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몸 된 교회는 형제가 혼자 울게 두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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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몸 된 교회는 형제가 혼자 울게 두지 않습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4.08.08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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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크리스천 (3) 대구 기쁨의교회 김유복 목사와 성도들
성도 300여명 작은 교회, 전세사기 피해 성도에게 선뜻 마음 모아
“작은 교회기에 할 수 있는 사역, 한국교회 공동체성 회복했으면”

성경에서 야고보는 ‘행하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약2:17)’이라고 했다. ‘행함’을 통해 드러나는 믿음이 성도의 진짜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야고보의 고백처럼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말뿐이 아닌, 실천적인 매일의 삶 속에서 드러내는 이들이 있다. 본지는 그들을 ‘행동하는 크리스천’이라 칭하기로 했다. 세 번째 사례로 전세사기 피해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도운 대구 기쁨의교회를 조명한다.

머리가 멍하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일은 조금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잠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때로는 사회를 원망하다가 어떤 날은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을 반복하며 절망 속에 침잠한다. 근 몇 년 사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토로하는 심정이다.

공식 집계한 지 단 1년 만에 정부의 인정을 받은 피해자 수만 1만7천명에 이른다. 이 중 20~30대 청년 피해자의 비율이 70%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대부분 청천벽력같이 생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빚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사회 초년생들이다. 전세사기로 인해 끝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진 한 피해자는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다. 억울하고 비참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우리는 얼마나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있을까. 내 앞가림도 벅차다는 핑계로 속에서 울음을 삼키고 있는 이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도 절망의 수렁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교회가 있다. 의외로 그곳은 수천, 수만명의 성도들이 출석하고 있는 소위 ‘대형교회’가 아니었다. 주인공은 약 350명의 성도들이 신앙을 키워가고 있는 대구 기쁨의교회(담임:김유복 목사)다.

작은 교회임에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 대구 기쁨의교회 김유복 목사는 교회 본연의 ‘공동체성’을 회복할 것을 강조했다.
작은 교회임에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 대구 기쁨의교회 김유복 목사는 교회 본연의 ‘공동체성’을 회복할 것을 강조했다.

우리 교회에도 전세사기 피해자가?

지난해 성탄절 대구 지역 교회들이 기획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예배: 전세사기 피해주민들과의 동행’에 대구 기쁨의교회도 참여했다. 저 높은 하늘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위로가 필요한 이들의 손을 잡자는 의미에서였다. 당시 대구에선 100억원 규모의 조직적 전세사기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거리로 나가 피해 주민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탄절 예배에서 모인 헌금을 전액 피해자들에게 전달했다. 성공회 예전을 따라 진행된 예배는 설교와 기도 후 성찬식으로 빵과 포도주를 나눴다.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대표도 예배에 참석해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교회가 나서서 자신들의 고통에 함께 해주어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만 해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이렇게 많은지, 얼마나 절실한 상황인지 몰랐다. 그저 안타까운 일이라고 여길 뿐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뉴스에서나 접하던 전세사기 피해가 기쁨의교회 본인들의 일이 되리라곤 그때는 생각지 못했다. 그 생각이 깨지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성탄절 예배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 교회 간사님 한분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젊은 공동체를 담당하는 분이셨죠. 공동체 리더로 섬기는 A 형제가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것 같은데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김유복 목사는 즉각 A 형제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다. 사정은 이랬다. 월세를 아끼기 위해 전세 대출을 받아 8천5백만원 전세 다가구 주택에 입주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집주인은 다세대 주택 12채에서 100여 가구의 보증금을 빼돌려 110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힌 악질적인 사기꾼이었다. 집주인의 재산은 이미 대부분 대출로 잡혀 있었고 처음부터 부동산 중개인과 작당해 계약서를 작성한 터라 집이 경매로 넘어가도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비교적 최근에 입주했던 A 형제는 입주자 순위에서도 후순위인 상황이었다.

