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철조망을 따라 새겨진 '전쟁의 폐허' 살을 찢는 아픔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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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철조망을 따라 새겨진 '전쟁의 폐허' 살을 찢는 아픔 남겼다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2.06.2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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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현장 '철원' 기독교순례길에 나서다

▲ 사랑의교회와 쥬빌리구국기도회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2012DMZ 철원기도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무너진 철원 제일감리교회 터에서 진행된 통성기도의 한 장면.
무너진 북한 제단 회복을 위해 합심기도 필요한 때
김화, 양구, 고성으로 이어질 북한 향한 기도 순례 여정

62년이 흘렀다.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던 아픈 전쟁의 상처. 이제는 그 아픔을 기억하는 소녀의 머리에는 어느새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펜 대신 굳게 총을 쥐었던 소년병의 손도 지금은 노환으로 가볍게 떨리고 있다.

소녀의 하얀 머리가 마지막으로 곱게 빗겨지는 날, 그리고 소년병의 주름진 손의 떨림이 멈추는 날. 6월 25일의 그 아팠던 기억은 누가 간직할 것인가?

기온이 섭씨 19도에서 22도로 변해가는 초여름 아침.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소망관 앞, 사람들로 가득한 세 대의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분단된 한반도 속에 다시 남북으로 나누어진 강원도, 그 속에 있는 철원은 다시 분단된 도시로 불린다.

6.25의 기억을 품고 다가오는 통일한국을 위해 모인 DMZ철원기도회. 북녘땅을 바라보며 무너진 북한 교회 제단 회복을 위해 강원도로 향하는 세 번째 기도모임에 동참했다.

# 철원노동당사
▲ 무너진 철원노동당사 곳곳에는 아직도 포탄과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초여름 땡볕에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가벼운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쯤 도착한 철원노동당사. 6ㆍ25 이전 철원은 3.8선 이북 지역으로 북한의 통치를 받았다. 그래서 1946년까지 북한 강원도의 도청 소재지이기도 했던 철원에 있는 노동당사가 갖는 의미는 남달랐다.

철원은 지리학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에 있는 만큼 6ㆍ25전쟁 때 평강ㆍ김화와 함께 철의 삼각지대로 불린 격전지로 철저히 파괴된 도시 중 하나였다. 1946년 건립된 노동당사는 소련 기술자가 사회주의식 건물로 세운 곳으로 철근을 안 쓰고 시멘트와 벽돌로만 건설한 것이 특징이다.

건물 곳곳에는 포탄 자국과 총탄 자국이 남아 당시 철원이 격전지였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DMZ철원기도회의 첫 번째 기도는 한반도의 중심 철원에서 포탄으로 무너진 노동당사 터에서 시작됐다. 이후 발걸음을 옮긴 곳은 6ㆍ25 당시 폭격으로 지금은 입구 일부와 외벽 잔해만 남아 있는 철원 제일감리교회였다.

# 재건되는 제일감리교회

▲ 옛 철원제일감리교회 터 아래에는 현대식 철원제일감리교회 재건 사업이 한창이다.
철원노동당사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 도보로 이동한 30m 언덕 위에 위치한 옛 제일감리교회의 터 아래에는 현대식 철원제일감리교회 재건사업이 한창이었다.

북한교회연구원 유관지 목사는 “1902년 장로교 웰빈 목사가 이곳에 교회를 세웠지만 장로교ㆍ감리교 선교구역분할 협정에 따라 이후 남감리교 선교구역으로 편재되어 같은 땅에 두 개의 교회가 세워졌다가 사라지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37년 이기현 담임목사 주도로 보리스 선교사가 설계감독을 맡았던 이 건물은 1층 소예배실 2층 대예배실로 구성됐고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교회로 당시 신도 수만 5백 명에 가까웠다고 한다.

유 목사는 “폭격으로 철저히 파괴된 철원감리교회의 남은 교회 터를 바라보며 북녘땅에 수없이 퍼져있을 폐허가 된 교회를 생각하며 마음을 합쳐 그곳에 다시 회복 역사가 있길 기도하자”고 말하며 남은 곳곳의 교회 잔해에 손을 얹고 통성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6ㆍ25전쟁 당시 공산치하에서 이곳은 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청년들이 반공 투쟁을 벌이던 장소로 현재는 등록문화재 제23호로 지정돼 있다.

