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CCM 앨범에 국내 최고 뮤지션 동역…“내가 만난 하나님 전하고파”
음반시장의 침체가 CCM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송정미, 소향에 이어 이렇다 할 여자 뮤지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힘이 넘치는 가창력과 완성도 높은 창작곡으로 무장한 새로운 음반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재영 1집 ‘뷰티풀 갓(Beautiful GOD)'.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90년대 초반 가요계의 디바로 떠올랐던 가수 이재영이 데뷔 20년 만에 CCM 음반으로 대중들을 찾아왔다. 단순히 기독교 쪽으로 장르를 바꾼 것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쉽게 음반을 준비하지도 못했다.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투자됐다.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음악으로 그녀는 곡 하나 하나를 준비했다. 그 결실이 ‘뷰티풀 갓’으로 맺어진 것이다.
지난 12월 23일 기자들과 만난 이재영 씨는 찬양의 경험을 ‘두려움’으로 표현했다. 그냥 노래하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는 것이 다르다고 했다. 두렵지만 감사하고, 두렵지만 기쁨이 넘치는 것이 찬양이라고 했다. 그 마음을 이야기처럼 담아낸 음반이 ‘뷰티풀 갓’이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죄인인 내 죄를 사해주신 것이 정말 큰 충격이었어요. 하나님이란 분은 살아계시구나. 부족하고 못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구나… 그 생각에 이르니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더군요. 주님께 무언가를 드리고 싶다고 기도하던 중 목소리로 찬양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음반이 만들어졌습니다.”
1989년 MBC대학가요제 동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데뷔한 이재영은 곧장 ‘유혹’이라는 곡으로 인기를 얻었다. 데뷔 첫 해 10대 가수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최고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부를 얻었고, 명예도 생겼다. 세상 가운데 ‘이재영’이라는 이름이 드러났고,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정말 남부러울 것이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늘 공허하고 허전했다.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올 때 느끼는 텅 빈 느낌은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무엇 때문에 노래하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되묻길 여러 차례. 하지만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가수로 살아오던 그녀가 하나님을 만난 곳은 화려한 무대가 아닌 병실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몸이 상당히 아팠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죽을 병도 아닌데 깨끗이 완치되지도 않았다. 1년이 넘도록 병원과 집을 오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육신의 고통은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졌다. 무기력하고 우울한 시간이 깊어졌고, 불면증까지 찾아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기도도 할 줄 몰랐죠. 어렸을 때 친구 따라 교회에 다닌 것이 전부였으니까요. 심정적으로 나는 크리스천이다 생각했지만 기도하는 법도 몰랐어요. 그런데 병원에 입원할 때는 꼭 성경책을 가지고 들어갔어요. 그저 성경책을 움켜쥐고 살려달라고 제발 낫게 해달라고 매달린 것이 기도였어요.”
‘너무 아프다. 제발 살려달라.’ 이것이 그녀가 한 기도의 전부였다. 그녀는 울며 기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살려달라는 기도는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로 바뀌어 있었다.
“하나님, 교회도 안 다니고 하나님도 안 믿고 그래서 아픈 건가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하나님 말씀 잘 들을게요. 교회도 열심히 다닐게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하나님은 작고 가녀린 딸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그녀의 신음소리 하나까지 듣고 계셨다. 약속대로 그녀는 치유됐고, 집 근처 작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몇 주는 누가 알아볼까 부끄러워 모자를 눌러쓰고 뒷자리에 앉아 예배가 끝나기 전 황급히 자리를 비웠다. 몇 주를 지켜보던 전도사가 그녀를 붙잡았다. 일산 한사랑교회 김성신 전도사. 신앙인 이재영을 있게 한 영적 어머니다. 김성신 전도사와 상담을 하면서 시작된 신앙생활은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었다. 심방 오겠다는 전도사를 피해 다닌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재영 씨는 금요철야에 참석했다.
