경’에 초점 맞춰
분열을 거듭한 한국 교회 안에 이제는 ‘하나의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 교파를 넘어 장로교단만 200개가 넘는 현실 속에서 ‘분열’이 더 이상 부흥을 위한 명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권력과 이익을 위한 분열로 전락해버린 한국 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진단하며 하나의 성경,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담긴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백석대학교 용환규 교수(교회사)가 최근 펴낸 ‘한국장로교회와 신앙고백’(도서출판 대서)은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한국 교회 성도들이 처음 접한 신앙고백과 이후 최초의 신앙고백으로 알려진 독노회 ‘12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이어 1967년 미국 신앙고백 논쟁을 계기로 한국 장로교회에서 일어난 갈등과 한국 교회 안에서 발표된 독자적인 신앙 고백들을 담아냈다.
특히 1967년 신앙고백 논쟁 후 한국 장로교회 중에서 독자적인 신앙고백을 제정한 교단들의 신앙고백을 고찰한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1972년 기장, 1986년 통합, 2010년 백석이 발표한 신앙고백의 교회사적 의미와 더불어 자생교단으로 백석총회가 형성된 후 한국 교회의 하나됨을 회복하기 위해 주창한 ‘개혁주의생명신학’과 그 안에 담긴 신앙고백이 성도들의 삶까지 깊숙하게 파고든 점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각 교단에서 일종의 상징처럼 채택하고 있는 ‘신앙고백’에 대해 새롭게 주목한 이유는 무얼까. 용환규 교수는 “신앙은 고백을 통해 표명되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하는데 지금 각 교회가 채택하고 있는 신앙 고백은 교단의 신학을 대변하는 표준에 머물며 목사나 학자의 전유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초기 한국 교회가 교파를 초월해 협력하고 전도하며 함께 부흥을 경험했지만 오늘날 이렇게까지 분열된 이유는 성경을 떠난 잘못된 신앙에서 비롯됐다는 것. 이런 관점에서 용 교수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람직한 교회상으로서 ‘하나의 교회’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그동안 한국 교회사를 말할 때 모두들 교회가 분열된 것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은 부족했다”며 한국 교회 분열의 배경으로 △종교개혁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 교회의 역사 △이미 교파적 형태로 설립된 미국과 유럽의 교회들이 각자가 속한 국가와 선교부의 입장에 따라 선교에 착수한 상황 △선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교계예양’이라는 선교지 분할 협정을 맺은 상황 등을 꼽았다.
용 교수는 “선교사들에게 물려받은 신앙을 정통이라고 여기고 마치 그것을 성경의 진리인 것처럼 여겨 배타적인 태도를 유지해온 보수주의, 기독교를 외세로 보는 대중들을 인식하고 선교사들보다는 한국인들이 주체가 되기를 소망했던 급진적인 진보주의, 이 모두가 하나님을 자기의 소견대로 바르게 믿고자 했던 신앙 선배들의 다른 이름”이라고 지적했다. 분열에 대한 정당화라는 것.
그는 “개혁주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성경이 가르치는 바람직한 교회상을 지향하는 한국 장로교회가 되기 위해서 한국 교회 공동체가 어떤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를 유지, 발전시켜왔는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장로교 신앙고백 연구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교회의 속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분오열되어 200여 개의 장로교단이 난립하게 된 상황에서 교회의 하나됨을 이룰 수 있는 기초는 성경적 신앙 고백의 회복에 있다는 주장이다.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성경보다 신학을 앞세우고, 교리나 신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분명 진정한 개혁주의는 아닐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잘못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개혁주의죠. 물려받은 신앙유산이 아무리 귀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는 것은 중세 로마 가톨릭이 범했던 오류를 재연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남긴 전통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고 보수와 진보 파벌을 나눠 싸우는 교회의 모습에 대해 저자는 따끔한 질책도 전했다.
‘12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이어 한국 장로교회가 개 교회별 신앙고백을 채택한 내용을 서술한 이 책은 보수주의를 정체성으로 표명한 합동 측의 신앙고백과 토착화에 집중한 기장의 신앙고백, 무조건적 보수주의에 대한 응전으로 신칼빈주의적 입장을 강조하며 세계 교회의 변화에 집중한 통합 측의 신앙고백 등에 대해 다루면서 ‘개혁주의생명신학’을 바탕으로 지난 2010년 신앙고백을 발표한 백석 총회의 역사와 전통에 초점을 맞췄다.
36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백석 총회는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교단이 아니라 작은 교단들이 ‘하나됨’이라는 성경적 목표 아래 독자적으로 설립된 자생교단이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로 출발해서 복음사역과 임직을 위한 총회로 성장한 백석은 2009년 ‘합동정통’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백석’이라는 새 옷을 입으면서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를 향한 중추적인 사명을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2010년 5월 2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4만여 성도가 모인 가운데 ‘개혁주의생명신학 선언문’이 교단 설립자인 장종현 목사에 의해 발표된다. 백석의 신앙고백이기도한 이 선언문은 성경을 우리 삶의 유일한 표준으로 믿는 ‘신학운동’과 우리의 무능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신앙회복운동’,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을 회복시키는 ‘영적 생명운동’,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실현하는 ‘하나님 나라운동’,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기도운동’, 오직 성령의 힘으로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성령을 따르는 ‘성령운동’,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나눔운동’을 담고 있다.
신앙고백을 목회자와 중직자 임명식에서만 사용하는 타 교단과 달리 “평신도를 위한 선언문 해설”을 제작한 백석은 목회자와 신학자를 넘어 일반 신자들에게도 적용할 교육문서를 제작했다.
용환규 교수는 “백석의 신앙고백은 신학의 차이가 믿음의 통일성을 깨지 않는다는 점을 적절하게 판단하여 서로의 차이보다는 공통되는 신앙의 내용에 집중해 한국 교회를 넘어 세계 교회가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리스도인들이 목사나 학자, 신학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 삶의 유일한 모범이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것.
선교사들이 이미 갈라진 교파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 복음을 전했지만 하나의 성경을 가지고 믿음에 마음을 합했던 초기 기독교의 정신을 재차 강조한 용 교수는 “갈라진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 한국 장로교회가 공감하는 새로운 신앙고백이 필요하다”며 “신학과 전통에 집착하고 있는 오류를 딛고 현 시대 상황에 맞춰 성경적으로 올바른 독자적 신앙고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