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지금이 오히려 복음의 기회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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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지금이 오히려 복음의 기회의 땅”
  • 이석훈 기자
  • 승인 2015.08.19 16:0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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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교를 향해 뛴다 / 북인도 이정태 선교사

사랑으로 기르는 '양육형' 선교 필요

 

▲ 인도선교 10년째를 맞고 있는 이정태 선교사와 이주현 사모, 아들 이욱규 군.(오른쪽부터)

“인도 선교는 더 이상 닫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이 복음의 기회라고 여깁니다. 지금까지의 물질들고 가는 선교가 아니라 사람을 길러내는 양육형 선교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10년째 북인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정태(이주현) 선교사가 향후 인도선교의 방향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이 선교사가 파송될 당시인 2006년도에 인도의 기독교는 대부분 교회성장이 멈춘 시기였다. 인도인들 스스로 교회를 운영하고 사명을 감당해 나가기 보다는 타성에 젖은 선교사들 즉 외부의 도움을 기대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기에 400년의 기독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교회건물들이 매각되는 상황으로 나간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인도 교회들이 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데 있다는 것. 즉 제자양육도 못하고 외부 원조 받는 일에만 급급한 결과 젊은층이 사라지고 노인들만 교회를 지키고 있었고 선교사들의 도움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 선교사는 이같은 상황을 살아가기에 급급한 링겔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라고 비유했다.

델리에서 사역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북쪽 오지인 데라둔으로 사역지를 옮기고 현지인 지도자 양성에 주력하고 있는 이 선교사는 “선교는 선교사가 하는게 아니라 길러진 현지인들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2000년도 외국인근로자선교회를 설립하고 2005년 인도 근로자들을 따라서 인도에 다녀온 이 선교사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신앙생활하던 인도 친구들이 인도에 귀국하고는 신앙생활을 안하고 있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 인도에서 물의 오염으로 패혈증(사망률 45%)을 선고받아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병을 치유해 주시면 인도인들을 좇아 들어가서 신앙정착을 할 수 있도록 헌신하겠습니다.”

▲ 이정태 선교사가 현지 사역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교사를 사용하시기 위해 치유해 주셨고, 2006년도 목사안수를 받은 해 12월 인도땅을 다시 찾았다. 한국의 외국인근로자선교회에서 만났던 인도 친구들을 인도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인도 친구들은 이 선교사를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그들의 생활을 목격하면서 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지역에 교회가 없었으며, 스스로 신앙생활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인도의 국교인 힌두교인이었으며, 가족공동체로 살아가기에 기독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아야 하는 힘든 상황인 것이었다.

처음 인도땅을 밟은 이 선교사는 한국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친구들 3-4명을 불러모아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 2007년도 ‘희망의빛교회’가 설립된 계기다.

문제는 귀국 근로자를 교회 리더로 세우려 했지만 막상 그들을 복음 전도자로 또는 목회자로 세우기는 어렵다는 현실에 부딪혔다. 리더자로는 세울 수 있었지만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로 세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세운 것이 ‘자국민 선교훈련원’이었다. 1년 동안 함께 합숙훈련을 하면서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한 후 7명이 훈련을 마치고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 파송을 받아 본격적인 복음전파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비록 건물이 없을지라도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었던 힘은 리더십이 있었던 근로자들을 훈련시켜 보냈기에 현지인들이 낯선 외부인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향사람들이 전하는 복음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이어온 선교훈련원이 7기까지 오면서 35명이 훈련을 마쳐 북쪽에서 남쪽까지 퍼져 사역을 잘 해나가고 있다. 이 선교사는 이들을 관리하고 재훈련 시키는 것이 현재 큰 사역 중 하나가 됐다.

자국민 선교훈련원은 목회자를 만들기 위한 훈련 외에도 스텝들을 만드는 훈련도 진행하고 있다. 즉, 인도에 많은 자원들을 끌어다가 재배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스텝의 역할이다.

스텝훈련은 큰 교회를 찾아가서 선교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공문서를 작성하는 등 필요한 자원과 달란트를 교류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감당하도록 사역한다.

▲ 인도 현지교회의 예배 모습.

복음전도자들 역시 자신들이 갖고 있는 달란트(축구, 음악, 미술 등)를 활용하여 현지인들을 복음화시키는 일에 힘쓰고 있다. 단 한가지 외국사람들의 원조로는 안된다고 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따라서 훈련받은 사역자들은 인도의 큰 교회들에 직접 기도편지를 써서 자신들의 사역과 비전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원을 끌어내고 협력을 요청하고 있으며, 축구팀의 경우 기업들을 찾아가 후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정태 선교사의 사역은 안식년(2010년) 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안식년 전까지의 사역은 주로 건물을 세우는 선교사역이었으며, 안식년 이후 갑작스럽게 선교비가 끊기면서 사역자들을 키우고 관리하는 사역으로 바뀌었다.

