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르포] “선교에 ‘실패’는 없다… 사도 바울 따라 ‘복음의 열정’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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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르포] “선교에 ‘실패’는 없다… 사도 바울 따라 ‘복음의 열정’ 회복”
  • 그리스=김수연 기자
  • 승인 2024.06.25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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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의 발자취 따른 ‘그리스·튀르키예 성지순례’ (상)

백석총회 제46회기 역점사업 ‘그리스·튀르키예 성지순례’
농어촌 및 도시 미자립 교회 목회자 70여명 은혜의 여정
아덴부터 고린도, 데살로니가, 네압볼리, 빌립보 등 방문

 

‘백석교단 농어촌·미자립 교회 성지순례’가 지난 10~18일 그리스·튀르키예에서 은혜로운 여정을 마쳤다.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히사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죄인 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오늘날 크리스천들에게는 당연한 이 진리가 2천년 전 사도 바울에게는 목숨을 걸고 전해야 했던 복음이었다. 스데반 순교 후 회심한 바울은 기독교를 향한 최악의 핍박자에서 최고의 전도자로 거듭났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씨를 뿌렸다.

이 가운데 바울의 사역이 가장 활발했던 그리스와 튀르키예 땅에 전국 농어촌교회 및 도시 미자립교회 목회자 70여명이 발을 디뎠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총회의 제46회기 역점사업으로 장장 5개월에 걸쳐 기획된 이번 성지순례는 지난 10일을 시작으로 18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현지에서는 책 <사도행전 선교 길라잡이>를 출간한 백석총회 부총회장 이규환 목사가 친절히 안내했다.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목회자들은 영적으로 큰 위로를 얻고 목회에 새 소망을 품었다. 폐허가 돼 버린 성경 유적들과 이슬람이 장악한 현실에는 눈물로 두 손을 모으기도 했다.

동행 취재를 위해 성지순례 길에 오른 기자는 바울의 흔적을 더듬는 과정에서 특별히 작은교회 목회자들의 사명과 함께 작금의 교회와 신앙인이 나아갈 길을 엿볼 수 있었다. 89일간의 은혜로운 여정을 세 편에 걸쳐 본지 지면에 옮긴다.


우상숭배의 땅 아덴
담대한 복음의 선포

지난 11일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성경 속 아덴에 입성한 백석 성지순례단. 일주일 남짓한 기간 그리스에서 튀르키예까지 지도상 5,000km 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만큼, 70여명의 목회자들은 공항에서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미리 대절한 버스 두 대에 나뉘어 몸을 실었다.

곧바로 첫 행선지 아레오바고 언덕으로 가는 길. 아테네 시가지에 접어들자 차창 밖으로 철학자 및 각종 신들의 동상이 펼쳐졌다. 그제야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서양 문화예술의 본거지 아테네에 온 실감이 났다.

사도 바울은 당시 로마까지 복음으로 정복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부푼 마음으로 아덴 땅을 밟았다. 그러나 온 도시에 사람보다 우상이 더 가득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모습에서 바울은 격분했다. 세상의 눈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아덴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이규환 목사는 바울은 아덴에 들어선 순간 숨이 막혔다. 심지어 아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한 단까지 만든 것을 보고, 실망을 넘어 거룩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바울은 유대인 회당과 장터에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격론을 펼치며 복음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이윽고 아레오바고 언덕에 도착했다. 해발 113m의 나지막한 바위 언덕을 오르자 저 멀리 위용을 뽐내는 파르테논 신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발아래는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아고라 광장이 드넓게 펼쳐졌다.

이곳에서 바울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던 아덴 사람들에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 예수의 부활을 증거했다. 그리고 참 하나님을 섬기라며 담대히 선포했다. 아레오바고 언덕 초입에는 사도 바울의 설교 전문이 새겨진 동판이 세워져 있다.

특히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자 뛰어난 지식인으로 에피쿠로스·스토아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놀랍게도 성경은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17:32~34)고 기록한다.

아레오바고 언덕에 올라 전도자의 소명을 되새겼다는 파주 두나미스교회 권정인 목사는 바울의 말을 듣고 몇 사람은 믿음의 열매를 맺었다는 점에서 선교에 실패란 없다고 생각했다선교는 씨를 뿌리는 작업까지 포함하는 것이므로 결코 낙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 농어촌 교회가 아덴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한 그는 아덴에서 우상숭배가 성행한 것처럼 전국 각 지방도 불교 영향권에 놓이거나 이단의 공격을 거세게 받고 있다. 그렇지만 스스로 작은 자를 선택한 바울을 좇아 목회 열정에 다시 불을 지폈다고 했다.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 우상숭배가 만연한 이곳에서 바울은 담대히 복음을 선포했다.