# 제2 땅굴

▲ 제2 땅굴 내부 전경.
재건되는 철원감리교회를 뒤로하고 다시 일행이 향한 곳은 제2땅굴. 땅굴로 향하는 길은 얼마 안 가서 민통선이 보였고 창문 밖으로 이어지는 풍경에는 인계철선 위 지뢰를 알리는 붉은색 역삼각형 표식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1973년 3월 19일 강원도 탄광촌 출신 병사의 청음능력으로 발견된 제2 땅굴은 3.5km 길이에 높이 2m, 폭 2.2m의 땅굴로 남쪽으로만 1.1km를 파고 내려오다 발견됐다. 함께한 인솔자는 당시 목표대로 땅굴이 완성됐을 경우 한 시간에 1만 6천여 명의 병력이 이동해 의정부까지 순식간에 밀렸을 거라는 군사전문가의 말을 전했다.

동굴 입구에서부터 밀려오는 서늘한 한기. 그 한기를 따라 동굴 내부는 약 500m 가량 이어졌다. 흐르는 물은 남에서 북으로 조용히 이어졌고 폭약 설치장소도 내려갈 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올라갈 때는 확인 할 수 있었다. 인솔자는 이 두 사항은 북한이 남한을 향해 땅굴을 파고 내려왔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안전모를 쓰고 내려가는 축축한 땅굴 안은 군데군데 이끼가 자라나 있었다. 땅굴 내부에는 안을 밝히기 위한 발전기를 설치한 공간과 자유의 종을 설치한 장소도 눈에 띄었다. 최전방 GP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약간의 긴장감이 묻어나는 그곳을 벗어나 다시 향한 곳은 철원평화 전망대였다.

# 철원평화 전망대

▲ 철원평화전망대 옆에는 십자탑과 필승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철원평화 전망대로 향하는 가파른 길을 따라 10여 분 오르면 성모 마리아상을 지나 평화전망대 바로 옆에 있는 필승교회와 최근 점등식이 취소됐던 십자탑을 만날 수 있다.

이 지역은 전쟁 당시 중부전선의 격전지 중 하나로 27만4천여 발의 폭탄이 투하되고 24차례나 주인이 바뀐 백마고지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이 땅에서만 1만여 명의 중공군과 3천400여 명의 아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1971년 6월 30일 완공된 필승교회는 건립 후 노후문제로 영락교회 군선교부, 제1ㆍ2여전도회에서 후원한 8천7백만 원으로 재건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철원평화전망대를 오르는 길에는 나무에 한가득 열린 오디를 만날 수 있다.
이날 기도회에 참가한 한 탈북민은 “북녘땅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프다”며 “몇 년 만에 처음 보는 그 땅에 사람도 별로 없고 펼쳐진 들판도 너무 조용해 그들을 위해 많이 기도했다”고 전했다. 그는 “통일이 되면 성경을 들고 고향 땅을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내려오는 길 교회 아래 위치한 부대 입구에는 탐스럽게 열린 오디를 하나씩 따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오디 한 줌을 손에 쥐고 이동한 다음 장소는 고 서기훈 목사가 잠들어 있는 장흥감리교회였다.

# 장흥감리교회

▲ 장흥감리교회가 있는 철원 지역은 당시 역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1ㆍ4 후퇴 이후 격전지였던 철원 땅. 장흥감리교회가 위치한 지역도 역사의 회오리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념으로 서로의 가족과 형제를 죽이던 시기 서 목사는 밀고 밀리던 이념의 틈바구니에서 피난 가지 않고 믿음을 지키다 공산군 정치보위부에 체포돼 1951년 1월 8일 인근 지역 암소고개에서 순교했다. 충혼비가 세워진 교회 뒤 언덕. 참가자들은 교회 뒤 철원평야가 펼쳐진 곳에서 통일을 향한 기도를 드렸다.

이날 예배를 인도한 오성훈 목사는 “북한을 위한 기도는 지나가는 한 번의 기도로는 통일에 이를 수 없다”며 “복음적 통일을 위한 북녘땅을 향한 기도는 단지 통일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새로움의 계기 찾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록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과 선교의 방법도 각자 틀리지만 하나님의 주권 아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 곳에서 우리는 하나 될 수 있다”고 말하며 기도회가 갖는 의미를 말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분단의 현장에서 연합 기도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50여년 전인 1962년 금강산 인근 월정리 DMZ 지역에서 복무했던 사랑의교회 하광용 집사는 “오늘 이곳을 찾으니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 찾아올 통일을 위해 준비된 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한다는 말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품는 모습이 필요하다”며 “통일 이후 이어질 남북간의 대화를 위해서라도 기도로 미리 준비하자”고 전했다.

한편 이번 행사를 주관한 쥬빌리통일구국회는 46개 북한선교단체와 교회들이 연합해 서울, 고양, 파주, 춘천, 대구, 부산지역과 제주까지 전국 10개 지역에서 남북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펼치고 있다. 3회 째를 맞이한 DMZ기도회는 이후 김화, 양구, 고성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 2012DMZ철원기도회에서는 제2 땅굴 방문을 통해 안보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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