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시로 양을 잡아먹는 목동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목동에게 양을 50마리를 맡겼습니다. 목동은 우리를 크게 늘리고 튼튼하고 강한 사슬로 문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제 양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밖에 나가 남의 목장 근처를 기웃댔습니다.
길을 다니며 어쩌다 눈먼 양을 만나거나 길 잃은 양을 만나면 온갖 감언이설로 제 목장으로 끌고 오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같은 목동들끼리 모여서 열심히 공부도 합니다. 그 공부라는 것이 주로 <남의 집 양 효과적으로 후려오기 세미나>나 <남이 기른 양 내 양 만들기 세미나> <신실한 목동처럼 보이기 세미나> <급속히 성장하는 목장 만들기 세미나> 등입니다.
그리고 목동들은 수시로 양을 잡아서 제 배를 채웁니다. 목장에 있는 양들은 꼴에 굶주려 곯고 있는데, 병들어서 삐쩍 말라 있는데, 그래서 식인양이 되어 있는데 목동은 양의 건강에는 관심이 없고 인공 사료를 퍼 주며 대량 생산을 시도할 뿐입니다. 불임양이라도 좋으니 숫자만 늘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목동의 친구들이 모이면 양은 양일 뿐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양들을 후려서 좋은 옷, 좋은 자동차, 좋은 집에 살며 얼굴은 양 기름으로 번들거리고 배는 양 비계로 출렁거립니다. 그리고 목동은 수시로 주인에게 보고합니다. 눈물 콧물 흘리며 지금 자신의 처지가 매우 힘들며 그럼에도 자신의 수고와 힘으로 많은 양을 생산하였다고 보고합니다. 그런데 주인은 지금 목장에 양이 몇 마리 있느냐고 묻고는 50마리가 500마리 되었다는 말에 흡족해합니다. 선한 목자는 이 목동에게 무어라고 말했을까요?
목동이 주인으로부터 맡은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목동은 양 떼를 이끌고 푸른 들판과 시냇가 등으로 두루 다녔습니다. 양 떼를 이끄는 목동은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 소리를 내었는데, 그때마다 양들은 풀을 뜯는 일을 중단하고 목동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양 떼는 목동을 따라 잔잔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옮겨 다니다가 정오가 되면 그늘로 가서 목동을 둘러싸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밤이 되어 어둠이 땅에 덮이자 목동은 양 떼를 우리로 이끌어 들였습니다. 목동은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이름을 불러가며 우리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때 목동의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양들은 일순 긴장을 했습니다. 이윽고 한 마리 양이 우리 밖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떠드는 목동들의 소리를 들으며 다른 양들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양들은 그 밤에 사라진 친구의 자취를 뒤로하고 목동의 부름에 바삐 움직였습니다. 그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양들은 침묵하였습니다. 그 밤에 양의 우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선한 목동과 삯꾼은 어떻게 다를까요? 선한 목동은 양의 안전이 가장 큰 관심사지만 삯꾼은 자기가 받을 삯이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삯꾼은 숫자에 관심을 가지지만 선한 목동은 양의 존재에 관심을 가집니다. 삯꾼은 양의 이름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헤아리며 수만 기억하지만 선한 목동은 한 마리 한 마리의 양을 기억합니다.
삯꾼은 맹수가 다가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지만 선한 목동은 양을 지키고자 맹수와 맞섭니다. 삯꾼은 양의 고기를 좋아하고 선한 목동은 양의 젖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누가 선한 목동인지 누가 삯꾼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삯꾼 자신도 리플리증후군에 걸려 스스로 선한 목동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되시는 그분은 알고 계십니다. 그때 그분이 분명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