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 현장에서는 성도들의 갈등과 다툼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부부싸움을 하거나, 소그룹 모임에서 다툼이 일어나거나, 사역현장에서 의견 차이로 싸우는 경우 등 다양하다. 교회의 화목을 위해 목회자가 중재하고 나서지만 대부분 자기주장만 옳다고 하고 중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위 자기 의(義)가 강한 사람들이다. 문제는 아무리 이야기를 하여도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너무나 답답하고 마음이 상한다는 점이다.
언어가 다를 때에는 알아듣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것만큼 답답한 것이 없다.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면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귀한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다. 크리스천이라면, 이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말이 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
첫째는 대화하는 사람과의 신뢰가 중요하다. 만일 나의 거짓된 말이 밝혀지면 상대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불신하게 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직한 신뢰를 쌓아야 한다.
둘째, 말의 태도가 중요하다.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되고 결국 말을 하지 않거나 형식적인 대화만 하게 될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셋째, 몸짓, 표정, 눈빛 등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소통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창세기 11장에는 하나님이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건축하던 노아의 후손들에게 건설하던 성읍과 탑을 보시려고 내려오셨다. 하나님께서 바라본 노아의 후손들은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다. 그들은 서로 소통하면서 벽돌을 굽고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여 바벨탑을 건설하면서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문명의 발전은 찬란하였으나 바벨탑을 건축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바벨탑을 건축하는 목적이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원하였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와 자녀들을 구원하신 후 그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고 하셨는데 땅에 충만하기 위해서 계속 자녀를 낳고 이동하여 모든 땅에 충만해야 하지만 시날 평지 드넓은 곳에서 만족함으로 흩어지지 말자고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이런 노아의 후손을 흩어 버리고자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소통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사람들의 말이 통하지 않는 소통 부재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말이 통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은 성령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세계 언어가 통했던 때는 오순절 성령강림 후 제자들이 방언할 때다. 세계 각지의 경건한 유대인들이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가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이 자신들이 살고있는 각 나라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워하였다. 이렇게 각기 다른 나라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도 소통이 가능해진 것은 성령이 임할 때였다.
그러므로 서로 말이 통하기 위해 일반적인 방법도 최선을 다해 사용하지만 해결이 어려울 때 특별한 방법인 성령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이 통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