선교비가 끊기고는 8개월을 슬럼가에서 생활해야 했던 이 선교사는 수도 델리에서 8시간 북쪽으로 가야하는 데라둔 산악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가 했던 기도를 이 선교사 부부는 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떠났으며, 이왕 죽을거라면 힌두교 사제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죽자는 생각이었다.

다만, 그동안 길러놓은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 주변에서조차 힘들게 사역하는 이 선교사를 보고 “과연 당신이 하나님이 선교사로 택하신 사람인가?”라는 소리를 한 것이 또 하나의 충격이었지만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게 않게 하셨다.

오히려 힘을 내어 산 속에 있는 힌두교 사제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인도에서 힌두 사제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복음전파를 위해 히말라야 1500킬로미터 산악지역을 다니겠다고 날짜를 정하고 선포했지만 막상 기름값이 없어 날짜를 넘겨야 했다. “하나님 진정 저를 버리셨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떼를 쓰다시피 있을 때 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또렷이 듣게 됐다.

꿈 속에서 아내와 함께 아주 불쌍한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조롱거리듯 웃고 있었지만 큰 음성이 들렸다. “저 부부를 위해 우는 자를 축복할 것이며, 조롱하는 자는 심판할 것이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크게 들리는 바람에 잠에서 깬 이 선교사는 아내의 담요와는 달리 자신의 담요에만 서리가 하얗게 내린 것을 보고는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임을 깨닫게 됐다.

▲ 이정태 선교사(가운데)와 현지 성도들.

혹여라도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 중에 조롱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기도편지를 써서 이메일로 보냈다. “저의 사역을 오직 믿음의 눈으로 보십시오” 하면서 꿈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적은 것이다. 놀랍게도 다음날 150만원이라고하는 큰 선교비가 들어와 선포했던 산악지역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500미터 지점에 올라갔을 때 첫 힌두 사제를 만났다. 사제를 접하는 순간 무서움이 몰려와 자신도 모르게 피하게 됐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10미터 정도를 갔을까 심장이 너무 뛰어서 도저히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고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가 사제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얼마나 피곤하십니까” 사탕을 건네면서 “이것 먹고 가면 피곤이 사라질 것입니다” 말하자 사제는 잠시 앉으라고 하기에 기회다 싶어서 “선생님 그런데 왜 이렇게 하루에 40킬로미터를 다니고 계십니까?” 질문했다.

사제는 “한평생 진리를 찾으러 다니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 선교사는 확신을 갖고 다시 이야기 했다. “저는 진리(요8:32)를 찾았습니다. 제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딱 한 권밖에 없는 이 책을 선생께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신약성경을 전달했다.

가장 소중하고 한권뿐인 책을 선물한다는 소리에 사제는 책을 받아들고는 기뻐하며 정중히 인사했다. 덧붙여 전하기를 “선생님,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하며 읽어야 진리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에 못 깨달아도 한 번 더 읽으면 분명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사제들에게 전해진 성경책이 어느새 만권을 넘긴 것이다. 지금도 두 달에 한 번씩은 이들을 찾아가 성경책을 전하고 있다.

이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은 현지 지도자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사역이 없는 날은 세워진 교회들을 찾아가서 사경회를 통해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까지 16개 교회를 세웠으며, 이 중 건물이 있는 곳은 4개이고 나머지는 가정집을 임대받아 교회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 16개 교회가 모두 장로교단에 가입해 활동하도록 행정적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감사한 것은, 교단 목사를 양성하는 데라둔 소재 장로교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어로 수업이 가능해야 했지만, 이 선교사가 신학교 학장을 만나 현지어로 수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아도 공부할 수 있는 신학교와 MOU를 체결할 수 있도록 허락받아 델리에서 분교형식으로 문을 열었으며, 오는 9월 15일 2년반의 마지막 과정을 마치고 11월 15명이 영광스런 졸업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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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강 2015-09-04 13:22:36
이정태선교사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죠

송태식 2015-08-23 01:37:24
언젠가 소개되었으면 하는 분이었는데 이분의 선교전략이 남다르기 때문이죠.

김주대 2015-08-20 14:41:57
존경하는 선교사님이 소개되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자주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