타락한 도시 고린도
성령의 능력에 의지

두 번째 목적지는 아덴에서 남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고린도였다. 지금은 고속도로를 타면 2시간이 채 안 걸리지만, 바울이 육로를 이용했다면 이 길을 2~3일은 족히 걸었을 것이다.

아덴에서 출발한 버스가 루뜨라끼 마을을 막 지나자 관광 명소로 꼽히는 고린도 운하에 이르렀다. 수면폭 24m 수심 8m를 자랑하는 고린도 운하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바울 시대 이 운하는 없었지만, 고린도가 번창한 항구 도시였음은 자명하다.

고린도 운하의 모습. 항구 도시이자 타락한 문화가 지배했던 도시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님께 의지해 사역했다.
고린도 운하의 모습. 항구 도시이자 타락한 문화가 지배했던 도시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님께 의지해 사역했다.

당시 수많은 상인이 이곳을 지났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형성됐다. 하지만 그 틈에 타락의 영이 끼어들었다. 오죽하면 고린도 사람처럼 행한다를 뜻하는 단어 코린티아조마이는 음란의 대명사로 사용될 정도였다.

고린도 운하에서 내륙으로 10km 더 들어가자 고린도 박물관이 나왔다. 우상숭배, 사치, 향락, 성적 부도덕 등 세상 문화가 극치에 달했던 고린도인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고린도 박물관 너머로는 고린도 유적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방에는 해발 575m의 돌산 아크포코린트산 정상에 솟은 아프로디테 신전이 보였다. 이 신전에서 약 1천명의 여사제들이 매춘을 행했다고 하니 고린도의 부패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둠의 땅 고린도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났다. 복음의 빛을 들고 들어간 바울은 이곳에서 16개월을 머물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라는 믿음의 동역자를 만났고 교회가 생겨났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아고라와 시장터도 둘러봤다. 갈리오가 총독으로 있을 때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신성모독죄로 고발해 재판이 이뤄진 곳에서는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해가 저물 무렵 백석의 목회자들은 고린도에서 빙 둘러 모여 뜨겁게 기도하며 그리스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이 자리에서 성령의 능력을 강조한 이규환 목사는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에서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 고백했다고 운을 뗐다.

그럼에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고난과 핍박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오직 성령에 의지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다. 죄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가 더 크다고 격려했다.

목회자들은 어느덧 돌덩이와 기둥만 남은 채 폐허가 돼 버린 고린도 땅에 서서 각자의 사명을 되새기며 간절히 중보했다

인천 광성장로교회 이성길 목사는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목양지에 성령의 불이 타오르길 간구했다특히 신앙의 전수가 되지 않아 황폐해진 고린도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중간 세대가 끊겨 믿음을 잇지 못한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고린도 박물관에서 백석총회 목회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이곳에서는 당시 문란했던 고린도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고린도 박물관에서 백석총회 목회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이곳에서는 당시 문란했던 고린도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영적으로 타락한 도시 고린도에서 성령에 의지해 사역한 바울을 묵상하며, 백석총회 목회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br>
영적으로 타락한 도시 고린도에서 성령에 의지해 사역한 바울을 묵상하며, 백석총회 목회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핍박
전도자의 사명 지켜

그리스의 둘째 날 당도한 곳은 메테오라 수도원이었다.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이란 의미답게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에 우뚝 솟은 수도원은 거대한 암석들에 둘러싸여 보는 이를 압도했다. 한때 23개에 이른 수도원은 불안정한 지반으로 18세기 말 대부분 무너지고 현재는 6곳만 남았다.

백석 성지순례단은 이 중 성 스데판 수도원을 찾았다. 내부에는 스데반의 순교 장면이 벽화로 장식됐다. 이곳에서 누군가는 예루살렘에 갇힌 복음이 땅끝으로 확산하게 만든 스데반의 순교를 묵상했고, 또 누군가는 세속과의 단절을 자처한 수도사들의 거룩한 영성을 떠올렸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메테오라 수도원’의 모습.

셋째 날에는 데살로니가에 들렀다. 백석 성지순례단은 아름다운 건축적 가치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데살로니가 디미트리우스 교회를 방문해 풍부한 신앙의 유산을 관람했다. , 알렉산드로스 동상이 세워진 광장에선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무엇보다 바울이 활약했을 데살로니가 광장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고 전도지를 옮겨야 했던 바울. 데살로니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후 베뢰아로 떠나야 했다. 이규환 목사는 하나님은 그럼에도 바울의 생명을 지켜주셨다. 그에게는 사명이 남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목회자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들을 만나 하나님의 때에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목회자들을 권면했다.

바울이 활발히 사역을 했을 데살로니가 광장.
바울이 활발히 사역을 펼쳤을 데살로니가 광장.

