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15강) 초대교회를 정화시킨 하나님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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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5강) 초대교회를 정화시킨 하나님의 방법
  • 승인 2009.03.2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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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죽음




바나바와 아나니아/삽비라 부부 사건(행 4:32-5:11)은 누가신학의 견지에서 볼 때, 특별히 저자 누가가 복음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청지기 모델의 긍정적, 부정적 실례로서 제시되고 있다. 자신의 밭을 팔아 그 재산을 교회에 헌금한 바나바는 그 재물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용한 착한 청지기 모델인 반면에(행 4:35-36), 바나바와 같은 다른 성도들의 헌신에 자극을 받아 자신의 소유를 판 값을 전부 바치려다가 그만 일부 착복함으로써 저주를 받은 아나니아/삽비라 부부(행 5:1-11)는 그 재물을 잘못 사용한 악한 청지기 모델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복음에서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겠고, 또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서원한 삭개오가 긍정적 청지기 모델로(눅 19:1-10), 재물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영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심 중에 있었던 부자 관원이 부정적 청지기 모델로(눅 18:18-27) 묘사된 것과 유사하다.

이런 유사한 이야기들을 소개함으로써 누가는 그 공동체 성도 가운데 특히 영향력이 많은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을 경고하고 또 격려하여, 그 교회가 재산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를 이룬 초대교회를 닮아 살도록 격려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소유의 분배를 통하여 온 구성원들이 그 혜택을 누릴 때 가장 크게 유익을 얻는 이들은 바로 가난한 자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누가복음에서 주님이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실 때 우선적으로 표방했던 주제이기도 한 것으로(눅 4:18-19), 이런 견지에서 우리는 여기서 다시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통일성 및 연속성의 한 증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아나니아/삽비라 부부 사건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 오늘 21세기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볼 때 어쩌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사건일 것이다.


베드로는, 마치 행 13:8-11에 등장하는 바울처럼, 범죄한 죄인에게 저주를 즉각적으로 선언할 수 있을 만큼 초자연적 능력을 소유한 인물로 등장한다. 아울러 이 사건에서 성령님은 거의 마술적 방식으로 역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나니아/삽비라 부부는 회개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죽임을 당했고, 심지어 아내 삽비라는 남편의 죽음 소식도 모른 채 다시 저주를 받아 죽었다. 그 비현실성은 차치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볼 때 사실 매우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일부 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전설(legend)로 간주한다. 사건의 역사적 알맹이는 아나니아의 급작스런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삽비라의 죽음은 죄인들을 경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가적으로 꾸며진 이야기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사건은 우리와는 다른 시대 및 세계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애초에 전달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세계는 죄가 매우 심각하고 진지하게 다루어졌던 곳이었으며, 성령님을 거스르는 죄를 저지른 사람의 경우 그 사실이 발각되었을 때의 충격으로 즉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최소한 아나니아의 급작스런 죽음의 이유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아나니아에게 회개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은 그 죽음이 충격(shock)으로 인한 사망이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내 삽비라의 경우 베드로는 그녀에게 분명히 회개의 기회를 주었지만(행 5:8) 그녀의 실패로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삽비라는 남편의 죽음 및 매장을 모를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써, 첫째로 중동 지방의 뜨거운 열기로 말미암아 사후 즉시 매장이 이뤄졌을 것이다.

둘째로, 성령님을 거스른 신성모독과 같은 범죄의 경우 어떠한 예식이나 애곡의 절차 없이 바로 매장해 버렸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에서 범죄행위에 대한 매우 심각한 심판이 시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신약성경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전 5:1-11; 11:27-32, 약 5:14-16).

인간적으로 볼 때 부부가 같은 날 함께 저주 받아 죽은 이 사건은 매우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 막 출발한 초대교회에서 성령님을 속이는 죄악이 발생하였을 경우, 마치 누룩처럼 전 공동체에 퍼질 그 영향력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주님이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강력하게 처단하였을 것으로 판단된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제 초대교회는 정화되었고, 그 결과로 새로워진 교회는 더 많은 개종자로 말미암아 부흥하게 되었다는 것은(행 5:11, 14) 이런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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