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둘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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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둘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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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9.0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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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 목사/해뜨는교회
김창기 목사/해뜨는교회

살구나무 가지 환상

예레미아 1:11~12
찬송: 488장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 가지 환상을 보여주시며 세 가지 말씀을 합니다.
첫째, “네가 무엇을 보느냐?”라고 물어보십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가지를 본다고 하였습니다. 고통과 절망의 시간에 우리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아야 합니다. 살구나무는 추운 겨울을 이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그리고 가지(마켈)는 ‘싹튼 가지’를 의미하는데, 추운 겨울 죽어가는 앙상한 가지에서 싹이 돋은 것을 보면서 따스한 봄이 멀지 않은 것처럼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하나님은 “네가 잘 보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나라가 망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은 것이 잘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살구나무-‘솨케드’라는 발음과 지켜-‘쇼케드’라는 발음이 비슷합니다. 히브리어 말에는 발음이 비슷한 것을 통해서 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살구나무 가지 환상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실행하시겠다는 의지이신데, 이스라엘의 멸망과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에서 반드시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요 약속을 말합니다. 성도는 어떤 절망과 낙심 속에서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믿고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믿고 오늘도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일어서게 하소서!

 

박현욱 목사/창대교회
박현욱 목사/창대교회

사람의 본성과 “감사하라”

시편 136:1~26
찬송: 428장

시편 136편은 1절부터 26절까지 절마다 “감사하라”는 명령형이 등장합니다. 예배 인도자인 제사장이 “감사하라” 선창하면, 예배자인 회중이 선창에 대한 응답으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를 후창합니다. 예배 가운데 “감사하라”를 제사장은 26번 반복하여 큰 소리로 외치고, 회중은 26번 반복하여 큰 소리를 듣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2가지 유익을 얻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감사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연스럽게 감사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10명의 나병환자가 등장합니다. 10명 모두 예수님이 치료해 줍니다. 그러나 나병에서 벗어나 치료를 받은 10명 중에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가던 길에서 돌아온 사람은 단 1명뿐입니다. 감사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으면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시편 136편을 사용하여 예배하는 가운데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기는 인간의 본성이 깨어졌을 것입니다. 시편 136편을 사용하여 예배하는 가운데 100가지 은혜를 받아도 1가지 섭섭하면, 그 섭섭함을 가슴에 오래도록 담아두는 사람의 속성이 교정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원망하는 백성이 아니라 감사하는 백성이 되기를 소망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원망하는 인생이 아니라 감사하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황빈 목사/강성교회
황빈 목사/강성교회

목숨 대신 창과 물병을 취한 다윗

사무엘상 26:1~25
찬송: 460장

직접적인 표현보다 상징적 표현이 더 강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멸망을 묘사하기 위해 전 세계가 무기를 터뜨리며 전쟁하는 장면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이 잿더미에 덮이고 바퀴벌레만 가득한 어두운 도시의 뒷골목을 보여주는 것이 더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목숨을 취할 수 있었지만, 진짜 목숨을 거두는 것 대신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를 함으로써 자기 힘을 더욱 강력하고 선명하게 증명했습니다.
성경은 상징으로 가득합니다. 특히 이 세상의 끝에 있을 일들은 온통 상징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공동체는 상징의 공동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은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힘의 표현을 추구하지만,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천군 천사를 불러 모든 대적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으셨던 예수께서 십자가에 오르신 것은 우리 신앙인들이 알고 있는 상징 가운데 가장 강력한 역설의 상징입니다.
십자가에는 모든 능력이 있으신 분의 의도적 무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가장 강력한 폭력을 행사하실 수 있는 분의 철저한 비폭력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교회는 교회가 가진 힘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까요? 이 질문에 십자가의 예수는 이미 답을 주셨습니다.

•오늘의 기도
거짓을 거짓으로, 폭력을 폭력으로 갚지 않게 하소서. 오히려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겨내게 하소서.

 

신성훈 목사/신일교회
신성훈 목사/신일교회

행복한 가족 공동체

요한일서 2:12~17
찬송: 249장

성경에 여러모로 영적 가족공동체가 교훈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 믿는 우리는 모두 가족공동체로 부름 받고 세워지고 있습니다. 본문은 사도 요한이 교회를 가족공동체로 보고 축복과 당부를 주고 있습니다.
먼저 자녀와 아이들에게는 그들의 죄가 주의 이름으로 사함 받았음을 말합니다. 곧 그들은 죄 사함 받고 나아가 자기 죄 사함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자녀들입니다. 죄 사함이란 기독교 신앙에서 그 출발 단계에서부터 확인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죄 사함의 믿음을 개인적으로 점검하고 확인하는 것이 진정한 출발입니다.
아비들에게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안다”란 지식을 가리키는데 온 인격으로, 체험적으로, 각성함으로 “안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요한은 바로 아는 것이 생명이며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다는 것은 그 영적 지식의 깊이를 말해줍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시니어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태초부터 계신 이로, 더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이런 지식은 경험과 함께 얻어집니다. 복된 가족공동체에서 리더, 선배, 부모들은 계속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진리를 알아가는 발전이 있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죄 사함과 성숙과 승리를 기업으로 얻는 행복한 가족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죄 사함에 대해 확신 속에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김영수 목사/소풍교회
김영수 목사/소풍교회

내가 준비한 기쁨

요한복음 2:1~12
찬송: 524장

오늘 본문은 혼인 잔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혼인 잔치에 혼주가 준비한 술이 모자랐습니다. 예수님은 종들에게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채워 넣으라고 말씀하시고 그 후에 가져다 연회장에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청함받은 사람들은 종들이 떠다 준 물을 맛보고 주인을 칭찬합니다.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두었도다” 칭찬하며 잔치를 즐거워했습니다. 
이 세상이 말하는 재미, 즐거움, 내가 누리고 싶은 즐거움들이 무엇이든지 그것들이 우리를 참된 만족과 즐거움으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큰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하게 만드는 갈증을 느끼게 합니다. 세상이 주는 물은 먹으면 먹을수록 더 큰 갈증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혼인 잔치에 다양한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겠으나 주인인 준비한 포도주가 바닥나면 잔치의 흥이 깨어지는 것처럼, 이 세상이 주는 즐거움, 내가 준비한 즐거움이 끝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잔치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면 예수님이 그곳에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만족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예수님 때문에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마름을 해갈해 주시는 생수의 근원이 되십니다.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하는 삶보다 영적으로 거룩하고 평안을 추구하며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즐거움이 예수님과 함께 함이 되게 하소서.

 

피은혜 목사/새창원은혜교회
피은혜 목사/새창원은혜교회

“받아서 상속합시다”

마태복음 19:27~29
찬송: 180장

오늘 본문 말씀에 한 청년이 주님께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는지 질문을 합니다. 계명을 지킬 것과 더불어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이 청년이 근심하며 떠나가고 맙니다.
우리가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을 고백하지만, 돈 앞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는데 무엇을 얻겠느냐고 말합니다. 이 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한 마디로 “버리면 다 된다”입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버리는 자가 되라”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이유요, 목적입니다. 그를 위하여 우리의 소중한 것을 버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본문의 이 청년은 결국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버리지 못했기에 영생을 얻지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지도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그 이름을 위하여’입니다. 영원한 그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 우리의 본분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보십시다. 하나님께 드리면 신실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후히 되어 돌아오게 하십니다. 순종에는 반드시 증거가 나타납니다. 주를 위해 버리는 순종과 믿음으로 영원한 것을 자손에게 유산으로 상속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삶의 목적을 바르게 해서 끝까지 그 이름을 위하여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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