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다섯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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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다섯째 주 하늘 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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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7.0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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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 목사/해뜨는교회
김창기 목사/해뜨는교회

봉사의 자세

에베소서 4:12
찬송: 595장

식당에서는 음식 맛이 제일 중요하지만, 맛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면 종업원들의 표정과 태도일 것입니다. 때로는 종업원들이 불친절해서 그 식당을 찾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하는 이들의 표정과 태도가 교회 부흥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봉사해야 할까요? 오늘은 집사라는 단어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집사라는 말은 ‘디아코노스’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이 만들어지기 전 1세기 당시에 사용되고 있었던 말인데, 당시에는 흙으로 된 주방에서 일하는 잔칫집 주방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좀 더 살펴보면  ‘디아코노스’는 세 가지 단어가 합해진 디아-콘-오스의 합성어입니다. 디아는 원래 ‘~통하여’라는 말이지만 집사라는 말에 사용될 때는 ‘왔다 갔다 하다’라는 뜻이며, 콘이라는 말은 ‘먼지, 지저분한 곳, 진흙탕’이라는 뜻입니다. 오스는 ‘일꾼, 사역자’라는 뜻입니다. 종합해 보면 집사는 주방에서 연기, 기름, 흙이 있는 곳에서 왔다 갔다하며 밝은 표정으로 봉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일꾼들이 봉사할 때는 잔칫집에 온 손님들을 대접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흙먼지가 있는 곳에서도 밝은 얼굴로 왔다 갔다 하며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봉사는 마음도 중요하고 태도도 중요합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섬김의 기쁨을 주셔서 밝은 모습으로 모든 이들을 대하게 하소서!

 

박현욱 목사/창대교회
박현욱 목사/창대교회

선하고 아름다운 일, 연합과 동거

시편 133:1~3
찬송: 220장

사람과 사람이 연합하는 것은 대의적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같은 부모에게 태어나서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형제와 자매들도 연합과 동거는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일이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공동번역’은 다윗의 감정을 아주 잘 살려서 번역합니다.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 다윗이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마치 다윗은 부모의 위치에서 이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다윗은 두 가지 비유를 통하여 형제의 연합과 동거가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형제간에 연합하고 동거하는 것이 마치 제사장 아론의 머리에 부어진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수염을 지나 세마포 옷깃에 흘러내리는 모습 같다고 말합니다. 또한 형제간에 연합하고 동거하는 것이 헐몬산의 아침 이슬이 한 방울 한 방울 모여서 강을 이루고, 그 강이 흘러서 시온산에 수분을 공급하는 모습 같다고 말합니다.
영적 부모로서 우리 하나님의 마음도 교회와 교회가 연합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성도와 성도가 동거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주님의 자녀로서 주님 안에서 우리가 더욱 연합하고 동거하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대한민국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연합하고 동거하게 하옵소서.

 

황빈 목사/강성교회
황빈 목사/강성교회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사무엘상 17:1~27
찬송: 357장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엘라 골짜기에서 군사적 대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키가 3미터에 육박하는 거인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큰 소리로 모욕적인 말들을 뱉으며 싸움을 걸어오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려워 떨 뿐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을 전혀 다르게 파악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형들에게 먹을 것을 전달하려 이곳에 와 있던 소년 다윗입니다. 그는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일이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이라 확신했습니다(26).
똑같은 상황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소리를 듣고 있고, 모두가 똑같은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렌즈를 통해 상황을 바라보았습니다(26). 다윗이 믿음의 눈으로 골리앗을 보니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도 우리만의 ‘골리앗’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인생의 ‘골리앗’은 우리 홀로 맞서 싸우기에는 너무 크고 강력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가졌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봅시다. 믿음의 눈으로 우리 앞에 놓인 역경과 장애물을 다시 들여다보면, 우리 삶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능히 세상과 맞서 싸워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인생의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 떨지 않고,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신성훈 목사/신일교회
신성훈 목사/신일교회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

고린도후서 1:3~11
찬송: 491장

고난 속엔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이나 아픔 중에 정화되고 커지고 넓어지는 성숙과 성장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께 위로를 받고, 그 받는 위로로써 남을 위로하게 되는 것이니 오늘의 고난은 내일 남에게 위로를 나누어 그것을 증폭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고난이 갖는 또 다른 가치는 견딤의 능력을 배양케 하는 데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위로가 경험되고 그 위로를 통해 견딤의 능력이 배양됩니다.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우리가 받는 것과 같은 고난을 인내하는 가운데 역사하는 그 위로를 위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위로는 우리가 인내하는 가운데 역사합니다. 인내를 끝까지 이루면 위로의 역사도 완전하게 나타납니다.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약 5:11) 이런 인내력을 갖춘다는 것 자체가 능력입니다. 고난과 위로는 인내력을 배양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 믿음 자체를 순전하고 참되게 만듭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심한 고생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 가운데 생명력으로 가득 찬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뢰하는 믿음을 얻게 되었노라고 합니다. 이런 믿음은 고난 속에서 다듬어지는 보석 같고 정금과 같은 믿음입니다.

•오늘의 기도
고난 가운데 우리 안에 두 주인 섬기는 것이 정리되고 자랑거리나 교만함도 정리되게 하옵소서.

 

김영수 목사/소풍교회
김영수 목사/소풍교회

나의 눈에 들보가 있으니

누가복음 6:39~45
찬송: 420장

오늘 본문 41절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중  다른 사람의 모습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고 훈계하려고 하고 고치려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모습은 살피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자신의 모습도 크게 다를 바가 없거나 혹은 더 좋지 않은데 다른 사람에게 참견을 하는 모습은 외식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신앙의 공동체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고치려 하기보다는, 늘 나 자신을 먼저 살펴서 하나님 앞에서 늘 부족함을 고백하며, 오히려 더 낮은 자리에서 섬기며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4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내 자신을 향하여 나는 믿음이 좋고 선한 사람이라 여기고, 다른 사람을 향하여서는 믿음이 약하고 악한 사람이라 여겨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나는 믿음이 여전히 연약하고 마음에 악함이 가득하니 성령님이 임재하셔서 날마다 다스려 주셔야 함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자신을 향하여는 아주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헤아리고 다른 사람을 향하여는 늘 용납하고 이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앞에서 늘 내 눈의 들보를 보게 하소서.

 

피은혜 목사/새창원은혜교회
피은혜 목사/새창원은혜교회

주를 의지합니다

시편 56:1~13
찬송: 86장

인생이 참 미련하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것, 내가 경험한 것이 마치 전부인 듯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다윗의 삶도 결코 평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겨 광야를 유리해야만 했고, 아비멜렉 앞에서 자기 목숨을 위하여 미친 척하기도 했습니다. 본문 말씀에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고 사람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기도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렵지 않고, 또 사람이 내게 어찌하겠느냐고 담대히 고백합니다.
얼마 전 산상기도를 위해 산에 오르는데 그 길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올라가니 비교적 수월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회개하게 되었습니다.‘내가 하나님을 이 나뭇가지만큼도 믿어 드리지 못했구나’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높은 산을 오를 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는 기도하는 자입니다. 기도는 그분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께 맡기고, 기다릴 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분께 의지하고 맡길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고 내 믿음을 보증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믿음의 보증을 받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만 나의 온전한 의지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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