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로를 향한 예언은 에스겔의 이방 심판 선언 중에서도 눈에 띕니다. 분량도 길고(26~28장) 특이한 비유와 시적 표현이 넘치는 데다, 힘으로나 외국에 대한 지배력으로나 월등했던 초거대국 애굽이 받은 것보다도 엄중한 책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로는 예루살렘의 재난을 이익을 취할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두로가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르기를 아하 만민의 문이 깨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그가 황폐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하였도다(26:2).” 한 나라의 재난이 다른 나라들의 사업 기회가 되는 것은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원조와 구호의 손길도 건네는 것이 문명국가들의 행동입니다.
두로는 화려한 문물을 자랑하던 나라였습니다. 고급 자재와 기술로 건조한 선박은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고(27:5~7), 오늘날 항공기와 우주선이 첨단기술의 집약체이듯 그들의 조선업은 항해술과 지리학, 무역과 외교로 확산되어 두로의 위상을 한껏 높여주었습니다. 주위 나라들에서 기술자와 용병이 몰려들었고, 그들과 거래한 나라의 목록은 고대근동 지도를 다 덮을 지경이었습니다(27:8~25). 이처럼 부강해진 두로이지만 나라 안팎의 약한 자들에게 베풀 긍휼함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가 황폐하였으니 내가 충만함을 얻으리라.” 위선이 비난받을 흠결이긴 하지만, 위선조차 부리지 않는 악덕에 비길 바는 아닙니다. 두로가 보여주는 날것의 탐욕을 하나님이 꾸짖으십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여 바다가 그 파도를 굽어지게 함 같이 여러 민족들이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그들이 두로의 성벽을 무너뜨리며 그 망대를 칠 것이요 나도 티끌을 그 위에서 쓸어 버려 맨 바위가 되게 하며 바다 가운데에 그물 치는 곳이 되게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6:3~5).”
두로같은 큰 도시국가는 성벽과 망대로 보호하는 중심구역을 ‘딸’이라 불리는 소읍들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합니다. 두로의 성벽과 망대는 완전히 파쇄되어 고깃배가 그물 너는 바윗돌이 되고, 위성도시 ‘딸’들도 전멸할 것입니다. “들에 있는 그의 딸들은 칼에 죽으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26:6).” 두로의 죄는 교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28:2)”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설만치 자신에게 도취한 채 멸망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심판을 당하고야, 처절히 망한 뒤에야, 그분이 여호와이신 줄 깨닫는 것은 비극입니다. 에스겔서에 반복되는 “내가 여호와인 줄 그들이 알리라”는 “그제야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예측인 동시에 “그리 되기 전에 내가 여호와인 줄 알아라”라는 촉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시는 것은 신적 공의의 시행인 동시에 사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깨닫고 돌이키는 이들에게는 심판을 면하고 새 삶의 기회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욘 3장). 호세아는 백성을 향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고 탄식했습니다(호 4:6). 우리는 심판이 오기 전에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에스겔의 예언 후에 두로와 시돈이 회개했다는 기록이 없으니 그들은 예언의 말씀대로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몰락은 스스로를 대견해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질타 속에 자취를 남겼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눅 11:22).” 하나님 앞에 높아진 마음을 낮추어야 삽니다. 겸손이 존귀의 앞잡이입니다(잠 15:33; 18:12).
백석대·구약신학
■ 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99) -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겔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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