세속적인 땅 빌립보
주께로 돌아온 영혼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에서 수리아 안디옥을 기점으로 드로아, 네압볼리,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덴, 고린도 순으로 걸음을 옮겼다. 반면, 백석 성지순례단의 일정은 반대로 진행됐다. 데살로니가를 떠난 목회자들은 서둘러 네압볼리와 빌립보로 이동했다.

현지 날씨는 연일 섭씨 40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하지만 목회자들은 육체의 가시를 지니고도 더 험난한 길을 걸었을 바울을 떠올리며 거룩한 마음으로 임했다.

현재 까발라란 지명으로 대체된 네압볼리는 사도 바울이 유럽 대륙에 선교의 첫 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뜻깊은 곳이다. 바울은 서기 49년경 배를 타고 드로아를 떠나 사모드라게 섬을 통해 지리적으로 유럽 대륙에 속한 네압볼리에 처음 도착했다.

네압볼리 해안에서 구도시로 이어지는 길목을 따라 올라가자 사도 바울 도착 기념교회가 목회자들을 맞이했다. 교회 외관에 조성된 모자이크 벽화에는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에 도착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성령에 순종했던 바울을 조명한 이규환 목사는 네압볼리 이후 지금의 유럽에 신앙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2천년 동안 유럽은 기독교의 세계화를 견인하는 선교 대륙이 됐다전도와 선교는 결국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강조했다.

네압볼리에 위치한 사도 바울 도착 기념교회에는 바울의 ‘마게도냐 환상’ 내용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백석 성지순례단은 계속해서 바울의 행적을 좇아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로 향했다. 차를 타고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먼저 루디아 기념교회가 우리 일행을 반겼다.

성경 속 루디아란 여인은 빌립보 교회의 시초를 다진 귀한 인물이다.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녀는 강기테스 강가에서 바울을 만나 세례를 받았다. 이후 자기 집을 예배 처소로 내어주고 헌금하며, 물심양면으로 바울의 사역을 지원해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주춧돌이 됐다.

목회자들은 자유롭게 루디아 기념교회를 둘러봤다. 내부는 바울과 루디아의 모습이 성화와 스테인글라스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문밖에는 루디아가 세례를 받았던 침례터가 자리해 맑은 개울 물이 흘렀다.

이규환 목사는 하나님은 루디아의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셨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루디아는 사도 바울의 일행을 자기 집에 들어와 유하게 했다. 이는 빌립보 교회의 시작이라며 이처럼 많은 초대교회는 헌신 된 자들의 집, 가정교회서 비롯됐다고 부연했다.

빌립보에 위치한 루디아 기념교회 전경.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 여인처럼 헌신 된 자들의 가정에서 비롯됐따.
빌립보에 위치한 루디아 기념교회 전경.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 여인처럼 헌신 된 자들의 가정에서 비롯됐따.

루디아 기념교회에서 몇 분을 더 갔을까. 한눈에 담기도 어려운 거대한 규모의 빌립보 유적지를 마주했다. 작은 로마로 불리던 빌립보에는 법정, 관청, 아고라, 목욕탕이 있었다. 발굴된 유적지만 가로세로 1km 이상이라니, 이곳이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짐작이 갔다.

광활한 평야에 위치한 빌립보는 필리피 전투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넉넉한 일조량으로 각종 채소와 곡식이 잘 자랐을 것 같은 이 땅은 비옥하고 풍요로워 누구나 탐낸 곳이었다. 이런 빌립보에서 믿는 자들은 바울의 선교 사업을 재정적으로 열심히 돕기도 했다.

백석 성지순례단은 특별히 바울과 실라와 갇혔던 감옥에서 합심기도를 드렸다. 목회자들은 고통 중에도 기쁨과 감사로 찬양한 바울과 실라의 믿음, 그리고 간수와 그 가족까지 구원받는 기적을 되새기며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다.

목회자들의 입술에서는 감동의 고백이 쏟아졌다. 인천 온땅의빛성문교회 서정회 목사는 세속적인 도시 빌립보에서도 예비 된 영혼들이 있었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온 사실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가끔 목회 현장에서 내가 기대한 만큼 당장 열매를 거두지 못해 좌절하고 낙망했지만 씨를 뿌리는 일만으로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앞으로 소망을 품고 주의 일에 힘쓰는 종이 되고 싶다고 했다.

주사랑엠마오교회 손성숙 목사는 성지순례는 꿈도 못 꿨는데, 생생한 선교의 역사가 깃든 그리스 땅을 이제라도 밟게 돼 감격스럽다그동안 나는 성경 속 역사를 보지 못하고도 믿었던 복된 자였음을 알게 됐다. 바울의 행적을 좇으면서 울고 웃었던 시간이 목회의 큰 동력이 될 것 같다고 은혜를 나누었다.

빌립보에서 백석총회 목회자들이 뜨겁게 기도하고 있다.
빌립보에서 백석총회 목회자들이 뜨겁게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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