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2~4)
이 구절은 제자들이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이다. 제자들이 명예욕에 사로잡혀 천국에서도 자리다툼할까 염려해서 어린 아이까지 불러들이신 것 같다. 그리고 아직 명예욕에 때 묻지 않은 어린이를 세워두고 제자들의 명예욕을 경계토록 하신 것이다. 이처럼 어린이는 예수님 보시기에도 자기를 낮추는 이의 전형으로 내세우실 만하다. 당시 어린이는 인구수에도 넣지 않을 만큼 무시 받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이 명예욕은 없더라도 천사는 아니다. 모든 언행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 아는 이기심의 소유자다. 또 무엇을 하고 싶거나 갖고 싶다고 한번 마음에 꽂히면 앞뒤 안 가리고 하고야 마는 무서운 탐심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는 저들을 키워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우리 부부는 퇴임 전후 해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다니는 두 손자를 돌봐줄 겸 맞벌이하는 장남과 오륙 년간 한 지붕 아래에서 산 일이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손자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즐거움을 누렸다. 손자의 손을 잡고 오가는 도중, 아기자기한 이야기도 나누고, 가끔 손자 손에 끌려 개미도 따라가 보고, 고추잠자리를 잡는 기쁨도 나눴다. 그러느라 집까지 이십분이면 올 길을 무려 한 시간이나 늦춘 적도 적잖다. 한번 어느 재미에 꽂히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손자의 약점을 채근해서 저녁식사에 늦지 않게 되도록 재촉하는 일, 그렇게 해서 아이의 즐거움을 깨는 악역은 늘 내가 맡기 마련이었다.
가끔 길가다가 아이들 요행심을 노리는 뽑기 기계를 보면 손자는 나보고 5백원짜리 동전을 달라고 졸라서 뽑는 일도 잦았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자꾸 또 하려고 들면 이를 제지하는 것도 내가 할 일이다. 또 이따금 친구 또래한테 배운 쌍스런 말이나 욕을 흉내낼 때가 있는데 이를 제지하는 것도 내 몫이다. 하지만 가끔 내 말을 안듣고 제멋대로 하려 들 때가 있어 역정을 내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집사람이 나서서 손주편을 드는 것이다. 그러면 제 할머니 역성에 기대어서 더 제멋대로 하려드는 손자 앞에 할아버지 된 내 권위는 그만 땅에 떨어지고마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이때 만일 할아버지의 권위를 내세워 벌을 준다고 큰 소리로 엄포하기라도 하면 그때는 이미 손자를 끌어안은 아내와의 대결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아내의 지론은 손자가 아무리 잘못해도 벌은 제 부모가 주어야지, 조부모가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부모는 끝까지 손자를 자상하게 보듬는 인자한 이로 남아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의 잘못된 행동은 그 저지르는 현장에서 즉시 지도해야 개선된다는 이론에 기대지 않더라도 손자가 잘못하는 현장에 있는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없는 부모 대신 훈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싶다. 다만 그 훈계의 동기가 손자의 성품이 그릇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랑하는 마음보다, 할아버지 자신의 권위가 무시 당함에서 오는 분풀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부모들의 가정교육은 과거에 비해 너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자녀들의 기를 살리고 저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준다는 점에서 분명히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그래서 이를 토대로 사회에서 갖출 최소한의 예의범절을 어릴 때부터 단단히 지도하는 일이 소중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너무 무심한 듯 보여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성경에는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 22:15)는 말씀도 있고,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는 말씀도 있는데 어린이들의 활기를 죽이지 않는 범주에서 매를 들어서라도 어린 자녀들의 예의범절에 기초한 기본적 생활교육의 터를 잡는 일에 좀더 관심을 촉구해야지 싶다. 물론 이것도 우리 기성세대가 매를 들기 앞서 먼저 우리 후손들 앞에서 예의범절에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본보이고서야 할 일이지 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