저축했던 1천7백만원을 제외하면 은행에서 빌린 돈이 6천8백만원 가량. 이대로라면 6천8백만원은 고스란히 A 형제의 빚이 되어 떠안게 될 실정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A 형제가 두 달 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매 측 부모님이 수년간 결혼을 반대하다 이제야 겨우 승낙을 받았는데, 전세사기로 수천만원의 빚이 늘었음을 처가가 알게 된다면 파혼까지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혼자 울게 둘 수 없었기에

공동체 리더로 교회에서 봉사하며 아쉬운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던 청년이다.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러 오기까지 수없이 많은 고민에 자존심이 발목을 잡았을 터였다. 그런데 자매가 모은 돈에 지인들에 빌린 돈을 더해 어떻게든 3천8백만원까진 마련했지만 남은 3천만원은 도통 수가 보이지 않았다. 힘들어하던 차에 함께 교회에 출석하던 자매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교회는 공동체잖아. 힘들 때 혼자 고민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교회지.”

그렇게 만난 A 형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어렵게 성사된 결혼이라는 것을 교회 구성원 모두가 알고 있었고 심지어 자매 쪽 가족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이었다. 돕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당시 교회 상황도 녹록지만은 않았다.

“우리 교회는 20~40대 성도들 250명을 주축으로 청소년 이하 아이들이 120명 정도 출석합니다. 규모가 크고 재정이 넉넉한 교회라고는 하기 어렵죠. 게다가 아픈 성도가 있거나 상황이 어려운 성도가 있으면 자주 모금을 해서 도움을 줘왔어요. 3천만원이 넘는 금액을 또다시 모금해보자고 요청하는 것이 부담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쁨의교회는 괴로워하는 형제를 혼자 울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김유복 목사와 A 형제가 만난 바로 그 주일에 즉시 광고가 나갔다. A 형제가 전세사기를 당해 3천만원이 필요하니 돈을 빌려주거나 후원을 해달라는 광고였다.

일단 후원금을 요청했지만 마음을 놓기는 힘들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교회였기에 여태 가장 많은 금액의 모금이라 해봐야 천만원 정도가 전부였다. 잦은 모금에 성도들이 지치지 않았을까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곧 기우임을 알 수 있었다. 4월 말까지 모금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4월 둘째 주에 이미 순수 후원금만 3천만원이 모인 것이다. 김 목사는 그 주에 즉시 모금을 종료하겠다고 알렸다.

지난해 성탄절 대구 지역 교회들이 모여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예배: 전세사기 피해주민들과의 동행’을 진행했다.
지난해 성탄절 대구 지역 교회들이 모여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예배: 전세사기 피해주민들과의 동행’을 진행했다.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교회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을 사이에 끼고도 결코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우리나라다. 자존심이 강한 한국인들은 자신의 약한 면모를 다른 이들이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울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혼자 운다. 혼자 우는 이들은 도와주고 싶어도 어려움을 알지 못하니 도울 수가 없다. 만약 A 형제가 끝까지 주저하며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김유복 목사는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교회가 공동체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으면 누가 어디서 혼자 울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누구한테 도와달라고 해야 할지 모르고 교회 역시 도울 수 있어도 누가 도움이 필요한지를 모르는 것이죠. 공동체성의 회복이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성원이 언제든 믿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든든한 가족으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어려운 이웃을 돕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복지와 자선 사업에서 기독교계의 비중을 빼놓고는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인력과 재정이 풍부한 대형교회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기쁨의교회는 작은 교회도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어려운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고통에 연대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김유복 목사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오히려 작은 교회이기에 어려움에 빠진 형제를 더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었다고 역설한다.

“대형교회는 워낙 사람들이 많다 보니 기껏해야 본인이 속한 소그룹 구성원들 정도밖에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작은 교회인 우리는 A 형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모두가 압니다. 결혼의 결실을 맺기까지 쉽지 않은 길을 거쳐왔음을 알고 도움을 요청하는 말을 꺼내는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너무 잘 알아요. 그렇기에 다들 기쁜 마음으로 후원에 동참해주셨던 거죠. 예배만 드리고 가는 교회라면 도움을 요청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작은 교회일수록 서로의 고통에 연대하는 일에 적극 나설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당시 사람들은 ‘정 살기 힘들면 교회가라’는 말을 했다고들 한다. 쌀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교회를 간다고 ‘라이스 크리스천’이란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어찌 됐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였다는 의미다.

“아모스서에 보면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를 돌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렇게 항변했을 것 같아요. ‘이게 우리가 절멸을 당할 만큼 큰 죄냐’고요. 지금의 한국교회도 고통받는 사람과 연약한 사람이 아닌 부자와 권력자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곁에서 연대하는 마음에 한국교회 회복의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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