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 떨면서도 인간을 자랑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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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 떨면서도 인간을 자랑하는 세상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7.12.20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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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㉝
▲ Jairus_Daughter_1878_Max

*민수기19:11-13>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중략)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누가복음8:49-55>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그 집에 이르러… (중략)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나는 참으로 다양한 계층을 강연장에서 만나는데 이번에는 대단히 특별한 사람들(그룹)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은 어느 도서관을 통해 두 가지 요청을 했다. 첫째, 우리는 모임을 만든 뒤 늘 술 마시고 노는 걸로 망년회를 했는데, 이번에는 도서관에서 보내고 싶으니 강연장을 무상으로 빌려 달라. 또 하나는 우리가 작가의 강연비를 낼 터이니 정말 좋은 작가 한 분을 소개해 달라.

여기까지 들으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그룹의 정체(?)였다. 그들은 장례업자 종사자들이었다. 무덤을 파고, 화장을 하는 등 장례절차 중에서도 가장 막일이라 할 수 있고, 마지막 단계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도서관 측은 고민했다고 한다. 어느 작가가 이들의 마음을 정말 알아주며 눈높이에 맞추어 강연을 해줄까? 평생 작가 강연을 한번도 안 들어본 사람들인데… 더구나 그 모임의 총무는 ‘우리는 기가 센 사람들이다. 우리는 대가 세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라는 말을 무슨 연유인지 수없이 했다고 한다.

결국 도서관은 무슨 판단을 했는지 나에게 부탁을 했고, 나는 기도하고 흔쾌히 강연장으로 갔다. 그런데 막상 강연장으로 들어가게 되자 마치 영적전쟁터로 나아가는 기분에 엄숙함마저 들었다. 여자나 기독인은 거의 없고, 기가 어마어마하게 센 사람들 40여 명이 모여 있는 곳, 문학에 아예 관심도 없는 사람들. 날마다 죽음과 마주하는 사람들. 온갖 형태의 시신을 다루는 그들과 40대 1의 심리적,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러나 주님 도우심으로 강연이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굳은 얼굴과 의심의 눈동자는 점점 아이들처럼 풀어지며. 강연을 마쳤을 때는 ‘선생님의 책을 읽고 싶은데 추천해주세요.’ ‘또 어디서 강연하시나요? 더 듣고 싶습니다!’라며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의 망년회기념으로 만든 수건이 든 작은 상자 두 개를 주었다.   

그들과 정말 다정한 인사를 나눈 뒤, 나는 도서관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중간에서 이 일을 위해 수고해준 사서에게 수건이 든 상자를 건넸다. 순간, 사서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안 가질래요. 좀 그렇네요, 호호호…”

나는 아무 내색하지 않았지만 많이 놀랐다. 그 사서는 30대의 두 아이 엄마다. 도서관에서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에 주력하는 탓에 국내 최고의 인문학자나 교수, 작가들과의 친분도 대단하다. 정치 문제에도 공무원답지 않은 강경발언을 서슴치 않으며, 비정규 직원들의 처우개선 문제에도 온갖 공격을 받아가며 앞장 선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인문학 공부를 더 한다고 했는데… 하지만 장례업에 종사한다는 사람들이 기념 선물로 만든 수건 한 장 앞에서 겁먹은 표정을 짓고, 나에게 대놓고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니! 그러면서도 내일 열릴 인문학 강좌를 위해 온 열정을 바치는 인문학 신도(?)로 살아가다니! 이건 단순히 당근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기호의 문제가 아니다. 

쓴 웃음이 나왔다. 

죽음도 이기지- 아니 이건 너무 강한 표현이리라.- 죽음을 이리도 두려워하는  인문학이라니! 비단 이 사서만이 아닐 것이다. 말로는 인본주의의 사상을 고상하게 펼치면서 죽음은커녕, 성적, 물적 유혹을 이기기는커녕 노예처럼 그 안에서 허덕이거나 끌려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런데 감히 죽음 앞에서는 오죽하랴! 마치 율법에 갇혀 사는 바리새인들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저주의 시체를 눈 앞에서 마주하신다. 손을 만져주시고, 일어나라고 말씀도 해주신다. 죽음을 다스리는 예수님의 권세와 함께 진리로 인하여 자유하게 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함께 기도 

하나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도 죽고 살아남을 거쳤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의 그림자들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거나, 그것들의 노예처럼 비굴하게 살지 않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정말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고맙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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