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해체 위기 한기총, 보이지 않는 큰 싸움 있나
지난 14일 임시총회중지가처분에서 길자연 대표회장의 인준과정에 중대한 하자가 있음을 해석한 법원의 결정문이 공개되면서 한기총을 둘러싼 논란이 더 거세지고 있다. 이광선 목사측에서는 “당연한 결과”라며 곧 직무정지도 내려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고, 길자연 목사측에서는 “적법한 속회에 의한 인준”이라며 “법원의 판결도 현재의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이 어느 쪽에 우세하던 간에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기총 곳곳에 곪아있는 상처는 뿌리가 깊고 갈래가 다양해 단 기간에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감지한 교회개혁그룹들은 아예 이번 기회에 한기총을 없애버리자며 ‘해체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한기총을 둘러싼 갈등은 그 이면에 더 큰 싸움의 주체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까지 낳으며 거침없이 확산되고 있다.
# 갈등의 시작
길자연 목사의 인준을 반대하면서 시작된 싸움은 사실 그 이전에 예고된 것이었다. 길자연 목사의 세 번째 출마가 결정되면서 반대와 방해는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었다. 그러나 길자연 목사의 출마 결심은 단순히 한기총을 넘어선 것이었다는 점에서 한기총을 둘러싼 두 갈래 싸움은 예상이 가능했다.
길자연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에 출마하게 된 것은 합동측에서 대표회장을 내겠다는 강한 염원과 함께 시작됐다. 그동안 연합운동에서 너무 많이 소외됐다는 것이다. 통합이 김삼환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통해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합동은 내부 균열로 소모적인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고, 리더십의 부재로 한국 교회 안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런 자조적인 열등감은 ‘주도권’의 회복으로 확대됐고, 싸움에서 이길 사람으로 길자연 목사를 선택했다.
물론 현 집행부는 길자연 목사와 정치적 라인을 달리하고 있지만 합동 내부에서는 통합에 대한 피해의식이 짙게 깔려 있었다. 길자연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와 합동이 가장 많은 지분을 행사하던 찬송가공회, 합동측 인사가 주도했던 한국교회희망연대 등이 모두 통합측 인사에 의해 상당한 권한을 빼앗겼고, 그 뒤에 더 큰 힘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합동측 내부에 상당히 짙게 깔려 있다.
여기에 보수교단의 줄기로 연대감을 자랑했던 고신과 백석, 합신 등이 통합과 친밀한 교류를 진행하면서 최근에는 고신을 제외한 백석과 합신이 김삼환 목사의 간곡한 권유에 의해 WCC 10차 총회 협조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장자교단’으로서의 자존심에도 극심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 주도권 둘러싼 ‘고래싸움’
결국 합동을 대표하고 보수교회를 대표한다고 자신하는 길자연 목사로서는 ‘한기총’을 지켜내는 것이 통합 중심의 한국 교회 재편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보수권 일각에서는 통합이 WCC 총회를 기점으로 교회협을 넘어서는 ‘제3의 기구’를 만들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어 어쩌면 지금 한기총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히 내부 개혁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이미 길자연 목사는 지난해 열린 8.15대성회가 WCC 준비를 위한 전초작업이라는 확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같은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이달 초 열린 통합 에큐메니칼 정책협의회에서 공개한 WCC 준비위원회 명단에 백석과 합신, 기성과 예성, 대신 등 교회협 비회원 교단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여기에 한기총 비대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예장 중앙까지 합류하는 등 반 길자연 대표회장을 주장하고 있는 교단이 상당부분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처럼 큰 기류에 지금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양심선언과 한기총 흠집내기까지 작은 싸움들이 이어지고 있어, 한기총 문제의 해결은 ‘사람의 방법’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다.
당장 누군가 지고이긴 채 싸움이 끝나더라도 WCC 총회라는 민감한 요소가 남아 있어, 길자연 대 이광선으로 불거진 이번 갈등은 ‘보수 대 에큐’ 혹은 ‘합동 대 통합’이라는 큰 싸움을 번질 요소가 농후하다.
그러나 한기총이 교단과 단체의 연합체라는 점에서 거시적 해법을 찾는다면 일단 ‘작은 불’은 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