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성호칼럼] 교회에서 자꾸 작두 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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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호칼럼] 교회에서 자꾸 작두 탈래?
  • 옥성호
  • 승인 2012.12.2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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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호의 기독교문화를 깨운다(12)

엄청(?) 유명한 ‘치유 집회’ 동영상을 최근에 하나 보았다. 그 집회를 본 후 몇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을 ‘영적 영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때로는 신앙과 관련해 던지는 이성적 질문들을 불신앙의 결과 또는 영적 영역에 대한 잘못된 접근이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적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신앙을 형성하는 믿음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병 치료’라면 이런 신앙이야말로 가장 육적인 영역 또는 물리적 영역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우리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대답하기 곤란할 때는 영적 영역이라고 말하면서 실상은 가장 육적 영역에서만 신앙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둘째, 나도 아픈 사람의 고통을 조금은 안다. 내 주변에 아픈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붙잡는 그 마음이 때로는 신령하다는 사람에게로 전이되는 그 심정도 백분 이해한다. 그뿐 아니라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은 ‘신유 은사 받았다는 이들’의 뜨거운 마음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병을 치료하시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이시다. 결코 사람이 아니다.

정말로 솔직히 물어보자. 왜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을 ‘통해서’ 아픈 사람을 고치실까? 왜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의 ‘터치’가 있어야 병을 낫게 하실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을 통해 ‘직접적’으로 영생을 주신 하나님께서 왜 ‘병 고침’은 예수님도 아닌 어떤 사람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주실까?

셋째, 아픈 자식의 머리를 부여잡고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아버지의 애절한 절규를 누가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그 아버지의 기도에 그 아들이 나았다면 그 아버지는 졸지에 ‘신유 은사’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당신의 뜻에 따라 우리의 병을 낫게 하신다. 야고보서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픈 사람의 머리를 기름을 바르며 간구하는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현대 의학이 치료할 수 없는 병을 낫게도 하신다.

그런 하나님의 기적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누구를 ‘통해서’ 낫게 하지 않으신다. 애초에 하나님이 낫게 하실 뜻이 없던 사람의 병이 중간에 누가 개입됨으로 낫게 되었다면? 그 중간에 끼어든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아닌가? 아니면 아픈 사람의 믿음이 워낙 후져서 하나님이 도저히 낫게 하고 싶어도 하실 수가 없었는데 중간에 누가 또 끼어들어, 예컨대 치유 집회에 참석함으로 그 후졌던 믿음이 강화되어 병이 나았다면….

그런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 무슨 전기 볼트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가 그걸 믿음이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로봇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전류가 20볼트일 때는 반응이 없으시다가 200볼트가 되는 순간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런 로봇 말이다.

넷째,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 창조된 인격체다. 누군가가 나를 비인격체로 대접할 때 내 기분이 어떨까? 누군가가 나를 강아지처럼 또는 컴퓨터처럼 대접할 때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그렇게 대하고 있지 않은가? 고작해야 하나님 형상의 쪼가리 정도 닮은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서 말이다. ‘특정 사람을 통한 병 치료’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믿는 하나님을 ‘나는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믿고 있는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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