“예배 중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요. 잘못했다는 소리만 나왔죠. 왜 우는지도 몰랐고, 뭘 잘못해지도 몰랐어요. 그저 제 입술은 용서해달라는 말만 되풀이 했죠. 그런데 하나님이 영화 필름처럼 제 죄를 보여주셨어요. 저는 경악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놀라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그 시간 이재영 씨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났다. 죄인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예수님의 존재를 가슴 깊이 느끼게 됐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복음의 비밀을 알게 됐다. 그리고 질병이라는 고통을 통해 자신을 찾고 계셨다는 치밀한 하나님의 계획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을 만난 후 그녀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자존감이 형성됐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삶의 목표가 생겼다. 이렇게 좋은 하나님을 왜 이제야 만났을까. 너무나 큰 후회가 밀려왔지만 시간은 돌이킬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마음껏 사랑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 때가 2005년이었어요. 아직 위대하신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 예수님이 나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게 됐어요.”
인터뷰 도중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야기 하던 그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셔두었다. 그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찬양했다. 하나님을 만난 기적같은 이야기가 작은 앨범에 담겨 있었다.
‘來. 그후…’라는 연주곡으로 시작되는 음반은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오신 것처럼 ‘이재영’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표현했다. 그리고 음반은 내러티브 형식으로 ‘아름다운 하나님’, ‘주 없이 살 수 없네’, ‘당신은 나의 왕’ 등으로 이어지며 존귀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다.
음반을 준비하는데 3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기도로 2년, 제작에 1년 9개월이었다. 왜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음반 제작 중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7~8개월 작업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첫 곡을 녹음한 후 일어난 일이었다.
“성대에 출혈이 있다고 해서 2주 치료를 했어요. 병은 나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어요. 말은 할 수 있었지만 찬양은 할 수 없었어요. 답답했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와 예배 밖에 없었습니다. 왜 저에게서 목소리를 거두어 가신 건지 되묻는 시간이었어요.”
다시 하나님께 무릎 꿇는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마지막 고백을 했다.
“하나님, 이 목소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거두어 가신다고 해도 저는 감사합니다.”
더 낮아지고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마음에 이르자 기적처럼 다시 목이 열리고 찬양이 나왔다. 하나님께서는 그 딸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신 것이다.
7~8개월에 이르는 긴 시간, 인간 이재영은 멈춰있었지만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다. 음반이 중단된 상황에서도 모든 스텝들은 믿고 기다려주었다. 더 놀라운 것은 최고의 크리스천 뮤지션을 그녀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첫 앨범 ‘뷰티풀 갓’에는 국내 최고 탑 프로듀서로 알려진 황성제와 고품격 음악으로 이름난 작곡가 나원주이 첫 CCM곡을 선보였고, 고형원 선교사와 ‘성령이 오셨네’의 작곡가로 알려진 CCM 아티스트 김도현도 선뜻 자신의 곡을 선물했다. 피처링에 참여한 팀들은 국내 최고 영적 파워를 자랑하는 ‘마커스’와 ‘헤리티지’, ‘부흥한국’이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음반이기에 최고만을 고집했다는 이재영 씨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비전”이라며 “우연히 이 음악을 듣다가 하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라며 대중들이 찬양을 쉽게 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CCM에 첫 발을 디딘 가수 이재영.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짧은 시간이 표현하기 어렵다”는 그녀의 고백에서 때 묻지 않은 순결함이 느껴졌다. 그녀의 찬양에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감격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10년 만에 새롭게 준비한 앨범이 대중가요가 아닌 찬양 앨범인 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한 가수 이재영. 연약한 여인의 음성이지만 ‘큰 울림’으로 퍼질 찬양을 통해 구원의 기적이 ‘오병이어’처럼 일어나길 그녀는 소망하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믿음으로 더욱 든든히 서시고 더 오래도록 쓰임 받으시길..
그리고 언젠가 한 번쯤은 우리교회에 오셔서 간증자로 서 주시길..
kt508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