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3대를 사용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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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3대를 사용하셨습니다”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4.05.0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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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이어온 이순기 목사의 가문, 3대 목회자 배출
지난달 27일 이종근 원로목사 백수(白壽) 감사예배

말을 타고 순회하던 벽안의 선교사로부터 처음 복음이 전해진 후, 7대까지 신앙을 계승해온 믿음의 명문가가 있다. 

첫 구약성경을 번역했던 알렉산더 피터스 선교사는 1906년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고, 당시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 그는 자신의 집 뒤편에 초가삼간 예배당을 지었고, 교회는 복음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냈다.

이 가문의 첫 신앙인은 바로 오포효정교회 이순기 목사(한성노회)의 증조부다. 후손들은 지금까지 이 지역을 기반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왔다. 

이순기 목사는 지난달 27일 경기도 안성시 파크엘림에서 아주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고 동역해온 백석총회 목회자와 성도들, 지인, 친지 등을 초청했다. 바로 부친 이종근 원로목사의 백수(白壽) 감사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다. 같은 한성노회 목회자뿐 아니라 이 원로목사가 개척한 교회의 성도들도 기꺼이 달려와 축하해 주었다. 

감사예배는 단순히 백수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자리였다.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신앙의 대를 잇겠다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기다. 특별히 이날 목회의 길을 걷고 있는 할아버지 이종근 목사와 아버지 이순기 목사, 손자 이상익 목사를 만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피터스 선교사로부터 복음이 전래된 이후 오포효정교회 이순기 목사의 가문은 7대에 이르기까지 신앙을 계승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백수감사예배 후 할아버지 이종근 원로목사(가운데)와 아버지 이순기 목사(오른쪽), 아들 이상익 목사가 기념촬영을 함께 했다.
피터스 선교사로부터 복음이 전래된 이후 오포효정교회 이순기 목사의 가문은 7대에 이르기까지 신앙을 계승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백수감사예배 후 할아버지 이종근 원로목사(가운데)와 아버지 이순기 목사(오른쪽), 아들 이상익 목사가 기념촬영을 함께 했다.

부르심을 향한 중보기도
이순기 목사는 젊은 시절 힘겨운 아버지의 목회를 보면서, 자신은 그 뒤를 따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목회는 영광의 길이면서도 고난의 길인 것이 분명했다. 목회의 뜻이 없다고 생각해 외국계 기업에서 상당 기간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께 붙들리게 되었고, 40세가 넘어서야 방배동에서 신학공부를 하게 됐다. 그렇게 지금까지 순종의 길을 걷고 있다. 

“실은 제 할머니의 기도가 먼저 있었습니다. 13명 식솔을 거두느라 아버지도 뒤늦게 60세가 넘어서 목사가 되셨어요. 할머니는 아들이 목회의 길을 걷지 못하자 손자가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꾸준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 덕에 목회의 대를 잇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이종근 원로목사는 가족들을 위해 목수일과 농사일을 놓을 수 없었다. 대신 그는 항상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전도를 위해서라면 삯도 안 받고 남의 집 써레질, 가래질, 쟁기질을 해주곤 했다. 그렇게 주님께로 인도한 영혼들이 참 많았다. 하나님께서 치유의 은사를 주신 적도 있다. 

무엇보다 이종근 원로목사는 교회 개척자로 헌신했다. 장로로 시무하면서 2개 교회를 개척했고, 목사안수를 받은 후 1개 교회를 더 개척해 목회를 이어갔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도 2개 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목사
이종근 원로목사는 가정 복음화의 시초였던 할아버지를 따라 교회에 가곤 했던 기억이, 100세가 되는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주 쪼그마할 때부터 할아버지 손잡고 교회를 가곤 했는데, 항시 올 때에는 할아버지 등에 업혀 돌아왔지. 예배 시간에 늘 잠들어 버렸으니까. 우리 할아버지 덕에 후손들이 믿음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아들만이 아니라 손자까지 목회하는 것이 이 얼마나 기특하고 감사한지 몰라요.”

직장생활을 하는 사이, 이상익 목사는 교회를 개척해 시무하고 있었다. 이순기 목사는 아버지를 도와 부교역자로 사역하다, 오포효정교회 청빙을 받아 지금까지 목회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이순기 목사는 “아버지의 헌신적은 목회를 지켜봤기에 여전히 자신은 부끄럽다”고 고백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영혼을 사랑하고 주경야독 했던 아버지의 삶과 목회가 지금도 노년의 아들에게는 모범이다. 

자신도 역경 속에 목회하며 15년 동안 예배당 옆 작은 방에 살며 자녀들을 길렀다. 부족한 것뿐이어서 두 아들을 생각하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힘든 목회의 길을 보면, 후손들이 도저히 신학을 하겠다고 나서기 어려워 보이던 때 목회자가 되겠다고 자처한 이가 둘째 이상익 목사였다. 

이상익 목사는 백석대 기독교학부와 장신대 신대원을 거쳐 지금은 서울 방화동 시냇가푸른숲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고 있다. 

“목회자의 고난이 오히려 복”
손자는 목회에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할아버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많이 보냈다. 상가 교회에서 제대로 된 집이 없어 어려웠지만 믿음의 가정이라는 사실이 좋았다. 성도들의 사랑을 더 많이 경험했던 것이 소중한 기억이다. 이상익 목사는 신앙 안에서 살아온 것이 은혜라고 고백한다. 

대학 시절에는 4년 동안 필리핀 선교지에서 사역하기도 했다. 청춘의 시간을 뚝 떼어서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결단이었다. 선교지에서 사역할수록 목회를 향한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상익 목사는 매년 5월이면 할아버지 이종근 원로목사를 모시고, 설교 말씀을 듣고 있다. 단지 자신의 할아버지이기 때문에 설교 단상을 내어준 것이 아니다. 

“워낙 말씀이 좋으셔서, 우리 성도들에게도 은혜가 되기 때문에 모시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늘 ‘그동안 하나님의 일을 했더니, 하나님께서 내 일을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제 목회 신념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우선이라는 마음으로 지금도 목회하고 있습니다.” 

이상익 목사는 고생하는 아버지 이순기 목사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은퇴까지 얼마 남지 않는 기간, 이순기 목사는 새 예배당을 건축하고 입당을 목전에 두고 있다. 교회가 재개발 지역에 편입되면서 새 터전이 필요했고, 후임 목회자에게 그 부담을 넘길 법도 했지만 최근 몇 년 간 건축을 추진했다.

이상익 목사는 “건축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무거운 책임까지 져야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안타까웠다. 어서 건축이 마무리가 되어서 효정교회가 주님 앞에 더욱 쓰임 받을 수 있길 중보기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순기 목사의 생각은 아들과 조금 달랐다. 지금도 힘든 건축 과정에 있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을 기회라는 것이다. 

“후임에게 넘겨주어야 하나 기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너는 아버지의 기도로 거저 목회한 것 아니냐 하는 마음을 주셨어요. 하나님만 바라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목회를 마무리할 때 고난의 길을 선물처럼 주셨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제게는 복입니다.” 

이날 감사예배를 마친 후 모든 손님들이 떠나간 자리에서 3대 목회자가 조용히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는 자신의 소망을 슬며시 메시지처럼 들려주었다. 

“우리 손자녀들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참 고마운 일이에요. 나는 우리 증손주가 목회하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후손들이 목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저는 계속 기도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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