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한 생명이 탄생한다. 분명 모두의 축복 속에 환희와 감격으로 가득 차야 마땅할 순간이건만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에서 무언가 왠지 모를 슬픔이 감지된다. 우리나라에서 일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사실 장애인 중 88%는 살아가는 도중 장애를 갖게 된, 이른바 후천적 장애인들이다. 흔히 생각하듯 처음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선천적 장애인들의 비율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처음부터 장애를 가진 채로 험난한 세상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배워가야 할 장애 아동과 그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보다 이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동정과 혐오의 시선 또한 견뎌내야만 한다.
장애 아동 늘지만 지원 대책은 미비
선천적 장애인의 비율이 10명 중 1명꼴이라고는 하나 무시할 순 없는 수치다. 게다가 최근 들어 장애 영유아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 관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 영유아(만 0~5세)는 2010년 0.3%에서 2022년 0.52%로 10년 사이 두 배 가량 증가했다.
보고서는 장애 영유아와 장애 아동(만 6~18세)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원인으로는 결혼과 출산 연령이 늦어지며 저체중 및 조산아의 비율이 높아진 현상이 지목된다. 저체중아와 조산아는 발달 지연 등 장애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를 조기에 발견해도 치료로 연계하는 시스템은 미비하다는 평가다. 영유아들은 ‘영유아검진제도’에 의해 만 5세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성장·발달 관련 검진을 받게 된다. 이때 ‘심화 평가 권고’나 ‘추적 검사 요망’ 진단을 받으면 발달 장애를 앓고 있을 위험이 있다.
빠른 검사와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어떤 병원을 찾아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치료에 집중해야 하는지 관련 지식이 없는 부모들이 알기란 쉽지 않다. 이를 돕기 위한 연계 기관이나 공식 지원 체계도 없는 실정이다. 영유아 시기의 빠른 진단과 치료가 장애 중증화에 미치는 영향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보고서를 발간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를 설치할 때 영유아기 중심의 조기 개입 역할이 강조돼야 한다”면서 “지금도 센터는 있지만 만 6세 미만 장애아동에 대한 지원 계획은 전체의 1% 수준이다. 성인 발달 장애 지원은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영유아기 발달 장애 지원은 아동지원센터가 맡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학대에 더 취약한 장애 아동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은 학대와 차별에도 훨씬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NGO 세이브더칠드런과 인하대 산학협력단은 ‘장애아동 학대 체계 연구 보고서’를 내놓고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받는 장애아동의 수가 매년 증가해 1천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학대의 종류는 신체적 학대(35.7%), 정서적 학대(31.8%), 방임(16.9%), 성적 학대(14.9%) 순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일반적인 아동 학대가 대부분 부모에 의해 일어나는 것에 반해 장애 아동은 다른 종류의 가해자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체 아동 학대에서 부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82.7%였다면, 장애 아동의 경우 여전히 부모가 1위이긴 하지만 48.9%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그 대신 사회복지시설 등 기관종사자가 23.3%, 타인이 17.3%로 뒤를 이었다.
가정이 아닌 복지시설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기관종사자들의 학대가 자주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당장 올해 2월에도 한 언어치료센터에서 재활사가 가르치던 아동 10여명을 상습적으로 폭행해 조사를 받았다.
피해 아동 1명의 부모로부터 첫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이 지난 4개월 간 센터 내 CCTV 영상을 확인하자 잔혹한 풍경이 펼쳐졌다. 일대일 수업을 하던 중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뺨을 내리는가 하면 주먹으로 명치 부근을 세게 치기도 하고 목을 졸라 상처를 입히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어린 아이들은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학대 사실을 알리지조차 못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통계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 아동의 경우 부모에 의한 학대가 숨겨져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물리적으로 강하게 통제하면서 그것이 학대인지도 모르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뇌병변 장애 아동을 의자에 묶어 교육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가 장애 아동을 감당하지 못하고 유기하는 경우 대부분 장애 영유아를 돌보는 전문 시설에 입소한다. 하지만 입양은 꿈도 꾸기 어렵다. 시설에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입양과 가정 위탁에 실패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장애 아동을 입양하고 키우기 위한 경제적 부담은 결정을 쉬이 내리기 어렵게 만든다. 정부는 장애 아동을 입양하는 가정에 경증 55만원, 중증 63만원 가량의 양육 보조금을 매달 지급하지만 그래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장애 아동 위한 인프라 턱없이 부족
누군가에겐 ‘평범함’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장애 아동들은 일반적인 수준의 돌봄과 교육을 받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간한 ‘2022 장애통계연보’에서는 보육시설(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는 장애 아동의 비율이 77.2%나 됐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장애 아동은 22.8%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전체 아동의 어린이집 이용률 49%와 대조되는 결과다.
유치원 이용률은 그보다 더 낮은 13.1%로 조사됐다. 이 역시 전체 유치원 취학률 50.6%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뇌병변 장애 아동(96.4%)과 지적 장애 아동(91.3%), 자폐성 장애 아동(89.0%)은 대부분 유치원을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특히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동의 경우 일반보육시설을 이용하는 것에 어려움이 컸다. 자폐성 장애 아동이 일반보육시설을 다니는 경우는 5.8%에 그쳤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과 장애아통합보육시설에 다니는 경우도 각각 5.0%, 4.4%에 머물렀다.
장애 아동들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전문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장애아를 전문으로 돌보는 어린이집은 2014년 174개에서 2021년 177개로 7년간 고작 3곳 증가하는 것에 그쳤다. 일반보육시설을 이용하려 해도 장벽이 높다. 장애 아동 보호자 4명 중 1명(24.7%)은 보육시설이나 유치원에 입학·전학하려 할 때 사회적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자폐성 장애 아동의 경우엔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이 42.2%나 됐다.
여가를 보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아름다운재단과 장애물없는생활환경연대가 발간한 ‘무장애 실내놀이터 매뉴얼’에 따르면 공공형 실내놀이터 중 휠체어를 타고 입장할 수 있는 곳은 절반도 되지 않는 40%에 그쳤다. 손이 불편한 아이가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가 설치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어린이가 놀 수 있는 ‘통합놀이터’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전국 8만곳에 육박하는 놀이터 중 통합놀이터는 23곳에 불과하다. 장애아동용 놀이기구와 관련한 법안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 탓이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는 장애아동의 놀 권리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돼있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다. 정책이 뒷받침되려면 놀이터 설치와 안전을 규정하는 행안부의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