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의 애국심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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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의 애국심 일깨우다
  • 김태현 기자
  • 승인 2024.08.2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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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유산을 찾아서 (20) //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운동 주도한 ‘군산영명학교’(하)
군산시 월명공원에 마련되어 있는 만세운동 기념비와 기념 동상. 군산영명학교는 1919년 3월 5일 군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군산시 월명공원에 마련되어 있는 만세운동 기념비와 기념 동상. 군산영명학교는 1919년 3월 5일 군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일제 강점기 3.1만세운동은 서울에서 시작해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을 하며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학교가 있으니 바로 ‘군산영명 학교’다.

3.1운동이 물밑에서 준비된던 1919년 2월 28일 군산영명학교의 졸업생이자 세브란스 의학교의 학생이었던 김병수는 군산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독립선언서 200장을 가지고 군산으로 향했다. 김병수는 군산영명학교의 교사 이두열, 송현호, 김수영, 박연세, 고석주, 김수영 등에게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 교사들은 3월 6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군산영명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위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비밀리에 준비했다. 그러던 중 봉기를 눈치 챈 일제의 무장 경찰관이 거사일을 하루 앞두고 학교에 들이닥쳐 교사들은 연행했다.

이에 체포되지 않은 교사들과 군산영명학교 학생들은 체포된 교사들의 석방 시위를 결의했다. 이대로 교사들이 처벌받는다면 만세운동이 흐지부지될 것을 우려해 하루 앞당긴 3월 5일 앞서 준비되었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만세운동을 실시했다.

3월 5일 일어난 만세운동에 수많은 군산시민들이 순식간에 합류했다. 3만7천여명이 모여 “대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인파는 체포된 이들의 석방과 대한독립을 외치며 군산경찰서 앞까지 갔다. 비폭력 시위였던 이날의 봉기에 일제는 폭력으로 응수했다. 시위 주동자 90여명이 검거되었으며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군산영명학교로부터 촉발된 만세운동은 5월까지 약 3개월간 전북지역의 만세운동으로 번졌다. 전북지역에서는 28회에 걸쳐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군산영명학교로 인해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지자, 일제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특별과를 폐과하고 고등과를 중단시키는 결정을 했다. 일제는 노골적으로 군산영명학교를 탄압했다. 탄압은 신사 참배 강요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만세운동을 주도할 정도로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군산영명학교의 교사들과 학생들은 폐교를 할지언정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

군산영명학교는 1940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끝내 자진 폐교했으며 해방 후 1965년 복교했다. 후에 재정난을 겪다 지역 독지가가 군산영명학교의 정신을 높게 사 학교를 인수해 군산제일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꾸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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