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은 ‘상태’이며 과정이다
마태복음 13:45~46
찬송: 436장
주님은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값진 진주”가 천국과 같다고 하지 않으시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를 천국과 같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설명하실 때 단순히 장소로만 말씀하시지 않고, 그곳에 들어가는 과정이나 삶의 태도로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천국 자체를 지닌 사람으로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천국의 상속자요, 건설자요, 동역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상태이며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도 하셨고, 로마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롬 14:17)”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천국은 단순한 장소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하는 관계이다 △천국은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었으며,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천국을 적극적으로 찾고, 천국을 맛보고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됩시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과 천국의 상속자요 건설자로서 복되게 사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함정과 착각에서 탈출하자
사무엘상 4:19~22
찬송: 200장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에 대한 신앙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미 하나님의 마음은 떠난 상태였습니다(삼상 3:13). 이런 상황 중에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죽었고, 전쟁에서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엘리 제사장 또한 넘어져 죽습니다. 그때 비느하스의 아내는 임신하여 해산 할 때가 되었는데 남편의 죽음보다, 시아버지의 죽음보다 더욱 그녀를 슬프게 한 것은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19절, 21절)이 가장 먼저 언급되었고,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가장 슬퍼했던 것은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는 것이었습니다(22절).
그런데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 족속들에게 법궤를 빼앗긴 사건은 이스라엘 성막사에 있어서 극히 이례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이었고, 이에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 비느하스의 아내의 슬픔은 죽음으로 그들을 이끌고 갔습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 어떠한 상징물이나 공간적 장소에 얽매이지 않으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법궤는 아무 쓸모없는 단순한 궤짝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없는 신앙인, 하나님이 없는 교회는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하나님과의 동행을 위해 그 분이 미워하시는 것들을 버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삶의 전부분이 주님의 은혜 아래 거하게 하소서!

나를 이리로 보내신 이
창세기 45:1~8
찬송: 292장
초기 기독교 교부인 요한 크리소스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AD349~407년) (1)먼저 인간의 시선과 판단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2)어떻게 소유, 성공, 인정, 안정과 같은 외적인 것에서 메이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3)나는 어떻게 병과 죽음 거절과 거부당하는 것과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까? (4)그리고 이러한 것들로 인해서 나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그는 내적 자유함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적 자유함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신뢰하는 데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이러한 질문과 관련해서 가장 모범적 성경적 인물로 요셉을 꼽았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 자신의 고향에 흉년이 들었기에 결국에는 형들이 애굽까지 내려와서 곡물을 구하려고 총리인 요셉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형들은 죄의식을 사로잡혀 두려워 당황해하자, 요셉은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요셉은 그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형들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사실을 믿고 있었기에, 분노, 증오, 복수에 해방되어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러한 요셉의 신앙을 “형통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통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할 때 주어지는 상호교차적인 관계에서 주지는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상이 되게 하소서!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지 말라
마태복음 7:1~2
찬송: 539장
본문을 흔히 은율이라고 합니다.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황금률(마 7:12)과 대비됩니다. 황금률은 “받고자 하는 대로 주라”는 적극적 형태라면 은율은 “받고 싶지 않은 것은 주지 말라”는 소극적 형태입니다.
사람들은 이 원칙이 단순히 하지 않으면 되니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원치 않는 것을 받았을 때 보복하려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은혜를 잘 갚지 않으면서도 원수는 잘 갚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치 않는 것을 경험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수가 아니라 공감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도 같은 일을 겪으면 고통스러울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공감할 때, 우리는 남에게 원치 않는 것을 행하지 않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경험하게 하시는 이유도 공감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나도 받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도 원하겠구나! 공감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베풀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원한다”는 것을 깨닫고 베풀며 “내가 원치 않는 것은 다른 사람도 싫어한다”는 사실을 공감하여 행하지 않는 사랑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제가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도 싫어한다는 사실을 공감하며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신앙과 삶의 복원력
누가복음 22:54~62
찬송: 370장
인생의 시련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통해 신앙과 삶을 복원할 수 있을지 성경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첫째,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과 부르심이었습니다. 40년간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때마다 그를 다시 세운 게 무얼까요? 호렙산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이었습니다.
둘째, 다윗에게는 침상을 눈물로 적신 회개였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이 무너져 내리는 때는 보통 언제입니까? 평안할 때입니다. 다윗은 바로 그때 그가 아끼는 군대 장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그의 죄를 지적하셨고, 다윗은 그 즉시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합니다.
오늘 본문 베드로에게는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말하자마자 닭이 웁니다. 이때 베드로는 심히 통곡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무얼까요?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인생에서 복원력을 잃어버리면 한순간에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이, 회개가,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신앙과 삶을 복원하는 능력이 되어, 여러분의 신앙과 삶이 매일매일 상승곡선을 그려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의 신앙과 삶을 복원하여 주옵소서.

선택의 결과
사무엘상 8:1~9
찬송: 390장
사무엘은 나이가 들어 늙게 되자, 두 아들을 사사로 세우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시대 사사는 백성을 다스리며 판결하는 하나님의 심판관 역할을 감당하는 막중한 자리였음에도 사무엘이 세운 두 아들은 뇌물을 취하여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은 사무엘을 찾아가 사사를 거부하고 왕을 세워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왕정을 요구한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간섭을 받고 싶지가 않다는 뜻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이런 요구를 듣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은 그들이 왕을 요구하는 것은 너를 버림이 아니고 나를 버림이라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아닌 왕을 선택했을 때 그 결과는 남 왕국과 북 왕국으로 분열되어 북 왕국은 이방민족인 앗수르에게, 그리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아닌 왕의 선택이 그렇게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다음 세대로 넘어갔을 때, 그들은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좀 힘들더라도 차선이 아닌 최선을 선택하고, 오늘이 아닌 미래를 선택하면서 주님을 향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새로운 힘과 영적 분별력을 얻는 우리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는 지혜를 더하셔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