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쪽짜리 총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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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반쪽짜리 총체성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4.08.30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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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전도 종족’, ‘10/40 창’과 함께 로잔운동에서 소개된 중요한 개념이 있다. ‘총체적 선교’, 다시 말하자면 ‘복음의 총체성’이다. 총체적 선교란 ‘복음은 선포하는 것인 동시에 실천하는 것’임을 뜻한다. 단순히 입으로만 하나님 나라가 왔다고 떠드는 것이 선교의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위에 임하도록 땀을 흘리는 것이 진정한 선교라는 의미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가진 것을 서로 나눴던 초대교회부터, 학교와 병원을 세웠던 선교사들에 이르기까지 건강한 선교는 언제나 총체적이었다.

그런데 요즘 총체적 선교를 두고 가타부타 뒷말이 붙는다. 복음 전파와 사회 참여를 동시에 강조하는 로잔운동의 총체적 선교는 자유주의와 결탁한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이에 한국준비위는 부리나케 해명에 나섰다. “로잔운동은 사회참여도 강조했지만 언제나 복음전도의 우선성을 분명히 했으며, 로잔의 ‘총체적 선교’는 WCC를 비롯한 에큐메니즘의 ‘총체적 선교’와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로잔이 WCC와의 차별성을 꾀하며 출발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즘은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이루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머리를 맞댄다. 몇몇 신학적 관점에서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남아있지만 대위임령의 성취라는 큰 뜻을 위해서는 기꺼이 손을 맞잡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복음주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로잔운동에 힘을 보태는 동시에 에큐메니즘과 WCC에도 적극 참여하는 예장 통합 교단이 바로 그 예다.

로잔운동은 언제나 시대에 앞선 패러다임을 제시해왔다. 이번 제4차 대회에서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 디지털 시대, 다중심적 기독교 시대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상식을 부수고 편견을 뛰어넘는 논의들이 전개될 터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이르러서까지 ‘복음주의의 총체적 선교는 에큐메니즘과 다르다’며 선을 긋는데 급급한 태도의 한국교회라면 혁신적인 담론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구태여 한 번 더 단어의 정의를 풀어본다. ‘총체’란 곧 ‘전체’다. 수세적인 태도로 반쪽짜리 총체성에 얽매여서는 내일을 바라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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