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96)
마태복음 24;6-15>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나는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 외에는 어떤 SNS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지인들이 수없이 여러 정보들을 보내온다. 대부분 ‘펌글’ ‘펌싸이트’이다. 내용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종말, 이 나라의 정치적 향방, 교회의 역할과 참 목회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거의 유튜브 영상이다. 즉, 개인 방송이다.
그런데 문제는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 색깔이다. ‘내가 보내는 것은 사실이고, 진실이다. 그러니 이것을 보고 당신도 동의해야 내 편이고, 옳은 사람이다. 만약 내가 보낸 영상에 대해 동조하지 않으면 당신은 내 편이 아니고, 반그리스도인 것이다.’ 라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러한 것을 감지 못하고 내게 유튜브 영상을 보내는 어느 사람에게 ‘이것은 바른 생각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담긴 답장을 보냈는데 지금까지 그 사람은 나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즈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집에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사람들의 ‘퍼 나르기’ 작업은 더 심해졌다. “이것을 보세요. 이제 곧 종말입니다.” “이것 좀 보세요. 우리나라가 위험합니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겁니다.” “이걸 보면 OO교회가 어떠한지, *** 목사가 어떠한지 명백히 알게 됩니다.”
며칠 전에도 같은 교회 A집사가 연달아 3종류의 유튜브 주소를 보냈다. 할 수 없이 하나하나 열어서 제목과 앞부분만 잠깐 보고는 답장을 했다. 과거의 경험이 있기에 나는 그 분과 관계가 끊어질 것을 각오하고, 그러나 최대한 부드럽게 답장했다. 아예 나는 이 답장을 스마트폰에 저장해서 나에게 온갖 정보(?)를 보내오는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보내기 시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게 보내는 사람들의 심리는 대부분 불안과 두려움, 심지어는 공포까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보내주신 말씀대로 정말 위험하고 무서운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읽고 묵상하는 시간과 기도의 자리를 찾아가는 게 더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기 위해서요. 예수님이시라면 이러한 때에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 해답은 예수님이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살피면 될 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를 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런 다음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1- 제자들과 식사를 하고 - 이제껏 하던 대로 일상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러나 힘든 때이니 더 열심히, 더 충성되게 살아갈 것.
2-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 이웃을 사랑하여 구체적인 적용으로 이웃을 섬기기. 그러나 힘든 때이니 더욱 적극적으로 이웃을 살피고 뜨겁게 사랑하기.
3- 땀이 피가 되도록 구원을 위해 기도하시고 - 그동안 성전 뜰만 밟은 것과 다름없는 신앙 삶을 회개하고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기.
- 물론 나의 생각입니다. 살아가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사실, 이렇게 어려울 때에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불평과 불안을 기도와 사랑으로 이겨냅시다.”
나는 이렇게 문자 메시지로 답장하고 있다. 너무 길게 하거나, 어쭙잖은 세상지식과 말씀해설을 덧붙이는 것은 상대방이 자칫 마음 상할 수 있기에 이런 정도로만 답장을 하니, 아직은 기분 나쁘다는 반응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예수님은 이미 마태복음 24장에서 시대의 혼란을 다 말씀하셨다. 그러니 놀랄 것도 없다. 놀랄 사람은 초대교회의 잡히는 순간 죽음의 형장으로 끌려가는 성도들이 아닌가! 오히려 두렵고 불평해야 하는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가족과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숨어 다니며 말 그대로 거지처럼 살다가 가족을 남겨둔 채 순교당한 제자들이 아닌가!
예수님은 2번이나 ‘많은 사람들이’ ‘미워하고, 사랑이 식어진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난리와 난리의 고통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을 더 걱정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지진이 나도 사랑하고, 역병이 돌아도 사랑하고, 전쟁의 소문이 들려도 사랑하고, 가뭄 속에서도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동안 하지 못한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을 마음껏 실천할 수 있는 반전의 시간들로 만드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저력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