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넷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상태바
3월 넷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5.03.20 10: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사현 목사/임마누엘교회
홍사현 목사/임마누엘교회

최후의 구별
마태복음 13:47~48
찬송: 245장

천국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이 세상의 여건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고, 비천하건 아니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결국’은 천국을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오늘 교회 안에도 천국에 갈 수 있는 성도가 있고, 천국에 못 가고 지옥으로 가게 될 성도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선과 악 모든 것이 같이 존재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구별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에 구별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씨뿌리는 비유에도 나와 있듯이 밭은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마음 밭이 어떠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중 가시떨기에 떨어진 자는,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에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세상 즐거움에 빠져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를 뜻합니다. 아마도 이 시대 90% 이상은 모두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천국의 가치를 안다면 우리는 이런 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결실할 수 있는 신앙인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인내로 완전히 귀한 열매를 맺을 때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천국을 바라보며 인내로 결실할 때까지 하나님게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천국의 가치를 아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탁균호 목사/미아교회
탁균호 목사/미아교회

목적도 방법도 바르게!
창세기 19:1~9
찬송: 88장

롯이 소돔에 거할 때 그곳에서 만연한 더러운 죄로 하나님은 멸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두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롯은 선지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두 천사를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여 대접하였는데, 그때 소돔에 있는 남성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두 남성을 내놓으라 하면서 “상관하리라”(5절)고 합니다. ‘상관하리라’는 히브리어로 ‘야다’인데, ‘경험을 통해 알아간다’는 뜻입니다. 남성들이 경험을 통해 알아가겠다는 것은 동성애를 위한 성적 노리개로 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끼리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영어로 ‘sodomy’라고 합니다. 소돔 사람들의 이러한 성적 문란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에 롯은 두 선지자를 보호하기 위해 두 딸을 대신하여 그들에게 내어줍니다. 선지자, 천사들을 보호하려는 순전한 목적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롯의 두 딸은 이미 남편과 가정이 있는 여인들이었습니다.

목적이 옳은 것이어도 방법은 옳지 않다면 절대 바른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없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류구원을 위한 목적을 가지신 예수님은 자기 희생, 낮아짐, 자기 죽음이라는 방법으로 그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한 목표를 위해 예수님의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더디고 힘들고 아프더라도 먼저 희생하고 먼저 섬기고 먼저 사랑하고 용서함으로 목적을 성취해가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님의 방법을 사용할 힘과 용기를 주소서.

 

구철헌 목사/하늘아래열방교회
구철헌 목사/하늘아래열방교회

기각당하신 예수님의 기도
히브리서 5:7~9 
찬송: 364장

예수님은 골고다의 십자가를 앞에 두고, 그 날카로운 창끝이 자신을 향하여 점점 다가올 때,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지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는 땀이 피가 되도록,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기각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의 기도마저도 또 기각 당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몸서리치는 절규의 비명을 지르시는데도, 하나님은 계속 침묵하셨습니다. 그 이후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아버지 내가 믿나이다”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로 마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기도까지 기각하셨지만,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시고 모든 만물의 으뜸이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지극히 높이시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구속사에 관하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인간적 이해를 넘어서고, 인간의 사고와 이성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에, 하나님의 주권에 나를 맡기고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순수하고 깊이가 있는 기도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순수하고 깊이 있는 기도를 배우게 하옵소서!

 

박근홍 목사/하늘시민교회
박근홍 목사/하늘시민교회

그리스도의 사랑
에베소서 3:18~19
찬송: 563장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넓고, 길고, 높고, 깊습니다. 이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깨닫게 될 때 그 사랑을 닮게 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사랑은 넓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만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도 다른 사람을 품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사랑은 깁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구원받고 변화되기를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십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알 때, 우리도 이웃에게 오래 참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사랑은 높습니다. 세상의 사랑은 “때문에”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는 사랑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그렇게 우리 주님은 높은 차원의 사랑을 하십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사랑은 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깊게 이해하심으로 사랑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깨달아 알고 닮게 하소서.

 

김준식 목사/하늘빛교회
김준식 목사/하늘빛교회

시험을 이기는 영적 비결
시편 73:1~28
찬송: 400장

오늘 본문은 ‘아삽의 시’입니다. 그의 마음에 어느 날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본문에서 아삽은 시험을 ‘미끄러진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아무리 뜨거운 신앙인이라도, 성령 충만한 능력의 일꾼이라도 때로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그도 몸을 지닌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삽은 미끄러질 뻔했지만, 완전히 미끄러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미끄러뜨리는 악한 자의 실체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악한 자가 누리는 인생의 형통과 건강, 재물 등이 지금 그들에게는 복이라고 생각되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들을 파멸로 이끄는 게 될 것이며, 의인들의 고난은 그것이 때로 우리에게 시험을 던져주는 요인이 될 수 있으나 결국에는 하나님의 큰 복을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선행 조건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악인의 결국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굴곡이 있다고 하여, 그것이 우리를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세워주십니다. 채워주십니다. 붙들어 주십니다.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성도들 모두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반드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절히 주사 좋은 열매를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인내하면서 28절 말씀처럼 하나님께 늘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시험을 이겨 승리하게 하옵소서.

 

이명옥 목사/은혜비전교회
이명옥 목사/은혜비전교회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갈라디아서 3:10~14
찬송: 202장

오늘 본문은 율법행위에 속한 자들은 모두 저주 아래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것임에도(롬 7:12), 왜 율법을 지켜 행하려는 자들이 저주아래에 있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율법의 행함이 어느 정도 의의 가치를 가지고는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은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의를 성취할 수 있는 길은,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길 뿐입니다.

물론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만 있다면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인정받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아담의 후손으로 죄성과 타락한 성품을 지녔기 때문에 누구도 완벽하게 율법을 지켜 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죄를 깨닫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율법이 없을 때에는 탐심이 죄가 되는지, 우상숭배가 죄가 되는지 잘 몰랐지만 율법이 주어짐으로 죄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예수님만을 의지하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은혜 안에 있는 우리는, 다시는 저주 아래 있지 않고 자유함을 얻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약속 가운데 거하시므로 예수님만을 의지하여 참된 자유를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은혜 안에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