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었다. 새해가 시작되면 새로운 기대가 있게 마련이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 시작되는 시간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간을 일정하게 토막내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 맞이하게 하셨다.
새해가 시작되면 일말의 불안한 마음도 발생한다. 새해는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해를 무사하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있다. 더구나 25년도는 연말부터 시작된 사회불안으로 새해를 어둡게 시작하였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면 세계인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요란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이태원 사고가 터진 지 얼마 되었다고 또 대형 비행기 사고가 터지는가. 생각하면 새해가 다가왔어도 기대와 새로움보다 삶이 흔들리고 새해에 대한 기대조차 상실되어 있다.
이런 때에 필요한 것은 든든히 붙잡을 근거가 요청된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오리겐은 이 말씀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덤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이라고 풀이했다. 그 말씀의 뜻은 “하나님 먼저”라는 의미다.
신앙인은 누구를 말하는가. 신앙인들은 “하나님 먼저”(God First)라는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누구에게나 삶의 우선순위는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먼저이고 우선이다. 그래서 삶이 피곤한 것이다. 신앙인은 내가 먼저가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다. 이런 신앙인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영적인 자기정체성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새해는 그동안 내가 먼저였던 순서를 하나님 먼저로 바꾸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러면 삶의 초점이 분명해질 것이다.
1959년 9월 27일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소련의 후르시쵸프 수상을 초청하였다. 다음날이 주일이라 호텔로 찾아가 오늘이 주일인데 함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자고 제안하였다. 순순히 응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한 시간 반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예배드리러 갔다.
아이젠하워는 아무리 바빠도 예배에 갈 사람이라는 것을 무신론자 후르시쵸프도 알고 있었다. 이 알았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이 ‘하나님 먼저’ 정신의 영향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자신을 나타낸 적이 없다. 다만 아이젠하워와 같은 영적 자기정체성이 분명한 사람들에게 투영되어 사람들에게 나타나신다. 어쩌면 그 모습이 나의 값이고 나의 영적인 수준일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아이젠하워는 후르시쵸프에게 한 시간 반 동안 무슨 생각을 하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멀리서 손님 불러다 놀고 주일예배에 가야 하는 당신이 무슨 구실을 댈까 생각했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있다. 그 할 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중심이 서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변함도 없고 손쉽게 수단과 방법과 환경에 타협하지도 않는다. 오늘 우리는 너무 현실에 흔들린다. 스스로를 지탱해 줄 무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룰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우리의 신앙은 물론이고 이 나라 정치인들의 가벼움까지 묵직하게 변할 수 있는 말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신촌성결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