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한교수<천안대신대원 실천신학>
영원한 성부의 칭호가 가부장제의 빌미가 되며 남녀 양성의 차별의 이유가 된다는 관점은 하나님의 성부성의 속성을 인간의 윤리적 가치체계와 도덕적 문화구조에 비겨 남녀평등과 가부장적 부계 중심 문화 차원에 맞추어 하나님의 신성적 부성의 본질을 남성의 성과 동류로 치부한 것과 신성과 인성의 대칭적 평행구조로 관찰한 것은 외람됨과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몇가지 고언(苦言)을 하면 첫째, 하나님의 영존하신 속성으로서 성부 성자 성령의 본체론적 삼위의 위적인 지위로서 부성의 표현이 그리스도의 강생에서(눅 1:31), 예수님의 세례 시에(마 3:16-17), 제자 파송 때(마 28:19), 보혜사 성령님 임재 약속에서(요 14:16-17), 예택, 성결, 구원의 사역에서(벧전 1:2), 복의 선언에서(고후 13:13), 주기도문(마 6:9,15) 등에 나타나 있는데, 이 계시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행위가 신앙적으로 정당한가?
둘째, 구속백성이 하나님의 영적 아들임을 성경은 증거하는데, 영광의 후사로(롬 8:17-18), 양자의 영을 받았으니 아바 아버지로(롬 8:15-16), 아들의 영을 마음에 보내사(갈 4:6) 등에서 하나님의 부성과 택자의 자격(子格)을 밝히고 있고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지칭한(눅 6:36, 요 6:27, 37, 엡 5:20) 근거를 주목해야 한다.
셋째, 번역측이 성경 원문에 아버지라는 말이 없는 ‘당신’이라는 말을 ‘아버지’로 바꾸어 하나님이 남성에 고정되어 성차별의 원인이 된다고 본 것은 주기도문에 관통하고 있는 구속 정신과 계시적 요소를 몰이해한 지나친 문자주의이다. 분명히 아버지는 자존적 신성의 속성으로서 성경 원문에 ‘아버지’를 파테르(Pathr)로 명시하고 있다.
넷째, 여성 측 주장대로 하나님 아버지를 하나님으로만 호칭할 때 그와 구속론적 관계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귀에게 난 자’(요 8:44)였으나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여 영적 자녀로 삼음으로 하나님은 영적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 칭호가 생략된 주기도문은 이미 기도의 표본적 가치는 소멸되고 기도문에 설정된 구원주체인 성부성에 대한 신성모독이 된다.
다섯째, 하나님은 생식적 남성으로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속성적 부성의 지위를 가져 성별로 구분할 수없는 신성의 본질인데 이를 남성과 동등하게 본 것은 망발이다.
그리고 기도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된 기도자와 대좌(對坐)된 응답의 당사자인 지존자를 ‘당신’이라는 하대어로 기도의 대상을 호칭할 수는 없는 말이다.
원문상의 ‘당신’(헬, σου;sou)은 기도 서문에 호칭된 ‘아버지’의 대명사로서 이하 문맥에 ‘아버지’가 의미상 소유격으로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이라는 말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
이러므로 아버지라는 신성적 본질인 성부성을 남성에 맞추어 성차별적 기도문으로 보는 것은 무지이며 오히려 만인의 성부는 인종과 성의 평등사상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영원한 삼위 하나님의 성부성의 지위를 부정하는 것은 범죄적 행위에 해당될 수 있음을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