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이후 루터와 칼뱅 정통주의는 교리의 체계화가 필요했다. 이에 성경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성경계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그 결과 이야기가 없고 경직된 스콜라적 신학이 받아들여졌다. 이는 전 유럽을 휩쓴 종교전쟁으로 신뢰를 상실했다. 또한 과학혁명이 동반한 시대의 도전을 결코 무시할 수 없어, 당시 신학과 교회는 합리성을 반영하는 신학함으로 방향 선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신론의 출현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정통주의적인 신학함에 반발해 당시 교회와 사회를 갱신하기 위한 독일 경건주의가 등장하기도 했다. 경건주의는 교회문화 갱신을 포함한 신앙 각성운동이었다.
17세기 과학혁명은 개신교 성서해석 방법에도 영향을 끼쳤다. 방법의 변화였고, 사고의 전환이었다. 17세기 과학 기술의 혁명은 18~19세기 사상을 낳았고, 특히 독일관념론 전통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ㅋ신학은 전혀 새로운 옷을 입게 되었다. 성경을 보는 방식이 도그마 혹은 신앙 중심에서 이성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특히 신학을 문화형성을 위한 우선적인 동인으로 삼으려는 가장 강력한 운동이 독일 관념론의 영향 아래 등장했다.
특히 알버트 리츨은 신칸트학파의 영향을 받고 또 다위니즘의 사회진보적인 함의를 밝힌 스펜서의 사회적인 진화론을 수용해 윤리와 도덕의 완성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 사상을 전개했다. 리츨에게 와서 문화개신교주의는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는 윤리와 도덕의 완성을 통해 건설되는 하나님 나라 문화를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동시대인 덴마크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의 개념 철학으로부터 시작된 이런 보편적인 경향의 위험성을 개인을 중시하는 ‘실존’ 개념을 통해 경고해왔지만 무시되었다.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신학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신학자는 바르트다. 근대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적 자유주의에서 실존철학의 영향을 받은 변증법적 신학으로의 전환 역시 신학함의 방식에서 나타난 차이였다. 바르트는 신학 자체의 주제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면서 특히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행위에 관심을 기울였다. 결국 신과 인간, 하나님 나라와 세상, 복음과 율법 사이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신학자의 실존 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변증법적인 사고를 전개한 것이다.
이들의 방향 선회를 통해 신학의 성격과 주제는 새롭게 규정되었다. 신학이 문화이며 또한 문화 형성의 동인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일반문화와 일치할 수 없다. 기독교 신앙과 신학은 철저하게 종말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신학에 따르면, 문화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 나라는 당대 문화를 심판하시면서 도래하기 때문이다. 특히 당대의 신학과 문화에 강력하게 대항하여 ‘본질로 회귀하라’고 외쳤던 바르트 신학은 당대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기독교 문화, 하나님 말씀 중심의 문화, 기독론 중심의 문화 형성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